북한에 암호화폐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미국인 전문가가 미 사법당국에 의해 기소되면서 북한이 암호화폐에 관심을 갖는 배경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암호화폐의 특성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감시를 피해 자금을 얻으려는 북한에 매력적인 연구 대상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상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 사법당국에 의해 기소된 미국인 버질 그리피스 씨가 참가한 것으로 알려진 평양 블록체인 암호화폐 회의는 올해 4월 열렸습니다.
당시 북한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 연구 교류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100여 명을 초청해 행사를 치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내년에는 더 큰 규모로 이 행사를 개최하겠다고 밝혀 암호화폐에 대한 큰 관심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암호화폐 행사 개최 이전부터 관련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왔습니다.
한국 KDB 미래전략연구소의 2018년 ‘북한의 가상통화 이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IT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암호화폐 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특히 북한 IT 기업인 ‘조선엑스포’는 가격정보와 차트 분석을 통해 암호화폐를 거래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판매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9월에는 평양 암호화폐 국제회의를 주관한 것으로 알려진 해외 친북단체인 조선친선협회의 알레한드로 카오 데 베노스 회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북한이 국제 시장에서 금처럼 실제 가치가 있는 것에 기반을 둔 암호화폐 개발을 원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암호화폐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익명성과 보안’이라는 암호화폐의 특성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무역 거래를 하거나 자금 융통을 위해서는 기축통화인 달러화 같은 화폐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해당 화폐가 미국 정부나 국제금융체계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에 추적 당하고 제재를 받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암호화폐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 기술은 데이터를 여러 컴퓨터에 분산 저장 처리해 해킹이 거의 불가능하고, 암호를 해독하지 못하면 누가 사용하는지 알 수 없어 자금 운용에 대한 국제사회의 감시와 제제를 회피하려는 목적에 부응한다고 전문가들은 밝혔습니다.
미국의 사이버보안업체 파이어아이의 루크 맥나마라 수석분석가는 3일 VOA에, 북한이 암호화폐를 실제 사용하기 위해 새로운 차원의 시도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맥나라마 분석가] “I think this is showing sort of a new dimension to what North Korea intends to do with cryptocurrency. During that period of time, they were also still going after banks and traditional financial entities…”
이미 국제사회의 감시와 대북 제재로 기존 달러화를 통한 거래나 자금 운용이 힘들어진 상황에서 북한은 추적이 어렵고 국제적인 거래가 가능한 암호화폐 활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맥나마라 수석분석가는 이번에 기소된 그리피스 씨가 북한에 가서 암호화폐 기술의 개념과 이용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면, 의도와 상관없이 북한에 악용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은 암호화폐 운용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회의를 열었기 때문에 그리피스 씨가 암호화폐가 정권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어떻게 운용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줬다면 설령 그것이 공개된 정보라고 해도 북한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겁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매튜 하 연구원은 북한이 정부의 낮은 대외신뢰도와 불안정한 자국 통화 가치를 만회하기 위해 암호화폐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매튜 하 연구원] “I've heard different things from others about how much the North Koreans are very interested in how stable and sort of like the reliability of…”
암호화폐는 시장에서의 가치 변동성이 큰 것이 단점이지만 북한은 대외적으로 신뢰도가 낮기 때문에 오히려 암호화폐로 신용 보증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매튜 하 연구원은 북한이 2017년 워너크라이 해킹 사태 당시에도 해킹 당한 컴퓨터 복구의 대가로 현금이 아닌 암호화폐 ‘비트코인’을 요구했던 일을 예로 들며, 북한이 제재 국면에서 암호화폐로 활로를 개척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열악한 경제 여건에 비춰볼 때 암호화폐 관련 연구와 관심은 국제 거래와 무기 개발 등 정권의 자금 운용을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조상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