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에 대한 집중 조명이 북한의 군사 위협과 인권 유린 실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우려했습니다. ‘후계자설’ 논쟁이 자칫 4대 권력세습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안소영 기자입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인 김주애가 부각되면서 북핵 등 시급한 안보 사안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는데 대해 우려했습니다.
[녹취: 클링너 선임연구원] “There’s a focus on the potential successor of North Korea rather than on the more immediate and more important security threat to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We should be more focused on a multi warhead ICBM that can target several US cities rather than the little girl.”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14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에 대한 보다 즉각적이고 중요한 안보 위협보다 북한의 잠재적인 후계자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우리는 이 어린 소녀보다 미국의 여러 도시를 겨냥할 수 있는 북한의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점증하는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김주애’에게 돌리는 “마술 같은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11월 18일 ‘화성 17형’ 시험발사 현장에 아버지 김정은의 손을 잡고 처음 모습을 드러낸 김주애는 열흘 만에 ICBM 개발 공로자와의 사진 촬영 현장에 등장하는 등 석 달여 만에 5차례 공식 석상에 나타났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단거리탄도미사일 ‘KN-23’을 둘러보는가 하면 북한 건군절 75주년 행사에서는 레드카펫을 밟았고, 지난 8일 열병식에서는 주석단까지 올랐습니다.
또한 북한 조선우표사가 14일 ‘화성 17형’ 시험발사 성공을 기념해 우표 8종을 발행한다며 공개한 도면에는 김주애가 포함됐습니다.
아버지 김정은과 ICBM 시험 발사장을 걷는 모습, ICBM 발사대를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 등이 담긴 겁니다.
전 세계 언론은 김주애의 패션과 헤어스타일뿐 아니라 ‘김주애 후계자설’에 대한 갑론을박을 담은 기사 등으로 김주애를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탈북민 출신의 이현승 글로벌 피스 재단(Global Peace Foundation) 연구원은 김주애를 통해 북한은 지금 ‘국제적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현승 연구원] “김정은이 자기 딸을 데뷔 시키면서 이번 열병식도 크게 하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국제적 여론이 계속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것을 완전히 잠재워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위협적인 무기가 나가도 지금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이 어린 여자 아이에게 집중됐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의 열병식 자체가 굉장히 과소평가 됐거든요.”
따라서 북한의 이 같은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이 연구원은 강조했습니다.
또한 김주애의 등장으로 오히려 외부에서 후계자설을 언급하는 것은 북한에 정치선전의 빌미를 주는 것이라며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현승 연구원] “북한의 후계자 문제는 사실 내부에서도 조심스러운 문제입니다. 세습이라는 게 정당성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져왔는데 그걸 4대까지 간다는 자체가 자신들도 조심스럽단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오히려 외부에서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꼴이에요. 후계자, 후계자 하면서 말이죠.”
이 연구원은 북한 정권이 외부에서4대 세습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내부 분위기 조성에 나서려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에 정착한 탈북민 박지현 ‘징검다리’ 대표는 전 세계가 김주애에 집중하는 대신 북한 내에서 자행되는 아동학대 실태를 상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대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김정은을 보면 아버지가 아니라 독재자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니까 분노하게 되죠. 김주애 한 사건만 봐도 북한의 인권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거잖아요. 자기 자식이지만 10살짜리 아이에 대한 아동인권 침해라고 봐요. 이게 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위반이거든요.”
박 대표는 초등학생 나이의 어린 딸을 핵 미사일 시험장에 동행하는 것 자체가 유엔 협약을 어기는 것이자 아동 인권 침해라며 국제사회는 이를 심각히 다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식을 앞세워 ‘이미지 메이킹’에 나선 김정은을 보면서 북한은 21세기 지구상에서 볼 수 없는 독재 국가라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대표] “김정은이 자기의 평생 왕국을 꿈꾸는 거죠. 작년에 영국 여왕 서거로 전 세계가 왕실에 대한 흠모, 여왕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줬잖아요. 북한 독재 정권을 영국 왕실화하는 꿈을 꾸는 거 같아요. 그걸 위해서 이제는 딸을 이용하는 거죠.”
로버트 킹 전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김정은이 공개한 딸 김주애의 모습을 보면서 가장 먼저 북한 주민들이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킹 전 특사] “Conditions in North Korea are very very difficult, lack of food, lack of trade, the economy is having problems. It strikes me that this is hardly the kind thing you to show this little girl spoiled, wearing expensive clothing when North Koreans have very little, it’s the wrong message if you are trying to lead the country.”
킹 전 특사는 식량 부족과 줄어든 교역, 경제 문제로 북한 내 상황이 극심하게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북한 주민들은 가진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는데 값비싼 옷을 입은 응석받이 어린 딸을 등장시킨 것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국가를 이끌려는 지도자라면 이는 잘못된 메시지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킹 전 특사는 국제사회가 북한의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는 것은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차기 지도자’에 대한 의미 없는 추측보다는 현재 북한 지도자와 체제, 위협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클링너 선임연구원] “There’s no indication that there will be any change in the nature of the regime or the policies of the regime, just as there was no change from Kim Il sung, Kim Jong Il to Kin Jong Un. I remember 1994 when some predicted that Kim Jong Il was a bold economic reformer North Korea is on the cusp of implementing massive economic reform and that never happened. And there was speculation that Kin Jong Un was a Swiss educated reformer and of course that didn’t lead to any changes in policy. So regardless of who the leader is, we are not expecting to see any change in the threat level from North Korea or the nature of the regime to its own people as well as to its neighbors.”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거치면서 아무런 변화가 없었듯 앞으로도 체제의 성격이나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미가 없다”는 겁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1994년 김정일이 대담한 경제 개혁가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경제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고, 이후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교육받은 개혁가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정책 변화를 주도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지도자가 누구든 간에 이웃 국가뿐 아니라 자국민에 대한 북한의 위협 수준과 체제 성격에 그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