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연내 북한 인권보고서를 발간해 공개하겠다던 입장을 번복해 공개 여부를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남북대화 재개 노력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반대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 관계자는 지난 18일 기자들을 만나 북한인권기록센터의 북한 인권보고서 공개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공개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자료 정리가 완료되는 시점에 북한인권법 취지에 맞춰 공개 여부를 결정하려고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통일부는 이에 앞서 지난 17일 “올해 정책수립 참고용 비공개 보고서와 함께 공신력을 갖춘 대외공개용 보고서 발간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통일부는 보고서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북한인권법 제2조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법 2조는 ‘국가는 북한인권 증진 노력과 함께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공개보고서 발간 여부가 남북관계 발전이나 한반도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되느냐에 대한 판단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부 소식통은 21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인권기록센터가 공개보고서 발간을 준비해 왔지만 이인영 장관 취임과 함께 남북 교류 재개에 공을 들이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공개보고서 발간에 신중해졌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도 북한 인권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루는 게 북한과의 대화 물꼬를 트려는 현 정부에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남북관계 돌파구를 지금 마련하려는 게 정부 입장인데 인권 문제가 전면적으로 부상하면 한국 정부에 부담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보편가치인 인권 문제 다뤄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의무감하고 남북관계를 다시 재개하는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당면목표 사이의 긴장관계가 이런 행보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한국 정부의 이 같은 태도가 과도한 북한 눈치보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강동완 동아대 부산하나센터 교수는 인권 문제는 인류의 보편 가치라는 점에서 남북간 특수관계를 앞세우는 입장은 정책의 선후가 바뀐 것이라며,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 없는 남북관계 개선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녹취: 강동완 교수] “북한 인권정책이 사실상 없는 거죠. 왜냐하면 북한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에 북한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북한 정권이 이야기하는 우리민족끼리나 여기에 맞지 않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게 지금의 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북한 인권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는 북한인권기록센터는 북한인권법 제정으로 지난 2016년 9월 출범한 통일부 소속 기관입니다.
지난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 전년도의 북한인권 실태를 담은 비공개 보고서를 발간했지만 공개보고서를 내놓은 적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인권기록센터의 역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민간단체 북한인권정보센터도 통일부가 북한 인권 관련 자료를 독점하고 정치적으로 활용하려고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지난 21년간 한국 정부와 매년 용역계약을 맺고 정부의 탈북민 정착 지원기관인 하나원 교육생들을 상대로 북한인권 관련 정보 수집과 조사, 백서 제작 등을 주도적으로 해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인권기록센터 출범과 함께 활동 영역이 줄었고 올해는 정부의 탈북민 조사 대상 규모 축소 방침을 놓고 갈등을 빚다가 계약을 맺지 못했습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정부가 민간단체의 참여를 배제하려는 의도라며 국가기관인 북한인권기록센터조차 공개 보고서를 제대로 내놓지 않으려고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윤여상 소장] “북한인권은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으로만 개선된다고 하면 정책에 활용하기 위한 공무원들을 위한 비공개 보고서가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으로 북한인권 개선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얼마나 있겠습니까.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인권정책을 쓰지 않는 나라로 돼 있는데 논리적으로 도저히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고요.”
윤 소장은 정부의 정보 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민간 기관의 조사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조한범 박사는 이에 대해 북한인권 관련 조사는 북한 내에서 자행된 인권 침해에 대한 법적 조치를 위한 근거자료로 추후 활용하기 위해선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는 게 이치에 맞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조 박사는 북한인권기록센터 출범으로 관련 민간단체들은 독자적인 활동 영역을 찾으면서 정부 기관에 대한 조력자로서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