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국전쟁 당시 실종된 미군의 유해 발굴 사업을 북한 핵 문제 등 정치적 사안과 별개로 추진해야 한다고 실종미군 가족들이 강조했습니다. 유해 발굴 사업은 미국뿐 아니라 북한 측에도 이익이라는 설명도 나왔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민간단체 전미북한위원회(NCNK)가 30일 ‘한국전 참전 미군 전사자·실종자 유해 발굴’을 주제로 개최한 화상 세미나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핵 협상 등 정치적 문제와 별개로 전사자와 실종자 유해 발굴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리처드슨 센터 포 인게이지먼트’의 미키 베르그만 부대표는 인도주의 문제인 유해 발굴 사업은 미국은 물론 북한도 원하는 것이라며, 정치적 현안과 별개로 양국 관계에서 우선순위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베르그만 부대표는 2016년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와 함께 오토 웜비어 억류 문제를 비롯해 인도주의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경험을 사례로 들며, 당시 유해 발굴 문제를 꺼내자 북한 당국자들의 “눈이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이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세 가지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녹취: 베르그만 부대표] “the first one. They know very well, how this program, how bringing back our servicemen back home to their families...”
미군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미국 대중, 특히미군에게 얼마나 ‘정서적 소구력’이 있는지 북한은 잘 이해하고 있으며, 북한은 또 유해 송환을 미국에 대해 자신들의 ‘선의’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북한이 유해 발굴 작업과 송환 등의 대가로 ‘현금’을 요구하고 이를 받으면서 실질적인 이익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베르그만 부대표는 또 북한 군부는 미군과의 ‘직접적인 관여’를 매우 원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북한 측은 미 국방부 인사와 미군이 직접 관여하는 유해 발굴 사업을 그런 기회로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전쟁 및 냉전시기 미군 전쟁포로(POW)·실종자(MIA) 가족 연대’에서 활동하는 도나 녹스 변호사는 이날 유해 발굴 사업이 정치 사안이 아닌 ‘고통받는 사람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미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실종된 아버지를 둔 녹스 변호사는 2002년 미 국방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북한 군인과 ‘실종자 가족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녹취: 녹스 변호사] “you're both in our 40s He was in uniform, and turned out that his father was in the war as well, and that his father was still missing…”
녹스 변호사는 당시 북한 남성과 함께 아버지 없이 자랐던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자신과 그 사람이 “이유도 모른 채 평생을 서로를 미워했던 상대가 아니라 같은 슬픔으로 고통받고 있는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치와 전쟁에 관여한 주체는 각 정부이며 이로 인해 고통받는 대상은 주민들이라는 점을 기억하며, 유해 발굴 문제가 “인간 대 인간의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전쟁 및 냉전시기 미군 전쟁포로(POW)·실종자(MIA) 가족 연대’의 리처드 다운스 회장은 실종자의 유해 발굴과 관련한 주요 어려움으로 부침을 거듭하는 ‘미-북 관계’를 거론했습니다.
[녹취: 다운스 회장] “One of the issues that we have to fight a lot and it's come up through all the entire conversation here is the governmental policies and relationships between the governments…. we have tied in unfortunately with nuclear issues."
다운스 회장은 특히 최근에는 미군 유해 발굴이 북한의 핵 문제에 묶여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측으로부터 ‘실종자 가족 연대’의 방북을 제안받은 바 있지만 핵 문제와 제재 등으로 인해 정부의 ‘승인’ 받지 못해 성사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다운스 회장은 ‘실종자 가족 연대’는 미국 정부 등에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북한과 협력할 수 있는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려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대부분 실종자 자녀들이 고령이 되면서 ‘시간’도 큰 문제라고 언급했습니다.
녹스 변호사와 다운스 회장은 남매로, 1952년 1월 당시 26세이던 두 사람의 아버지는 B-26 전투기를 몰고 평북 정주 상공을 비행하던 중 엔진 이상으로 추락한 뒤 실종됐습니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에 따르면 한국전 참전 미군 전사자 중 지난 9월 28일 기준 신원이 확인된 미군은 602명이며, 나머지 7천554명의 신원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과 북한은 그동안 미군 유해발굴을 위한 협력에 합의하고 일부 사업을 진행했지만 정치적 상황 변화로 중단을 거듭해왔습니다.
2012년 양측은 ‘2·29 합의’ 타결 직전 미군 유해발굴을 위한 공동 행동계획에 합의했고 미군 유해발굴단이 북한에 들어갔지만 북한이 그해 4월 위성을 발사해 2·29 합의가 깨지며 유해발굴단이 철수했습니다.
미군 유해 송환은 2018년 6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 사항 중 하나입니다.
북한은 2018년 8월 한국전쟁 참전 미군의 유해가 담긴 상자 55개를 미국 측에 전달한 바 있습니다.DPAA는 이 유해 속에서 일부 한국군 유해를 포함해 현재까지 모두 79구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등을 거치며 이후의 송환 작업은 중단된 상태입니다.
DPAA에 따르면 2019 회계연도에는 양측이 서신 교환과 두 차례 실무급 회담 등 일련의 소통이 있었지만 성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지난 8월 켈리 맥키그 DPAA 국장은 워싱턴에서 열린 행사에서 전임 트럼프 행정부 시절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은 DPAA가 미-북 비핵화 협상에 관계없이 북한과 직접 미군 유해 관련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북한은 2019년 3월을 마지막으로 DPAA와의 소통을 중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맥키그 국장은 DPAA는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과 관련해 “언제든지 기회를 잡을 준비가 돼 있다”며 “연구든 현장 조사 혹은 현장 발굴이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이를 계속 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박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도 같은 행사에서 미국은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 발굴 문제를 비롯해 북한과 어떤 사안이든 ‘언제 어디서든 전제조건 없이’ 만나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