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예고했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전격적으로 단행했습니다. 4.27 판문점 선언의 상징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됨으로써 남북관계 위기가 본격화되는 양상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는 “북한이 16일 오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도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된 사실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16일 14시 50분 요란한 폭음과 함께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비참하게 파괴됐습니다.”
한국 청와대가 공개한 폭파 당시 영상에 따르면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인 연락사무소 청사는 폭발한 지 3∼4초 만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로써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 따라 그해 9월 개성에 문을 연 연락사무소가 개소 19개월 만에 사라지게 됐습니다..
연락사무소는 한국 정부가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 합의에 따라 개성공단 내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로 사용하던 건물을 재료비 34억9천만원 등 총 97억8천만원을 들여 개보수해 만들어졌습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앞서 지난 13일 담화에서 “멀지 않아 쓸모없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위협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김 제1부부장의 이런 예고를 사흘 만에 실행에 옮긴 겁니다.
한국 청와대는 북한의 이번 조치에 대응해 16일 오후 5시쯤 국가안전보장회의, 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고 “북측이 상황을 계속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할 경우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김유근 NSC 사무처장은 상임위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북측이 2018년 판문점 선언에 의해 개설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일방적으로 폭파한 것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김 사무처장은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파괴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기대를 저버린 행위”라며 “정부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태의 책임이 전적으로 북측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와 함께 16일 대외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보도’ 형식으로 발표한 입장문에서 남북 합의로 비무장화된 지대들에 군대를 재배치하고 한국을 향해 전단을 살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총참모부는 “통일전선부와 대적 관계 부서들로부터 남북 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들에 군대를 재배치해 전선을 요새화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과 인민들의 대규모적인 대적 삐라 살포 투쟁을 적극 협조할 데 대한 의견을 접수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상과 같은 의견들을 신속히 실행하기 위한 군사적 행동계획들을 작성해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승인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4일 김 제1부부장이 한국 내 탈북민들의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맹비난하는 담화를 낸 것을 시작으로 한국에 대한 압박 공세를 이어갔습니다.
북한은 지난 9일 대북 전단 살포를 이유로 남북한 간 모든 통신연락 채널을 일방적으로 차단한 바 있습니다.
북한이 4.27 판문점 선언의 상징인 연락사무소를 폭파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사라지게 함으로써 남북관계가 2018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위기 국면에 놓이게 됐다는 분석입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이 분명한 입장을 표시한 거죠. 4.27 판문점 선언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라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왔던 북한의 대남전략이 확실하게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대적 관계로 넘어갔다는 것을 상징하는 일종의 도발이다, 이건 명백한 도발이죠.”
한국 정부는 북한의 대북 전단 비난에 대해 청와대까지 나서 전단 살포 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밝혔고 문재인 대통령은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15일 북한에 소통과 협력을 촉구하는 등 유화적인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냈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황일도 교수는 그럼에도 북한이 극단적 방식으로 한국을 거세게 몰아부치는 배경엔 최고지도부의 다급함이 반영돼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황일도 교수] “제재 장기화에 코로나가 겹치면서 생긴 경제적 어려움, 민심의 불안정 요인 작동이 첫 번째 요인일 수 있고 두 번째는 미국의 대선 일정이 실제론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안에 레버리지를 확보하려는 다급함이 있는 것 같은데 이에 더해서 가장 근본적으론 김여정, 김정은의 개인적 여러 불만, 남측에 대한 서운함 이런 게 아주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김진무 숙명여대 교수는 북한이 격화된 미-중 갈등 속에서 문재인 정부를 흔들어 미-한 동맹의 틈을 벌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김진무 교수] “문재인 정부를 압박해서 한-미 사이를 이간해서 미국이 대북 압박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 한국을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미국에게 불어넣는다는 거죠. 그러면서 미국과 북한의 향후 협상에서 미국이 전향적인 협상 태도로 나올 수 있게 만들려는 그런 의도가 포함돼 있다고 그렇게 보고 싶고요.”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문재인 정부의 반응에 대해 크게 반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김 제1부부장이 예고한 수순대로 대남 공세 조치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다음 조치는 당연히 총참모부가 맡는 군사합의 파기 행위로 봐야 하는데 그 행동의 타이밍은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한국 측 반응을 보고 그리고 나서 반응에 따라서 행동에 옮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편 북한이 총참모부 입장문을 통해 남북이 합의로 비무장화한 지대에 군 재배치를 시사한 것은 1차적으로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단행했던 감시초소, GP 시범철수 조치를 철회하고 원상복구하겠다는 의미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남북 합의로 비무장화된 지대’를 보다 넒게 해석해 북한이 개성과 금강산 일대에 군을 재배치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북한의 대남 전단 살포 예고에 대해 이를 행동으로 옮길 경우 명백한 4.27 판문점 선언 위반이라고 밝혔습니다.
통일부는 남북한 모두 합의사항을 준수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