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대외 메시지를 내지 않았던 북한이 연초부터 베이징동계올림픽 불참을 공식화하는 한편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무력시위를 벌였습니다. 종전선언 협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 한층 문을 걸어 잠그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은 지난 5일 중국 측에 편지를 전달해 다음달 초 열리는 베이징동계올림픽 불참을 공식화했고 같은 날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며 한반도 정세를 긴장시켰습니다.
또 앞서 지난 1일 한국 내 탈북민이 동부전선 철책을 넘어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 한국 군 당국이 통신선을 통해 신변 보호를 요구하는 대북 통지문을 발송했지만 수신 사실만 확인하고 아직까지 답신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연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고 신년사를 대신해 전원회의 결론을 발표했지만 대미 대남 정책 방향이나 별도의 대외 메시지를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연초에 보인 북한의 일련의 행보로 볼 때 북한의 대외정책이 한층 폐쇄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박형중 박사는 북한의 최근 당 전원회의가 농업 등 내부 문제에 집중한 결론을 공개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대외관계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박사] “북한이 현재 대외관계 부분에선 별로 할 여유나 생각이나 의지가 없는 것 같아요. 국방력 강화는 대외관계와 상관 없이 계속 추진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그리고 시간표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행동은 하는데 그 문제를 가지고 크게 돌파구를 찾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대남관계나 올림픽 불참 등 하는 것을 보면 일단 수동적이고 위축적인 자세, 방어적인 자세를 보인다고 생각이 듭니다.”
북한의 연초 행보들은 미국과 종전선언 문안 조율을 마무리하고 북한과의 협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의지에 또 다시 찬물을 끼얹은 꼴이라는 진단이 나옵니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4개월 남짓 남았지만 청와대 안팎에선 최근 북한의 움직임으로 미뤄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김부겸 한국 국무총리는 9일 한국의 공영방송인 ‘KBS’의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베이징올림픽이 종전선언의 계기가 되기는 어렵다”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총리는 “그동안 한국 정부는 왜 종전선언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미국을 상당 부분 설득을 했고 국제사회도 상당 부분 동의를 해 왔다”며 “그런 상황에서 북한 당국자들이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당 전원회의에서 북한이 이렇다 할 대외 메시지를 내지 않은 데 대해 한국 정부 안에선 종전선언 협의를 북한에 제의할만한 신호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기류가 있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의 최근 행동으로 인해 한국 정부가 협의 제안을 하기에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북한이 종전선언 협의할 의지가 있다면 미사일을 쏘거나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겠죠. 그리고 탈북민 넘어간 것에 대해서 북한의 조치 이런 것을 요구했을 때 아무런 반응을 안 보이고 있다는 것이죠. 결국 문재인 정부와 더 이상 대화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그런 일련의 행동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당 전원회의에서 대미 대남 정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국이나 한국이 수용할 수 없는 전제조건을 유지하며 군사력 강화를 지속하겠다는, 기존 노선을 고수한다는 의지를 최근의 행동들로 보여준 셈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박 교수는 오미크론 변이종의 출현으로 신종 코로나 사태가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북한이 핵 무력 개발에 매진하는 시기로 삼고 당분간 대화의 문을 걸어 잠글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현재 코로나 상황에선 미국과의 대화가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대화 자체가 물리적으로 쉽지 않을 뿐더러 대화를 통해서 북한이 원하는 제재 일부 해제를 얻더라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지금 이 시점에선 그런 대화에 대한 가능성을 열기 보다는 핵 능력을 고도화 다종화 대량화하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 라는 판단으로 가고 있겠죠. 그런데 그것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라는 생각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미-북 협상 재개의 입구이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 임기 막판까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종전선언에 대한 회의론도 커지고 있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대북 제재와 신종 코로나로 인한 내부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북한은 여전히 대화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종전선언은 미-북 간 입장차에 중국의 개입 움직임까지 더해지면서 현실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미국도 바이든 정부로 넘어가면서 종전선언에 대한 관심이 사실 사라진 상태였거든요. 그 상태에서 종전선언 플랜만 갖고 임기 말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너무 거기에 올인한 측면이 있거든요. 차기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다양한 방식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할 수 있는 입구 형성, 북-미 대화 재개에 주력해야지 계속 종전선언에만 미련을 갖는다면 아마 소중한 시간이 그냥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요.”
한국 내 일각에선 신종 코로나 백신 협력이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카드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국민 여론과 북한의 반응, 경우에 따라선 지원 규모와 내용 등을 둘러싸고 미국과 협력이 필요한 점 등 풀어야 할 숙제들이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