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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 32%...북한, 한국 측 대화 제안에 무반응


22일 한국 파주 임진각 망배단에서 실향민과 탈북민들을 위한 합동차례 행사가 열렸다.
22일 한국 파주 임진각 망배단에서 실향민과 탈북민들을 위한 합동차례 행사가 열렸다.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5년째 중단된 가운데 상봉 신청자들이 고령으로 사망하면서 생존자 비율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설 명절을 맞아 또 다시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 등을 위한 대화를 촉구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는 지난 한 해 동안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가운데 사망한 이들의 수가 모두 3천647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말 기준 한국 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총 13만3천675명인데 이 가운데 생존자는 31.8%인 4만2천624명에 불과합니다.

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넘으면서 고령으로 사망하는 이산가족 1세대가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존한 신청자들을 연령별로 보면 90세 이상이 전체의 28.5%, 80대가 37.1%나 되고 70대는 19.2%, 60대 9.3% 그리고 59세 이하는 6% 정도입니다.

북한에도 많은 수의 이산가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열악한 북한의 의료 인프라와 낮은 평균수명 등을 고려할 때 이들 가운데 상당 수가 끝내 헤어진 가족과 재회를 못하고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반도 정세가 급랭하면서 5년 가까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2018년 9.19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됐던 상설면회소 개소와 화상 상봉, 영상 편지 교환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지금의 신청자들의 사망 속도로 볼 때 수년 내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남북한 간 주요 현안에서 빠질 수도 있다고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1세대 이산가족 분들이 거의 세상을 떠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2세대, 3세대가 적극적으로 상봉하려는 의지는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1세대 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시게 되면 이산가족 의제는 더 이상 남북간 주요 현안에서 배제될 그럴 가능성도 있는 거죠.”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 8월 처음 시작돼 2018년 8월까지 총 21차례 열렸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한반도 분단 상황에서 남북 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기능을 했습니다.

1970년대 초 남북한 간 분단 후 첫 대화도 이산가족 문제를 둘러싼 적십자회담이었습니다.

한국의 윤석열 정부는 북한 비핵화라는 궁극적인 목표와는 별개로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대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9월 추석 직전 담화를 통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당국간 회담을 제안했습니다.

또 김기웅 통일부 차관은 설날인 22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망배단에서 열린 망향경모제에 참석해 권 장관의 앞선 “이산가족 당국 회담 제의를 포함해 한국 정부의 모든 제의는 유효하고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그러나 한국 정부의 이 같은 제안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를 기본적으로 정치적 사안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남북한 대치 국면에서 북한의 호응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북한의 군사 도발이 전례없는 빈도로 이뤄졌고 핵 무력 강화를 선포하고 한국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근 노동당 전원회의 발언 등으로 미뤄 북한이 현 시국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통해 정치적 혹은 경제적으로 뭔가를 얻으려고 나서진 않을 것이라는 게 김 전 차관의 설명입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이산가족 카드를 북한이 썼을 때 국면을 전환하고 자기들이 유리한 것을 얻을 수 있느냐는 건데 설령 이산가족 카드를 쓰더라도 한국이나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강한 입장을 누그러뜨릴 것 같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선 이산가족 카드를 북한이 수용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이 최근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채택하면서 외부 문물 유입을 차단하고 사상통제를 강화하는 북한 내부의 흐름과도 맞지 않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한 때는 정부 차원의 공식 행사가 없을 때에도 브로커들을 활용해 중국에서 만나거나 서신 교환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북중 국경 통제가 강화되고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북중 국경을 통한 인적 왕래가 차단되면서 이 같은 민간 차원의 이산가족 만남 또는 연락 수단도 모두 막힌 상태입니다.

동아대학교 강동완 교수는 설사 신종 코로나 상황이 호전돼 북중 간 인적 왕래가 재개되더라도 북한 당국은 이산가족 만남을 포함해 주민들의 외부 사회와의 일체의 접촉을 용납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녹취: 강동완 교수] “외부 문물이 들어올 수 있는 어떤 경로나 방식들을 차단하려고 할텐데요, 그런 점에서 보면 북한 주민들이 중국에 나와서 남한 사람들과 접촉하고 또 거기에서 받은 물건들을 북한 내부에 들여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당분간은 이런 접촉점이 완전히 중단되거나 또는 활동하기가 굉장히 어려울 것으로 전망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심각한 경제난에 처한 북한의 현실적인 여건도 이산가족 상봉을 제약하는 요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체제 속성 상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이산가족을 평양에 집결시켜 장기간 숙식을 제공하며 정치 선전적인 목적에 맞게 이들을 교육시키는 일련의 과정들이 북한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라는 겁니다.

조 박사는 그러나 무엇보다 이산가족 상봉의 가장 큰 걸림돌은 얼어붙은 남북관계라며 최고 지도자 간 결단이 아니고선 이뤄지기 힘든 국면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은 남북관계 선을 확실히 그은 상황이고 윤 정부도 강경 대응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만 따로 떼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다만 최고지도자간 결단이 있으면 이산가족 상봉이 또 어렵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은 실무적 차원에서의 문제 해결은 거의 불가능하고요, 결국 남북관계 돌파구를 양측 최고지도부가 만드느냐 마느냐 여기에 이산가족 상봉 여부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조 박사는 이산가족 상봉의 본질이 일회성 만남이 아니라 가족의 재결합과 가족관계 회복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그런 관점에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이미 늦은 셈이지만 한국 정부로선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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