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새해 벽두부터 잇단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와의 밀착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면서 핵 무력 고도화로 가는 호기로 국제정세를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일 중국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을 맞아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축전을 보냈다고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축전에서 “베이징동계올림픽은 평화와 친선, 단결을 지향하는 세계 모든 나라 인민들과 체육인들의 공동의 축전”이라며 “세계적인 보건 위기와 유례없이 엄혹한 환경 속에서도 성과적으로 개막되는 것은 사회주의 중국의 또 하나의 커다란 승리”라고 치켜세웠습니다.
김 위원장은 축전에서 북-중 양국의 친선관계도 강조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오늘 공동의 위업을 수호하고 전진시키기 위한 투쟁 속에서 북-중 관계는 불패의 전략적 관계로 다져졌다”며 “두 당, 두 나라 인민은 정치와 경제, 문화와 체육을 비롯한 각 분야에서 단결과 협조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올림픽위원회와 체육성은 앞서 지난달 중국 측에 편지를 보내 베이징동계올림픽 불참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2020 도쿄올림픽 불참에 따른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징계를 받아 베이징올림픽 참가가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상황 등을 추가로 거론하며 불참을 공식화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1월 한 달 새 7차례나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하며 연초부터 한반도와 주변 정세의 긴장을 고조시켰습니다.
특히 베이징동계올림픽 개최가 임박한 지난달 30일엔 검수사격이라는 명분으로 중거리 탄도미사일인 ‘화성-12형’을 쏘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정상 간 친서를 통해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단행한 미국과의 전략경쟁이 치열해진 중국의 편에 서 협력관계를 대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의 최근 도발이 중국과의 사전 교감을 거친 행동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언제 무슨 종류의 미사일을 쏜다 까지는 아니겠지만 현 상황에서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그런 포괄적 공감대는 있었을 것이다, 다만 베이징동계올림픽 개최 과정에서 북한이 대형 도발은 자제한다는 공감대도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에 대해서 별다른 성명을 내지 않고 1월을 넘어 온 거죠. 그리고 2월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니까 북한 입장에선 북-중 전략적 관계를 강조하는 친서를 공개한 거죠.”
북한은 또 신종 코로나 발생 이후 2년여 만에 중국에 이어 러시아의 교역 재개도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 뉴스’에 따르면 러시아 극동북극개발부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북-러 양측이 위축된 교역을 단계적으로 복원하는 협의를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극동북극개발부는 신홍철 러시아 주재 북한대사와 알렉세이 체쿤코프 러시아 극동북극개발부 장관이 “신종 코로나 전염병 상황에서 무역과 경제적 유대관계를 단계적으로 회복하는 일을 논의했다”고 설명하면서 두 사람이 마주 한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봄 러시아와의 국경 지역에 수입품 소독과 격리 시설로 이용할 화물철도역을 개량한 데 이어 지난해 9∼12월 창고 등을 신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과 러시아 극동 간 교역액은 신종 코로나 확산 첫 해였던 2020년 1천470만 달러였지만 지난해 1∼11월에는 4만 달러로 급감했습니다.
북한은 앞서 지난달 16일 중국과의 최대 교역거점인 신의주와 단둥 간 화물열차 운행을 약 1년 반 만에 재개한 바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중 철도 교역이 정상화되는 상황에서 북-러까지 정상화된다면 육로 교역이 거의 정상화되는 단계로 넘어가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도 이제 장기적 고립에서 국경 개방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그러나 코로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국경 개방이 이뤄지는 거거든요. 그만큼 북한 내부가 고립으로 인한 피로감을 견디기 어려운 상황까지 왔다 이렇게 봐야겠죠.”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북-러 간 교역 재개 협의에 대해 “북한이 교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면 중국 이외에 이전에도 인적 물적 교류를 해왔던 러시아와 재개하는 것을 고려하고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며 “인적 물적 교류 재개로 이어질지, 규모와 방향 등을 지켜보겠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이상숙 교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미국의 주도로 국제사회가 제재를 논의하는 가운데 북한이 공개적으로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 행보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이상숙 교수]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강화되고 북-중·북-러 협력이 강화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 대북 제재가 효과를 발휘해야 되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계속 제재에 구멍이 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북한으로선 제재가 더 강화될 것을 우려하지 않고 자국의 국방력 강화의 진로를 계속 갈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거죠.”
신범철 센터장은 북-러 교역은 규모 면에서 경제적으로 큰 의미가 없지만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 움직임에 반하는 흐름이라며 미국과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나 우크라이나 문제로 대미 갈등이 심화된 러시아 입장에선 북한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박사는 중-러와의 갈등 등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외교 현안들이 산적한 가운데 북한이 이런 국제정세를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며, 핵 무력 고도화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미국을 제압할 능력을 키우겠다는 전략목표를 최소 비용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