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2단계'를 선언하고, 동부에 있는 돈바스 지역의 '완전 해방'에 주력하겠다고 밝힌 지 몇 주가 지났지만, 이렇다할 전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러시아군은 돈바스에서 몇km 밖에 진전을 못했다"며 "현재 러시아군은 하르키우주 이지움 동쪽과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최근 언론에 설명했습니다.
당초 5월 9일 이전에 러시아가 돈바스를 장악한 뒤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를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5월 9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에 승리한 날로, 러시아에서 '전승 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매년 이 날이 되면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여는 등 곳곳에서 각종 행사를 진행합니다.
1. 상당한 전력 손실
동부 지역 공세를 위해 수도 크이우(러시아명 키예프) 방향 병력을 퇴각시키고 전열을 가다듬었던 러시아가 전세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이유로 첫째, 전쟁이 장기화하는데 따른 후유증이 꼽힙니다.
전력 손실이 상당하고 러시아군 장병들의 피로도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영국 국방부는 30일자 우크라이나 전쟁 최신 정보 보고에서, 러시아군은 "북동부 진격에 실패하면서 (전투력이) 고갈된 서로 다른 부대를 합치고 재배치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재배치 되는 부대) 대다수가 사기 저하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흡한 전술 조율 문제가 여전하다"며 "부대 차원의 기술 부족과 일관성 없는 공중 지원으로 국지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전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정부도 앞서 같은 맥락의 분석을 내놨습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 26일 독일 람스타인 미 공군기지에서 개최한 40개국 국방장관 회의에서 "러시아는 개전 후 지상군 전력을 매우 크게 손실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장비도 상당히 많이 잃었고, 정밀 유도탄도 많이 썼다"면서, 따라서 "군사적 역량 면에서 전쟁을 시작했을 때보다 약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2. 우크라이나 강력한 항전 의지
우크라이나 측의 강렬한 저항도 현재 전황을 가늠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최근 동부 전선에서 우크라이나 정예군은 러시아군을 10차례 가까이 격퇴하며 방어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 측이 사실상 장악한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5월 9일에 맞춰 열병식을 개최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시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우크라이나 측 병력 수천 명이 여전히 저항하는 중입니다.
제철소에 남은 우크라이나 병력에 러시아 측이 수차례 항복을 요구했으나, 해당 병력은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3. 미국 등 무기 공급 확대
아울러,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무기 공급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미국 등 30여 개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수 지원 규모는 약 50억달러로 추산됩니다.
이 가운데, 미국의 지원액이 가장 많은 37억달러를 차지합니다.
미국은 이밖에 물량으로 구체화하기 어려운 정보 사안 등도 우크라이나 측에 적극 제공하고 있습니다.
4. 악천후 등 환경 요인
날씨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전황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미 육군 정보당국 관계자는 30일 VOA와의 통화에서 "돈바스에 폭우가 이어지면, 러시아군 장병들은 빗속에서 싸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최근 봄이 무르익으면서, 돈바스 지역 토양이 진흙으로 변해 군용 차량 이동이 쉽지 않은 점도 러시아군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우기에 들어가면 땅이 질척거리는데, 탱크와 궤도차량들은 이런 환경에서 전진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포장 도로를 찾아 달릴 경우, 지형 지물을 파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에 표적으로 노출될 수 있어 러시아군이 이동 폭이 제한된 상황입니다.
야전에서는 날씨가 안좋을 수록 지형에 익숙한 쪽이 유리하다는 게 군사적 통설입니다.
5. '속도 조절' 가능성
다만, 러시아군이 수도 크이우 점령에 실패한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동부 전선에서는 일부러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와 폴리티코 등 29일 보도에 따르면, 미 고위 국방당국자는 러시아군의 움직임에 관해 "느리고 고르지 않다"며 이어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러시아군이 크이우 진격 당시 보급선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속도전을 추구하다보니 전투를 지속할 자원이 고갈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동부 전선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의 항전 속에 보급선이 길어지는 것을 피하려 러시아군이 서두르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 러시아 외무 "우크라이나와 매일 접촉"
이런 가운데,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평화적 관계를 회복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라브로프 장관은 30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의 단독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언급하고, 정전 협상을 위해 우크라이나 측과 매일 접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우크라이나의 영구 중립, 비핵·비동맹·비군사화와 같은 분쟁 후 상황의 많은 요소와 안보 보장을 (협상 내용에) 포함해야 하는데 진전이 쉽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라브로프 장관은 이번 전쟁의 책임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있다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위기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우크라이나 위기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냉전 종식 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파괴적 노선을 먼저 언급해야 한다"고 라브로프 장관은 답했습니다.
라브로프 장관은 "나토를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동진했다"고 강조하고 "몇년에 걸쳐 나토의 기반시설이 러시아 국경에 가까워졌다"고 덧붙였습니다.
라브로프 장관은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해야 이번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스팅어와 재블린 미사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스팅어'는 대공 미사일, '재블린'은 대전차 미사일로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는 대표적 무기들입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