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 네 곳을 러시아와 병합하는데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가 지역별 최고 99% 넘는 압도적 찬성률로 사실상 가결됐습니다.
현지시각 28일 오전 잠정 집계된 지역별 찬성률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주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일대 99.23%, 루한시크 주의 루한시크인민공화국(LPR) 일대 98.42%, 남부의 자포리자 주 일부지역 93.11%, 헤르손 주 일부지역 87.05%를 기록한 것으로 리아노보스티 통신이 보도했습니다.
볼로디미르 살도 헤르손 주 군-민합동행정위원장은 27일 밤 개표 윤곽이 드러난 시점에 "주민 대다수가 우크라이나에서 탈퇴하고 러시아에 합류하는 것을 지지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기자회견에서 주장했습니다.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러시아 당국은 해당 지역들을 자국 영토에 편입할 계획입니다.
오는 29일 러시아 국가 두마(하원)와 상원에서 점령지 영토 편입 승인안을 처리한 뒤, 다음날인 30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통해 병합을 공식 선언할 것으로 러시아 언론이 앞서 보도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15%를 병합하게 됩니다. 포르투갈 전체 영토와 비슷한 면적입니다.
이번 주민투표는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 해당지역들에서 동시 진행된 가운데, '공개투표'와 '강제투표'를 비롯한 부정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 푸틴 "사람 구하는 것이 최대 관심"
닷새동안의 투표 일정이 완료된 27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당국자들과의 회동에서 "주민투표 실시 지역의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와 국가 전체의 최대 관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최대 관심'이라는 발언의 의미에 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가 영토 방어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고위 당국자들의 앞선 발언들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주민투표 결과가 "급격한 법적 의미를 가질 것"이고,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페스코프 대변인은 밝혔습니다.
■ 우크라이나 반발...미국 "인정 않을 것"
우크라이나와 미국, 서방 국가들은 이번 주민투표와 영토 병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일제히 재확인했습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가장 중요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번 결정(주민투표 실시와 종료)이 전장에서 우크라이나의 정치, 외교, 행동 등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취재진에게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영토 병합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이어서, 미국이 이 문제에 관해 러시아에 "신속하고 심각한 제재를 부과할 것"이라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날(27일)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수도 크이우(러시아명 키예프)를 사전 공지없이 방문했습니다.
콜로나 장관은 현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지지를 재확인했습니다.
피터 스타노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러시아의 '불법' 투표를 기획한 인물에 대해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이날 발표했습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러시아가 실시한 가짜 주민투표는 합법성이 없고, 노골적인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조하고 "이 영토(러시아 점령지 네 곳)는 우크라이나의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중재·동맹국들도 러시아 행위 비판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 협상 중재 역할을 자임해온 터키('튀르키예'로 국호 변경) 당국도 앞서 이같은 입장에 동참했습니다.
터키 정부는 최근 성명을 통해 "그런 불법적인 일(점령지 병합 주민투표)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외교 절차를 회복하려는 시도를 어렵게 만들고 불안정성을 심화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러시아의 전통적 동맹국인 세르비아와 카자흐스탄 등도 병합 시도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 "러시아 병합 후 계엄령 추진"
이런 가운데, 주민투표 실시지역들을 러시아에 병합한 후 계엄령 선포를 계획하고 있다고 27일 지역 수뇌들이 밝혔습니다.
데니스 푸실린 DPR 수반과 레오니트 파세치니크 LPR 수반은 이날, 병합 완료 이후 러시아 당국자들과 이같은 계획을 논의할 것이라고 타스 통신에 밝혔습니다.
파세츠니크 수반은 "통일(편입)될 경우 우리는 러시아 연방이 될 것이고, 러시아에 이러한(계엄령) 결정을 내릴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공동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같은 계엄령 추진 발언은 러시아군의 활동을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에서 '러시아 영토 방어'를 위한 정규전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도로 우크라이나 매체들은 해설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러시아 의회에서는 새로운 '대테러 작전'이 필요하다는 언급이 나오는 중입니다.
■ '특별군사작전'→'영토 방어' 전환
아나톨리 비보르니 러시아 국가 두마(하원) 안보위원장은 26일 "새로운 지역(병합지)에서 우크라이나의 '테러' 공격을 막기 위해 러시아의 대테러 작전 체제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함께 병합 투표가 마무리된 자포리자 주와 헤르손 주에 관해서도 비슷한 발언이 나왔습니다.
러시아 측이 임명한 인근 지역의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름반도(크림반도) 수반은 "돌이킬 수 없는 특정 지점이 곧 지나갈 것"이라면서 "해방(점령)된 영토가 새로운 지위를 얻는 것(병합)은 불확실성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27일 현지 언론에 밝혔습니다
이어서 "이 곳들(자포리자 주와 헤르손 주 일부)은 완전한 러시아 연방 일원이 될 것이고, 우리는 특별 군사 작전이 아닌 우리 영토에서의 대테러 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우크라이나 국민, 자국군과 싸우게 될 수도
병력 부족을 겪고 있는 러시아가 병합 지역 주민들을 동원령 징집 대상에 포함시킬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1일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해 부분적 군 동원령을 발동한 바 있습니다.
러시아가 병합지역을 자국 영토로 간주해 동원령을 적용하게 되면, 우크라이나 국민이 우크라이나군을 상대로 싸우도록 강제하는 것이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러시아 당국은 점령지들을 병합한 뒤 '영토 방어'를 내세워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까지 시사한 상태입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24일 미국 뉴욕에서 유엔총회 연설 직후 회견에서,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들이 자국 영토로 편입되면 "러시아의 완전한 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러시아 연방의 모든 법규와 원칙, 전략은 러시아 영토 전체에 적용된다"면서 "이는 핵무기 사용 원칙에도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핵무기 사용 권리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27일 또 다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올린 메시지에서 "오로지 자신들의 말만 듣는 귀머거리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면서 "러시아는 핵 군축 분야의 국가 정책 기본 원칙을 엄격히 따라 사전 규정한 경우, 필요하면 핵 무기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전 규정한 경우'가 무엇인지에 관해 첫째, "우리나 동맹이 이러한 종류의 무기를 사용한 공격을 받는 경우", 그리고 둘째, "재래식 무기를 사용한 공격으로 우리 국가의 존립이 위협 받는 경우"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최근 이에 관해 직접 언급한 바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1일 군 동원령을 발표하는 대국민연설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밝혔습니다.
메드메데프 부의장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나토 동맹이 먼저 핵 위협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적대적인 이웃 국가에 핵 무기가 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라며 "예를 들어 오늘날 나토 국가들이 직접 통제하는 '나치'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러시아에 대한 위협이 한도를 넘는다면 우리는 대응해야 할 것"이라면서 "누구의 허락도, 긴 협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이것은 분명히 허풍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 '보복 못할 것' 자신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핵 무기를 사용하더라도 미국과 나토가 쉽사리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상상해 보라"고 강조한 뒤 "이 상황에서도 나토가 직접 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결국 우크라이나의 운명보다 미국과 영국, 나토의 안보가 북대서양 동맹에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대통령과 총리를 지낸 인물로서,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입니다. 사실상 러시아의 '2인자'로 꼽힙니다.
지난 22일에도 "러시아는 점령지를 포함해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전략핵무기를 포함해 무기고에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앞서 지난달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점령지를 직접 시찰도 했습니다.
■ 미국, 러시아에 강력 경고
앞서 미국 정부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25일 방송된 CBS '60분(60 Minutes)'에 출연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시 "그 결과가 끔찍할 것이라는 점을 러시아가 우리로부터 전해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우리는 그 점을 매우 분명히 해왔다"고 말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핵 전쟁 위협에 대해 미국이 크렘린궁과 비공개리에 의사소통을 해왔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같은 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같은 상황을 언급했습니다.
설리번 보좌관은 ABC 주간 시사프로그램 '디스 위크(This Week)'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면, 러시아는 파국적인 후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런 점을 러시아 측에 분명하게 통보했다면서, "매우 고위급에서 비공개리에 러시아와 직접 커뮤니케이션해왔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전장을 둘러싼 핵무기 문제를 놓고 미국과 "간간이" 접촉했다고 26일 브리핑에서 말했습니다.
■ '동원령 반발' 입영사무소 총격
러시아의 부분적 군 동원령에 내부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26일 입영사무소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대 남성으로 파악된 총격범은 사건 직후 체포됐습니다.
총격범이 사건 현장에서 자신을 '25세, 이름은 러슬란 지닌'이라고 밝히는 동영상이 온라인에 퍼졌으나, 수사 당국은 진위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이 인물은 입영사무소에 들어선 뒤 "누구도 싸우러 가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면서, 입영 대상자들 사이에서 "우리 모두 집에 당장 집에 가야한다"고 말한 것으로 현지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이고르 코브제프 이르쿠츠크 주지사는 사건 당일 "우스트-일림스크에서 한 청년이 군역 등록·입대 사무소에 총을 쐈다"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이어서 "우리가 단결해야 하는 시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부끄럽다"면서 "서로 싸우지 말고 실제 위협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총격범의 신병 처리에 관해 "완전히 처벌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무차별 징집' 항의
이번 사건은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 지역 이르쿠츠크의 우스트-일림스크 시내 입영사무소에서 일어났습니다. 총격 직후 고위 징집요원 1명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주요 매체들이 전했습니다.
해당 징집요원이 곧 사망했다는 보도가 이어졌으나 공식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총격범의 어머니는 "부분 동원령 선포 후, 아들의 절친한 친구가 25일 징집 통보를 받았다"고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고 "(그 친구는 현역)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이어서 징집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아들은 이 일 때문에 '모두 동원되고 있다'면서 매우 불평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해 동원령을 발표하면서 "(현역 복무 이후) 예비역에 있는 시민들만 징집 대상이 되는" 것으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같은 날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예비군 30만명을 동원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예비역 해당 여부와 상관없이 무차별적인 징집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총격범 어머니의 주장입니다.
■ 일부 소집 잘못 인정
이밖에도 동원령 시행의 문제점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러시아 각 지역 당국과 국방부가 동원령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고연령자와 환자, 장애인까지 무분별하게 징집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아울러, 고학력자는 동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소수민족 자치공화국 거주자들에 소집 인원이 몰리는 사례도 보도됐습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에 관해, 일부 소집이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지역 당국과 국방부가 실수를 바로잡고 있다고 26일 브리핑에서 밝혔습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전역 또는 접경 지대에서 계엄령이나 국경 폐쇄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동원령 발표 이후 징집을 피해 국외로 도주하는 사례가 이어지는 가운데, 항의 시위가 수도 모스크바 등 주요 도시에서 확산하는 중입니다.
이에 대응해 계엄령을 발동하거나 국경을 폐쇄해야 한다는 지적이 러시아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계엄령이나 국경 폐쇄 결정을 아직 내리지 않았다고 26일 밝혔습니다.
■ 미, 우크라이나에 4억5천750만 달러 추가 지원
이런 가운데, 미국이 26일 우크라이나에 4억5천750만 달러 추가 지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러시아의 잔혹한 침공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자국민을 보호하는 사법당국의 노력을 돕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를 추가 지원한다"며 이같은 방침을 공개했습니다.
이번 지원은 러시아가 자행한 잔혹행위에 관한 조사와 기록, 기소 등에 사용될 예정이라고 국무부는 설명했습니다.
국무부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해 12월 이후 우크라이나 사법 당국에 지원한 총액은 6억4천500만 달러에 달합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