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6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발사 실패에 침묵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사실상의 ICBM을 활용한 정찰위성 발사를 위해 이른 시일 내에 시험발사를 재개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의 주요 관영매체들은 17일 전날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의 발사 실패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에서 미사일 발사 실패와 관련한 소식을 전혀 다루지 않은 겁니다.
북한 매체들은 통상 미사일 발사 이튿날 해당 발사의 성격을 설명하고 관련 사진 등을 내보내는 등의 보도 관행을 보여왔습니다.
북한은 16일 오전 9시 30분께 평양 순안 일대에서 신형 ICBM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을 쐈지만 발사 직후 고도가 20㎞에도 이르지 못한 초기에 폭발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북한 매체들의 침묵은 발사 실패 사실을 대내외에 발표할 경우 기술적 결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돼 부정적 파장을 우려한 때문이라는 관측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지난 2016년 무수단 미사일을 8차례 연거푸 발사했고 이 가운데 7번 실패했는데 당시에도 일절 관련 보도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선 미사일이 발사 직후 폭발해 폭발 잔해가 평양 시내 등 민가에 떨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국을 겨냥해 의도적으로 미 정보자산에 노출돼 있는 순안 일대에서 무력시위를 해 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입장에선 이번 실패로 체면을 구긴 셈이어서 북한이 서둘러 추가 시험발사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북한은 발사 실패 이후 이동식발사차량(TEL)을 정비하는 등 추가 발사에 대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미-한 군 당국은 평양 순안비행장 일대 병력과 장비 움직임 등을 집중 감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준락 한국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17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신형 ICBM 추가 도발 가능성을 미-한 간 공조 하에 면밀히 추적 감시 중”이라며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홍민 실장은 북한이 김일성 주석 생일인 다음달 15일 태양절 110주년에 정찰위성을 발사한다는 계획에 따라 시험발사에 한층 박차를 가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이번에 약간 촉박하게 4월15일에 맞춰서 축포 수준으로 쏘기 위해서 일정이 굉장히 촘촘하게 진행이 되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준비 부족 등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바로 연속해서 이번에 실패한 것을 만회하거나 거기에 대한 후속적인 실험을 향후 한 달 정도 남았거든요, 태양절까지. 최소 두세 번 정도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서해위성발사장 등을 직접 현지 지도한 만큼 정찰위성 발사를 기정사실로 보고 이번 실패가 미사일의 심각한 기술적 문제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성공률이 높은 방식을 택해 정찰위성 발사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부연구위원은 북한이 순안 일대에서 불과 열흘 안팎의 간격으로 연이어 미사일을 쏜 것은 그만큼 신형 ICBM의 성능 데이터가 부족한 때문이고 이를 급하게 확보하려는 조급함이 반영된 행동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양 부연구위원은 북한이 이번 실패로 신형 ICBM인 ‘화성-17형’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 이미 발사에 성공한 기존 ICBM을 이용해서라도 위성발사 이벤트를 가지려고 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양욱 부연구위원] “화성 14,15,17 이 중에서 적당한 것을 바꿔서 페이로드에 위성을 싣는 그런 방향으로 갈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 중에서 뭔가 최대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을 북한은 계속 추진하려고 하지만 만약 이번 실패 때문에 화성-17에 위성을 실어서 쏘는 게 힘들어졌다고 판단되면 그러면 다른 것으로 넘어갈 수 있는 거죠.”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도 “북한이 실패 원인을 면밀하게 분석해 다시 같은 유형의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거나 체면을 살리기 위해 실패 가능성이 적은 다른 미사일을 조만간 시험발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외부 환경 측면에서도 북한이 신형 ICBM 발사를 서둘러야 할 요인들이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정성장 센터장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개 양상에 따라 러시아의 대 서방 협상력이 약화될 경우 국제사회 대북 제재 움직임에 러시아가 북한이 기대하는 만큼 힘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센터장] “만약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협상에서 진전이 이뤄져서 휴전이나 종전에 합의하게 되면 그 다음부턴 러시아가 미국과 서방세계의 대러시아 제재를 완화하기 위해서 북한이 ICBM을 발사할 경우 미국과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을 보려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북한으로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타협하기 전에 ICBM을 시험발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이와 함께 한국에서 보수성향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는 오는 5월 10일 전에 대미 대남 협상력을 높이려고 북한이 대형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북한은 지난 2012년 한국의 18대 대통령 선거 일주일 전에 ‘위성 발사’라며 장거리 로켓을 쏜 데 이어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전에 3차 핵실험을 단행했습니다. 또 2017년엔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6차 핵실험을 했습니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박형중 선임연구위원] “과거에 보면 미국이나 한국 선거에 앞서서 도발했던 경우가 있죠. 그러니까 이게 북한이 자기의 의사를 관철할 때 의존하는 방식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협박이거든요. 차기 정부에 대한 협박 메시지 차원에서 시간을 조절했을 가능성도 있죠.”
정성장 센터장은 북한이 신형 ICBM을 시험발사해 기술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차례 정도의 시험발사가 필요하다며, 북한에 강경한 입장을 가진 윤석열 정부 출범 때까지 신형 ICBM 성능시험이나 정찰위성 개발 등을 위한 시험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