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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쿠데타 2년 맞은 미얀마의 어제와 오늘


2월 1일, 미얀마 쿠데타 2주년을 맞아 태국 방콕에서 미얀마의 민주화와 아웅산 수치 전 국가고문의 석방을 촉구하는 연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2월 1일, 미얀마 쿠데타 2주년을 맞아 태국 방콕에서 미얀마의 민주화와 아웅산 수치 전 국가고문의 석방을 촉구하는 연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 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2월 1일로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지 만2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미얀마에서는 3천 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고 수만 명이 체포됐습니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는 아직도 민간 정부에 정권을 이양하지 않고 또다시 국가비상사태를 연장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군부 쿠데타 2년을 맞은 미얀마 상황 살펴보겠습니다.

“군부의 영향력이 막강한 이유”

미얀마는 오래전부터 군부의 영향력이 막강한 나라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른 많은 신생국처럼 미얀마도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는데요. 영국의 식민 지배에 맞서 미얀마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네윈 장군이 1962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네윈 군사 정부는 오랜 독재 끝에 1988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축출됐는데요. 하지만 네윈 치하에서 힘을 키운 군부는 2015년 미얀마가 처음으로 민주적인 총선을 치를 때까지 50년 이상 미얀마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얀마 국민들 사이에는 미얀마의 독립을 위해 항거한 군인들에 대한 존경의 정서도 팽배했습니다. 미얀마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독립운동가 아웅산 장군도 군인 출신입니다

미얀마 군부의 영향력은 미얀마 의회를 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얀마 헌법은 군부에 전체 의석의 25%를 할당하도록 보장하고 있습니다. 즉 의석의 4분의 1이 군부가 지명한 인사들로 채워진다는 의미인데요. 이는 곧 군부의 동의나 지지 없이는 어떠한 의사 결정도 힘들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2016년 출범한 아웅산 수치 당시 국가 고문의 민간 정부조차 군부의 눈치를 보느라 군의 로힝야족 탄압을 묵인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군부, 쿠데타 감행”

2021년 2월 1일,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미얀마 군부는 총과 탱크를 앞세워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수도 네피도를 비롯한 주요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한 해전인 2020년 11월, 미얀마는 두 번째로 민주적인 총선을 치렀는데요. 그 결과, 아웅산 수치 당시 국가 고문이 이끈 집권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80% 넘는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조사를 촉구하며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쿠데타를 일으켰는데요. 군부는 1년의 계엄 기간 후 합법적인 총선을 치르겠다며 그때까지는 군부가 통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군부가 집권한 지 벌써 만 2년이 됐습니다. 미얀마 군부는 국제 사회의 제재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연장해가며 집권 기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얀마 국민들은 쿠데타 발발 직후부터 전역에서 쿠데타에 항거해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NLD 지도자들이 중심이 돼서 임시 정부 격인 ‘국민통합정부(NUG)’도 출범했는데요. 하지만 미얀마 군부에 맞서 구심적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미얀마 군부는 계속되는 시민들의 비폭력저항과 소수민족의 무력 투쟁을 유혈 탄압했고, 이 과정에서 비무장 시민들이 무차별 총격을 당해 국제 사회의 공분을 샀습니다.

군부의 계속되는 인권 유린에 미얀마 국민의 저항 운동은 아무런 결실도 거두지 못한 채 2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군인 또는 경찰의 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약 2천900 명, 시위에 연루돼 체포된 사람은 수만 명에 달합니다. 또한 쿠데타 후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국내 실향민이 약 1만2천 명, 아예 미얀마를 떠나 국외로 이주한 사람도 7만 명이 넘습니다.

“불안정한 경제”

군부 쿠데타로 미얀마 경제는 큰 혼란에 빠졌고, 결과적으로 미얀마 국민의 삶과 생계에 지대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주요 서방국은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고, 계속되는 정정 불안에 외국 투자자들은 미얀마에서 발을 빼거나 신규 투자를 꺼리는 상황입니다.

미얀마 화폐의 가치 하락과 외화 부족도 미얀마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세계은행은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서, 올 회계연도 미얀마 경제는 3%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는 쿠데타 이전과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2018~2019 회계연도 미얀마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6%였습니다. 하지만 2021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에 쿠데타까지 벌어지면서 미얀마 경제는 18%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는데요. 그 충격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지만 미얀마 국민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한 현실입니다.

일자리가 감소하고 가계 소득이 줄었지만 물가는 폭등하고 식품 소비는 크게 줄었습니다. 현재 미얀마 가정의 약 4%가 최악의 상태는 아니지만 기아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가운데 불법 마약 거래도 성행하고 있습니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최신 보고서에서 미얀마의 경제 침체로 불법 마약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얀마는 세계 최대 필로폰 공급국의 하나고요.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아편 생산국입니다.

“불투명한 총선”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 2주년인 2월 1일을 맞아 국가비상사태를 6개월 연장한다고 전격 선언했습니다.

군부는 쿠데타 당시 1년 동안 국가비상사태를 발령하고 총선을 치르겠다고 약속했는데요. 하지만 그 후로도 계속 6개월씩 연장해오고 있습니다.

이로써 오는 8월로 예정된 미얀마 총선 일정도 연기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앞서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미얀마 독립 75주년인 1월 4일, 오는 8월에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정확한 날짜는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미얀마 군부는 비상사태 연장의 이유로 나라가 여전히 비정상적인 상황에 있고, 평화롭고 안정적인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지난주 미얀마 군부는 새 선거법도 제정했는데요. 후보 등록 자격과 조건, 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반대 세력의 참여를 원천 봉쇄함으로써 장기 집권의 포석을 마련한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 국무부는 미얀마 쿠데타 발발 2주년을 하루 앞둔 1월 31일, 유럽연합(EU) 고위 대표와 알바니아, 호주, 영국, 캐나다, 우크라이나, 한국 등 20여 개국 외무장관 공동명의의 성명을 발표하고, 군부 정권에 폭력 종식과 민주적 절차 재개를 촉구했습니다. 같은 날 미국 재무부는 미얀마 군부와 관련된 개인과 기관에 제재를 단행했는데요. 쿠데타 발발 후 지난달까지 미얀마와 관련해 미국 국무부가 제재를 단행한 개인은 74명, 기관은 29곳에 달합니다.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 당선인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 당선인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 당선인입니다.

지난 1월 28일 체코 공화국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무소속의 페트르 파벨 후보가 전직 총리인 안드레이 바비시 후보를 꺾고 체코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됐습니다.

체코는 의원내각제 국가로, 행정수반인 총리가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외교에 영향력을 발휘하며 총리와 내각 등의 임명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해 61살인 파벨 당선인은 정통 군 관료 출신입니다.

체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영국의 명문 킹스칼리지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12년 7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약 3년간 체코 군참모총장을 지냈고, 바로 이어 6월부터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군사 정책을 조정 총괄하는 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2018년 6월까지 위원회를 이끌었습니다.

2018년 군에서 은퇴한 후에는 주로 강연과 군사 자문 등의 역할을 했고요. 2020년 체코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자 민간 주도 프로그램을 발족시켜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등을 위한 자금 지원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파벨 당선인은 체코 정치권이 주목한 유력한 대권 후보 가운데 1명이었습니다. 여러 정당이 그의 입당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하지만 지난해 6월, 무소속으로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파벨 당선인은 유세 기간, 유럽연합(EU), 나토와의 협력 관계를 강조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도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서는 안보 위협으로 간주해 견제했는데요. 당선 확정 이틀 후인 지난달 30일에는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과 통화하고 협력을 다짐해 중국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파벨 당선인은 또 역대 정부가 미뤄왔던 까다로운 주제인 유로화 도입을 지지하고, 동성결혼 등에도 진보적인 입장입니다.

현재 체코는 EU 회원국이면서도 다른 회원국과의 경제적 차이 등 여러 이유로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파벨 당선인은 다음 달, 체코의 제4대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체코 대통령의 임기는 5년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쿠데타 2주년을 맞은 미얀마의 어제와 오늘 살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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