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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 일본 적군파 테러 피해자에 “외교적 경로로 대북 소장 전달 못 해”


지난 1972년 7월 이스라엘에서 텔아비브 로드 공항 테러 사건 용의자인 일본 적군파 대원 오카모토 코조(가운데)의 재판이 열렸다.
지난 1972년 7월 이스라엘에서 텔아비브 로드 공항 테러 사건 용의자인 일본 적군파 대원 오카모토 코조(가운데)의 재판이 열렸다.

미국 국무부가 ‘외교적 경로’를 이용해 북한에 소장을 전달해 달라는 일본 적군파 테러 피해자와 유족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북한과 외교관계가 없고 북한이 헤이그 협약국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었는데, 다른 미국인의 대북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을 상대로 40억 달러의 소송을 제기한 일본 적군파 테러 피해자 등이 국무부의 ‘외교적 경로’를 통해 소장을 전달할 수 없게 됐다고 재판부에 밝혔습니다.

피해자의 변호인은 22일 재판부에 제출한 ‘현황 보고서’에 “국무부로부터 지난 16일 ‘미국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한 사법 문건 전달을 포함해 북한에 정상적인 영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답신을 받았다”고 명시했습니다.

앞서 일본 적군파 요원이 일으킨 테러 사건으로 사망한 카르멘 크레스포-마티네즈 등의 상속인, 그리고 부상자와 가족 등 131명은 지난해 5월 30일 북한 정권을 상대로 약 40억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일본 적군파 요원 3명은 지난 1972년 5월 이스라엘 텔아비브 로드 공항 구내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자동소총을 난사해 26명을 숨지게 하고 80여 명을 다치게 했습니다.

북한은 적군파의 테러 모의를 돕고 일부 테러범들을 훈련하는 등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이번 소송의 피고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피해자 측은 지난해 7월 소장 원문과 한글 번역본, 소환장 등을 담은 우편물을 평양으로 발송했지만, 이 우편물은 미국을 떠나지도 못한 채 워싱턴 DC 연방법원으로 반송됐습니다.

이에 따라 피해자 측은 지난해 8월 국무부에 소장 전달을 공식 요청하는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 혹은 뉴욕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에 국무부가 소장을 건네 달라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국무부는 약 7개월 만에 이 같은 요청에 최종 ‘불가’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이날 변호인이 현황 보고서에 첨부한 국무부의 답신에 따르면 국무부 법무실은 “미국과 북한은 사법적 지원과 관련한 어떤 조약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북한은 사법 문건 송달에 관한 헤이그 협약의 당사국이 아니며, 여기에 더해 미국은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지도, 미국 대표단을 북한에 두고 있지도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에 소장을 전달할 방안을 계속 모색할 것이고, 추가 방안이 가능해지면 이를 제공하겠지만 (현재로선) 국무부로 보내진 서류는 신청자의 요청 여부에 따라 신청자 혹은 법원 서기관실로 돌려보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이 같은 국무부의 답신에 따라 외교적 경로가 아닌 다른 방안을 마련해 조만간 재판부에 알리겠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정권에 대한 소장 송달 방법을 고심하는 대북 소송인은 적군파 테러 피해자 외에도 더 있습니다.

앞서 북한 정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북한 억류 피해자 케네스 배 씨와 북한에 납북됐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김동식 목사의 부인도 국무부에 소장 송달을 요청하는 서류를 제출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아울러 지난 2021년 북한 정권을 상대로 23억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은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 등도 미국 국무부를 통해 최종 판결문을 북한에 전달하겠다는 계획을 재판부에 확인했습니다.

현재로선 이들도 국무부로부터 같은 답변을 받았거나, 조만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미국인 등은 소송 제기 후 국제 우편 서비스인 ‘DHL’을 통해 소장과 판결문 등을 북한 외무성으로 보냈었습니다.

하지만 ‘DHL’이 2020년부터 유엔이 아니거나, 외교 목적이 아닌 우편물에 대한 북한 내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대북 소송인 등은 북한에 소장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기에 일반 우체국을 통해 보낸 우편물도 최근 반송된 사례가 있어 소장을 포함한 우편물을 북한에 전달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입니다.

여기에 국무부를 통한 소장 송달 방안까지 막히면서 북한에 소송을 제기한 미국인들이 어떤 대안을 마련할지 주목됩니다.

미국 연방법은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외국주권면제법(FSIA)’을 근거로 북한과 같은 ‘테러지원국’은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앞서 북한은 1988년 최초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뒤 2008년 해제됐지만 2017년 11월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돼 현재까지 이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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