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한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으로 인해 연기되면서 미 대선 전 미-북 대화 재개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종전 선언을 매개로 미-북 협상 분위기를 이어가려던 한국 정부의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의 여파로 당초 7일로 예정됐던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의 방한이 일단 취소됐습니다.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폼페오 장관은 5일 강경화 장관과 전화통화를 갖고 방한 연기의 불가피한 사정에 대해 양해를 구했습니다.
한국 외교부는 이에 앞서 폼페오 장관의 방한을 조속한 시일 내 다시 추진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건강 회복 속도가 여전히 변수인데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미국 대선 전 폼페오 장관의 방한이 성사될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폼페오 장관의 방한 취소가 대선 전 미-북 대화 재개의 작은 불씨마저 사그러지게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일각에선 북한이 도발을 감행하지 않으면 다음달 3일 미 대선 전 깜짝 미-북 회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기대가 나오던 상황이었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염두에 두고 미국과 남북한이 2018년과 2019년 이어졌던 미-북 정상회담의 동력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일부 감지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신종 코로나 확진으로 대선 전 새로운
상황을 기대하긴 어렵게 됐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확진이 되면서 북-미 회담이나 종전 선언 같은 이슈는 물론이고 지금은 미 대선에도 집중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단 말이에요. 그래서 트럼프로선 빨리 회복해서 대선 유세에 나서야 하는 그런 급선무를 안게 됐기 때문에 지금 같은 상황에서 종전 선언이나 남-북-미 회담 같은 것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봐야죠.”
한국 정부는 폼페오 장관 방한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유엔총회에서 강조한 종전 선언의 불씨를 살리는 계기로 삼으려던 구상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폼페오 장관의 문 대통령 면담 가능성도 제기됐었습니다.
앞서 한국 측 북 핵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지난달 27일 미국으로 날아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과 종전 선언 등 폼페오 장관의 방한 때 북한에 발신할 메시지를 사전 조율하기도 했습니다.
이 본부장은 지난달 30일 귀국길에 오르면서 종전 선언에 대해 “아주 폭넓고 의미 있게 이야기를 계속했기 때문에 앞으로 좋은 토대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입니다.
[녹취: 홍민 실장]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은 미국 대선 앞두고 종전 선언 카드를 다시 한 번 이슈화시키고 환기시키는 모종의 계기였죠. 그런데 계기가 일단 없어져서 (한국) 정부 자체적으로 종전 선언을 강조하는 데 한계가 있는데, 미국 쪽에서 이에 반응해 주는 게 상당히 중요했는데 이게 차질이 생기면서 어쨌든 이슈화에선 조금 밀릴 수밖에 없게 됐다…”
홍 실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일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위로전문을 보낸 데 대해 정상간 우의를 재확인한 행보로 평가했습니다.
다만 당장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겨냥한 메시지라기 보다는 미 차기 행정부와의 협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우호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그러나 폼페오 장관의 이번 방한의 주된 현안이 미-북 관계 돌파구 마련보다는 한국의 반중 연대 참여 문제였기 때문에 방한 연기가 장기 교착 상태에 놓인 미-북 관계에 미칠 영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박 교수는 특히 오토 웜비어 사건을 연상케 하는 한국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 한국 측이 진상 규명을 위한 공동조사를 요구했는데도 북한이 이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에 전향적인 메시지를 내놓는 것은 트럼프 캠프의 대선 전략 차원에서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왜냐 하면 여전히 한국인 공무원 피살 사건이 있었고 그건 반인륜적 범죄행위인데 북한이 전혀 묵묵부답인 상황에서 북한에 대해 긍정적인, 전향적인 메시지를 미국이 낸다는 건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이 되지 않습니까?”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신종 코로나 확진이 대선 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지 여부에 대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북한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탑다운 방식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선 직전 ICBM 도발 같은 전략 도발을 할 경우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도발은 자제하고 아마 다가오는 10월10일 노동당 창당 기념 75주년 군사퍼레이드에서 ICBM이나 SLBM 신형 미사일을 공개하는 수준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해 홍민 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위로친서에서 보듯 북한은 불확실성이 커진 현 상황에서 긴장을 높이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