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최근 벼 수확을 시작한 북한이 가을걷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함경남북도 일대의 식량난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입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요즘 북한은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거둬들이는 가을걷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옥수수(강냉이) 수확은 9월에 끝났고 최근에는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북도에서 벼 수확이 한창입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개성시 송도남새전문 협동농장의 농업근로자들도 가을걷이 준비를 깐지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추수를 독려하는 기사를 싣고 올해 국가정책에서 제일 중대사는 농사를 잘 짓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올해 작황이 평년작에 못미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운영하는 한반도 전문 웹사이트 ‘분단을 넘어서’는 최근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해 북한의 올해 곡물 생산량이 예년 수준을 밑돌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쌀과 옥수수, 감자 등 모두 440만t의 곡물을 생산했습니다.
한국의 북한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GS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8월 이후 폭염과 함께 비료 부족 등으로 농사 여건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박사] ”8월 달에 폭염, 비가 많이 안오고 그래서 황해남북도, 평안남북도가 곡창지대니까, 영향을 미쳤다.”
가을걷이는 시작됐지만 북한의 식량난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우선 벼 베기는 시작됐지만 추수는 12월이 되어야 끝납니다. 추수를 하려면 논에 물을 빼고 벼를 베야 합니다. 그 후 벼를 말린 다음 볏단을 탈곡기가 있는 장소로 옮겨야 합니다.
그런 다음 탈곡을 하고 곡식을 자루에 담아 국가수매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각 시와 군에 설치된 양정사업소가 곡물을 도정해 배급하거나 판매합니다.
기계화가 잘 된 한국에서는 벼 베기부터 탈곡까지 모든 작업이 현장에서 ‘콤바인’ 기계로 이뤄집니다.
그러나 북한 협동농장에서는 수 백 명이 달라 붙어 벼를 베고 이를 옮겨 탈곡을 해야 하기 때문에 12월이 되어야 햅쌀이 시중에 나올 수 있다고 탈북민들은 말합니다.
함경남도 함흥에 살다가 2001년 한국으로 망명한 탈북민 박광일 씨입니다.
[녹취: 박광일/탈북민] ”지금은 거의 인력이 동원되어 40일-60일간 낫을 가지고 가을걷이를 하는 것이 기본적입니다.”
북한에서 식량난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요인은 쌀 가격이 올라 주민들이 식량을 구입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미국의 북한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말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 ”People have to eat, market price rise, higher price…”
북한의 배급제도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사실상 붕괴됐습니다. 현재 배급을 타는 사람들은 당 간부나 보위부, 교원, 안전원 같은 힘있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주민들은 개인 장사를 하든지 각자 돈을 벌어 장마당에서 쌀과 옥수수를 사먹습니다.
4인 가족이 1인당 쌀을 500g씩 먹는다고 치면 하루 한 세대에 필요한 양은 2kg입니다. 그러면 한 달에는 60kg이 필요합니다. 종전의 장마당 쌀값은 1kg에 4천원 선이었습니다.
따라서 한 가족이 장마당에서 쌀을 사려면 한 달에 24만원이 필요합니다. 미화로 30 달러에 해당됩니다.
문제는 7월 들어 쌀값이 크게 올랐다는 겁니다. 한국의 북한전문 매체인 ‘데일리 NK’에 따르면 북한의 쌀값은 7천원까지 치솟았습니다.
북한 주민 입장에서는 과거 24만원이었던 한 달 식량 구입비가 2배 가까운 42만원이 된 겁니다.
과거처럼 개인 장사가 잘 되면 중간층 주민들은 이 정도 돈은 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장사를 하려면 중국에서 물품이 들어와 시장이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북-중 국경 봉쇄 이래 21개월 넘게 중국에서 물자 반입이 끊겼습니다.
따라서 주민들은 돈이 없어 식량을 사먹기 힘든 실정이라고 북한 지인들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하는 NK 지식인 연대 김흥광 대표는 말했습니다.
[녹취: 김흥광 대표] “코로나로 돈을 벌 길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중간층도 입쌀을 못먹고 옥수수로만 끼니를 때운다는 소식을 알고 있어요.”
실제로 돈이 없는 북한의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값이 싼 옥수수로 끼니를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원래 북한에서 옥수수 가격은 쌀값의 3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일본의 북한전문 매체인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10월 1일 북한의 쌀값은 5천600원인 반면 옥수수 가격은 3천원입니다. 옥수수 수확이 9월에 끝났는데도 가격이 여전히 비싸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주민들이 쌀 대신 비교적 가격이 낮은 옥수수를 사고 있다는 뜻으로, 기근의 신호라고 브라운 교수는 말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 ”Corn is higher, it means hunger, because people substitute…”
특히 함경남북도와 양강도, 자강도, 강원도 일대는 연말까지 식량난이 계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이들 지역은 산이 많은 곳으로 그동안 중앙의 공급보다는 중국과의 공식, 비공식 무역으로 식량을 조달해 왔습니다.
따라서 북-중 국경 봉쇄가 풀리지 않는한 함경남북도의 식량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권태진 원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양강도와 함경남북도는 예년에는 중국에서 식량을 조달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국경이 막힌데다 중앙도 공급을 못해서, 취약계층은 식량을 사 먹을 수도 없고, 연말까지는 식량난이 계속될 겁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6월 15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식량난을 공식 시인했습니다. 이어 북한 당국은 시장통제를 강화했습니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지난 6월 8일 국회 보고를 통해 북한 당국은 “쌀 가격을 (kg당) 4천원, 옥수수는 2천원이 넘지 않도록 통제하고 이를 어기면 총살하겠다는 목표"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시장통제는 부분적인 효과를 내는데 그쳤습니다. 쌀값은 7월 들어 6천원대로 떨어진 이후 줄곧 5천200원-5천600원 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북한 농업을 오래 관찰해온 권태진 원장은 북한 당국이 재고가 부족해 쌀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기본적으로 가격을 잡으려면 당국이 공급을 해줘야 하는데, 주요 시장마다 식량공급소를 만들어 낮은 가격으로 공급했지만 물량이 충분치 않으니 역부족이죠.”
북한의 식량난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주요 변수로 등장했습니다.
지난 8월 10일 남북 통신연락선을 일방적으로 끊었던 북한은 10월 4일 통신연락선을 다시 복원했습니다.
미국의 원로 한반도 전문가인 한미연구소 래리 닉시 박사는 북한이 식량 지원을 바라고 대화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래리 닉시 박사] “They are desperate for some kind of aids from South Korea, foods,”
전문가들은 남북 통신선 연결이 남북간 대화와 정상회담, 그리고 대북 식량 지원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