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연이어 9.19 남북 군사합의를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포 사격에 나서면서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7차 핵실험과 같은 전략 도발 외에도 국지 도발 가능성에 대한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은 한국 측의 통상적인 사격 훈련을 빌미로 지난 14일 오전과 오후에 걸쳐 동해와 서해 해상완충구역으로 포병 사격을 실시했습니다.
14일 새벽 황해도 마장동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130여 발, 강원도 구읍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40여 발을, 오후엔 강원도 장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90여발, 서해 해주만 일대 90여발, 서해 장산곶 서방 일대 210여발을 쐈습니다.
탄착 지점은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사격이 금지된 북방한계선, NLL 북방 해상완충구역 내였습니다.
한국 군은 북한의 포병사격에 대해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며 즉각 도발을 중단하라는 경고 통신을 여러 차례 실시했습니다.
북한은 2019년 11월 창린도 방어부대의 해안포 사격 등 과거에도 9.19 군사합의 위반을 한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노골적으로 어긴 건 처음입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들 사격이 모두 자신들의 제5군단 전방지역에서 적들의 포 사격 정황이 포착된 데 따른 대응 차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대통령실과 정부, 군은 북한의 잦은 도발과 7차 핵실험 가능성에 대비해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휴일인 16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 도발이 빈번해지는 만큼 긴장감을 갖고 대비 태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24시간 대비 체제”라고 밝혔습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같은 날 오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을 찾아 “최근 북한이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탄도미사일 발사를 지속하는 한편, 한국측의 정당한 사격훈련을 ‘고의적 도발책동’이라고 억지 주장하면서 9.19 군사합의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 행위를 서슴지 않는 것은 치밀하게 계획된 도발이자, 의도된 일련의 도발 시나리오의 시작일 수 있다”며 전군에 긴장을 늦추지 말 것을 지시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북한이 노골적 합의 위반 행동을 하면서도 한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양상은 보다 강도 높은 대남 도발을 위한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술핵 미사일 발사와 함께 한국과의 접경지역에서의 재래식 도발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끌어올리려는 계산된 행동일 수 있다는 겁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미사일 도발 말고 그보다 더 강하게 압박하려면 결국은 DMZ쪽 도발이 필요한 수순이다, 그러면 이런 소위 굴레를 벗어 던져야 하는 것 아니냐 남쪽에서 먼저 위반했다고 하면서 책임은 남쪽에 있다고 하면서 9.19 군사합의 파기로 가고 DMZ 인근의 도발을 하려고 하는 명분쌓기용이 아니냐 이런 복합적 해석이 가능해요.”
북한의 행동이 스스로 군사합의를 파기하려는 의도라기 보다 한국 정부에게 공을 넘김으로써 한국 내 여론 갈등을 조장하고 미국과의 동맹강화, 미한일 군사협력 강화를 추구하는 윤석열 정부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려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위반 행위에도 군사합의 파기를 먼저 선언하는 것은 남북간 대결 격화에 따른 정치적 부담 때문에 쉬운 선택이 아니라며 북한이 한국 정부의 약점을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북한의 도발에 대해선 국민적 경각심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여론조사를 보면 압도적 다수가 평화적 해결을 원하고 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윤 정부가 만일에 마지막 완충선이라고 할 수 있는 9.19 군사분야 합의를 파기하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죠.”
한국 정부는 특히 17일부터 28일까지 진행하는 연례 야외기동훈련인 호국훈련을 빌미삼아 북한이 또 다시 도발에 나설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최근 북한 도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관련 동향을 면밀히 추적·감시하면서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 등을 확정짓는 당대회와 당 중앙위 1차 전체회의가 이어지는 16일부터 23일 사이에 북한이 도발에 나설 지도 주시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긴장 고조가 부담스런 중국 입장을 고려하면 북한이 7차 핵실험 같은 고강도 도발에는 신중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시 주석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국경절 73주년 축하 서한에 대해 지난 13일 보낸 답전에서 북중 협력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지금 국제와 지역 정세에서는 심각하고 복잡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북중 쌍방 사이에 전략적 의사 소통을 증진시키고 단결과 협조를 강화해야 할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은 답전에 북한의 긴장 고조 행위에 대한 시 주석의 복잡한 속내가 담겨 있다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선임연구위원] “한미 그리고 한미일이 공언하는 게 만약 핵실험이나 대륙간 탄도 미사일 실험을 진짜로 하는 경우 압도적 무력으로 위협하겠다는 식으로 계속 하는데 중국 입장에선 그게 북한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을 하겠죠. 그러니까 아마 중국도 걱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은 중국 당 대회 이후 한반도 정세가 더 격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호국 훈련이 중국의 주요 정치 행사가 끝나고 나서도 닷새동안 더 진행되기 때문에 북한이 이 기간에 대남 도발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