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고 이례적으로 장마로 인한 홍수 피해 현황을 공개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차단을 이유로 외부 지원을 일절 받지 않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3일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제7기 16차 정치국 회의를 열고 홍수로 인한 수해 복구 방안을 논의했다고 14일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수재민들이 한지에 나앉아 당 창건 75돌을 맞이하게 할 수는 없다”며 “피해 지역을 인민들의 요구에 맞게 일신하고 앞으로 자연재해와 큰물이 다시 발생한다고 해도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특히 이번 홍수로 3만9천296정보, 약 390㎢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고 살림집 1만6천680여 세대, 공공건물 630여동이 파괴 또는 침수됐다고 피해 규모를 공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 같은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파 상황이 세계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며, 그 어떤 외부적 지원도 허용하지 않고 국경을 더욱 철통같이 닫아 방역사업을 엄격히 진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북한은 이와 함께 신종 코로나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방역사업을 전담할 상설기구를 신설했습니다.
또 개성 출신 한국 내 탈북민의 월북으로 신종 코로나 특별경보가 내려졌던 개성지역에 대한 봉쇄령을 3주 만에 해제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김 위원장이 피해 규모를 공개하면서 외부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한 데 대해, 북한이 신종 코로나 사태를 엄중하게 보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수해 나고 식량 부족한 것은 어떻게 보면 만성적인 문제 아니에요? 그런데 바이러스는 작년 12월부터 일어나서 초유의 사태란 말이죠. 그래서 그게 더 심각하게 고려된 것 같아요.”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최고지도자가 직접 외부 지원에 대해 언급한 것은 피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라며, 외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입을 걱정해야 하는 딜레마를 보여준 발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이 외부 지원을 비공개 방식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지금 북한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데 외부 지원이 이뤄질 경우 김정은 정권의 존엄에 훼손이 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요. 물론 개별적으로 물밑으론 비공개 지원을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공개 지원을 받지 않음으로써 김 위원장이 강조하는 자력갱생, 그 기조도 이어가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체제결속을 요구하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 통일부는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대북 수해 지원 여부를 두고 “자연재해 등 비정치적 분야에서의 인도적 협력은 일관하게 추진한다는 입장은 여전히 동일하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한편 북한이 홍수 피해 상황을 공개하고 방역전담 상설기구를 신설한 것은 당 주도로 중첩된 위기 상황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민들에게 발신한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홍수 피해 규모를 이렇게 신속하게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북한 당국이 한반도 전체에 닥친 자연재해라는 점에서 굳이 주민들에게 숨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홍 실장은 오히려 주민들에게 상황을 알리면서 당국 차원에서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신종 코로나와 관련해 개성에 내려졌던 봉쇄령 해제에 대해, 확진자가 없다면서 봉쇄를 유지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무엇보다 수해 복구가 절실한 상황에서 봉쇄령에 따른 개성 지역에 대한 물자 지원이 큰 부담이 됐을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