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과 관련해 한국이 적대적이지 않으면 남북관계 회복을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종전선언을 둘러싼 남북간 접촉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24일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를 내고 “장기간 지속돼온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상태를 물리적으로 끝장내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은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과 남북한 3자 또는 중국까지 포함한 4자 간 종전선언을 제안한 데 대해 긍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겁니다.
김 부부장은 그러나 “종전이 선언되자면 쌍방간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에 대한 편견과 적대시 정책, 불공평한 이중기준부터 먼저 철회돼야 한다”며 "선결조건이 마련돼야 서로 마주 앉아 의의 있는 종전도 선언할 수 있을 것이고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전도 문제에 대해서도 의논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건을 달았습니다.
김 부부장은 또 “한국이 북한을 자극하고 이중잣대를 갖고 트집을 잡던 과거를 멀리하고 적대적이지만 않다면 얼마든지 남북 간 다시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며 관계 회복과 발전 전망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해볼 용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담화에서 ‘이중잣대’는 한국 측이 미-한 연합훈련과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국방비 증대 등을 진행하면서 자신들의 순항미사일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도발로 규정한 것을 지적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 부부장의 담화에 앞서 24일 오전엔 리태성 북한 외무성 부상이 담화를 내고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남아있는 한 종전선언은 허상에 불과하다”며 종전선언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리 부상은 “한반도 정세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속에 종잇장에 불과한 종전선언이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로 이어진다는 그 어떤 담보도 없다”며 “미-한 동맹이 계속 강화되는 속에서 종전선언은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파괴하고 남북간 끝없는 군비경쟁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부부장의 담화가 한국을 겨냥한 것이라면 리 부상의 담화는 미국을 겨냥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주장을 앞세워 김 부부장의 담화 보다는 종전선언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더 부각시킨 내용이라는 분석입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김여정 담화를 통해서 북한도 종전선언에 대해서 나름대로 굉장히 긍정적인 평가를 했고 그렇게 한국이 원하는 종전선언을 하기 위해선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도록 한국이 더 노력을 하라는 쪽에 방점이 찍혔다고 판단되거든요. 앞부분의 외무성 쪽 담화는 종전선언 거부에 방점이 찍혔다면 김여정 담화는 종전선언의 조건에 좀 더 방점이 찍혔다고 볼 수 있는 거죠.”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미국 방문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용기 내에서 기자들에게 미-북, 남북 대화의 조속한 재개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미국과 중국의 동의가 있어왔고 관련국들이 소극적이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또 "종전선언은 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상에 들어가자는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라며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 미-한 동맹과는 아무 관계 없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북한의 최근 연이은 미사일 발사에 대해선 저강도 긴장 고조라며 대화의 문을 여전히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는 종전선언을 포함해 남북 협력을 위한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면서, 남북 당국간 접촉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 내용을 보면 좋은 제안이기 때문에 논의할 수 있다, 그 논의를 통해서 여건이 마련되면 종전선언으로 갈 수 있다 이렇게 해석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김여정 부부장은 만날 수 있다는 얘기를 한 거에요. 서로 마주 앉아야 종전선언도 가능하다고 말한 것은 정상이 만나기 위해선 사전에 준비가 필요하잖아요.”
박원곤 교수는 김 부부장의 담화는 북한이 종전선언에 유연하게 대응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풀이했습니다.
박 교수는 당초 북한이 종전선언에 부정적 태도를 보인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이 종전선언을 북한의 비핵화 조치의 상응 조치로 여긴 때문이었다며 조건 없는 종전선언은 손해 볼 게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만약 선제적으로 한-미가, 중국까지 포함해서 종전선언에 나서는 것에 대해선 손해볼 게 없다라는 판단을 하긴 하겠지만 북한이 미국이 이것을 수용할까에 대한 의구심이 매우 크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기본 입장인 적대시 정책 철회로 미국을 압박하면서 약간의 추이를 보겠다 라는 것도 좀 읽혀요.”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김여정 부부장이 한국과 소통 유지와 건설적 논의를 할 용의를 밝힌 대목을 주목하면서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를 재개할 여건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이 경제 위기 심화로 자력갱생만으로 버티긴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론 중국과의 교류 재개를 모색하면서 한국이나 미국과도 협상 국면을 통해 얻을 것을 최대한 얻어 내려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예컨대 북한이 종전선언을 명분으로 당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제공받는 협상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북한도 긴장을 고조하기 보다는 관망 또는 북-중 관계로부터 대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고 한국 정부에게 계속해서 미국을 설득해 달라는 요구를 하면서 어느 순간 남북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봐요.”
한국 통일부는 김 부부장 담화에 대해 “신중히 분석하고 있다”며 “정부는 남북관계 복원과 발전을 위한 노력을 일관되게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