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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한국 정부, 북한 문제에 ‘침묵’ 깨…유엔서 최소 7차례 공방


23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총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23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총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최근 유엔 무대에서 한국과 북한 대표가 서로 공방을 벌이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2021년까지 침묵으로 일관했던 한국이 북한의 일방적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과거와 확연히 다른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1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헌장에 관한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발언자로 나선 한국 대표는 북한 대표의 직전 발언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즉각 맞받아쳤습니다. 유엔사령부 해체와 미한 연합훈련 반대를 외치는 북한 측 논리를 반박하는 데 주어진 발표 시간의 절반을 할애했습니다.

[녹취: 한국 대표] “Mr. Chair, with regard to the remarks by the representative of the DPRK, my delegation would like to emphasize that this committee is not the appropriate forum to discuss the status of the United Nations command and the situ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especially in the context of remarks based on ungrounded and distorted allegations. However, since the DPRK delegation kept referring to it, my delegation would like to point out that there is no doubt that the UNC, officially recognized by the 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84, continues to contribute to the maintaining peace and security on the Korean peninsula.”

한국 대표는 “(유엔헌장에 관한) 특별위원회는 유엔사의 지위나 한반도 상황을 논의하기에 적합한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겠다”며 “근거 없고 왜곡된 주장에 근거한 발언이라는 맥락에서 더욱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북한 대표가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는 만큼 한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 84호에 의해 공식 인정된 유엔사가 한반도 평화와 유지에 계속 기여한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21일 유엔헌장에 관한 유엔총회 특별회의에서 발언 중인 한국 대표.
지난 21일 유엔헌장에 관한 유엔총회 특별회의에서 발언 중인 한국 대표.

매년 2월 ‘유엔헌장에 관한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북한이 늘 해왔던 주장에 대해 최근 몇 년간의 한국 정부의 대응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거친 설전을 이어간 것입니다.

이 같은 반론에 북한 측은 ‘반박권’을 사용해 맞섰지만, 한국 대표는 물러서지 않고 북한의 ‘반박권’에 대한 ‘재반박권’을 행사하며 끝까지 북한과 공방을 벌였습니다.

앞서 한국 대표는 지난해 2월 열린 같은 회의에서 북한 김인철 서기관이 유엔사 해체를 주장했을 때 “우리의 입장을 여러 번에 걸쳐 일관되게 밝혀온 만큼 오늘 이 자리에서 그것을 반복할 의사는 없다”며 대응을 자제한 바 있습니다.

한국은 2021년과 2020년에도 같은 답변을 내놨습니다.

반박권까지 활용하며 북한의 논리를 일축하는 한국의 ‘변신’은 77차 유엔총회가 공식 개회한 작년 9월부터 두드러졌습니다.

북한의 비난을 듣고만 있지 않고 북한을 강하게 규탄하면서 북한이 반박하면 ‘재반박권’을 요청하는 새로운 관행을 만들고 있습니다.

북한 김인철 서기관이 지난 21일 유엔헌장에 관한 유엔총회 특별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북한 김인철 서기관이 지난 21일 유엔헌장에 관한 유엔총회 특별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엔총회 공식 회의장과 군축 문제를 다루는 제1위원회, 특별정치와 탈식민을 주제로 한 제4위원회 등에서 한국과 북한이 이런 식으로 공방을 벌인 사례는 VOA가 파악한 것만 7차례에 달합니다.

가장 최근인 지난 22일엔 황준국 유엔주재 한국대사가 북한과 직접 관련이 없는 ‘우크라이나’ 관련 특별총회에 참석해 북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한반도와 관련 없는 의제를 다루는 회의에서조차 한국과 미국을 비난해 온 쪽은 주로 북한이었지만, 이날은 한국만이 북한을 거론하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유도했습니다.

[녹취: 황준국 대사] “Furthermore, my delegation condemns all other illicit activities on the ground, such as the arms trade between the DPRK and Wagener Group in blatant violation of relevant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황준국 대사는 “한국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벌어지는 다른 모든 불법 활동을 규탄한다”며 “여기에는 북한과 바그너 그룹 간의 무기 거래로 유엔 안보리 결의를 노골적으로 위반한 것이 포함된다”고 말했습니다.

황 대사의 발언에 북한은 반박권을 요청해 한국의 주장을 일축했고, 한국은 재반박권을 얻어 북한의 반박을 또다시 반박했습니다.

77차 유엔총회 회기에서 남북 간 설전이 가장 두드러진 장소는 제1위원회 회의장입니다.

군축 문제를 다루는 만큼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문제가 자주 논의되는데, 과거엔 유럽연합(EU)과 일본 대표가 주로 북한을 상대했다면 올해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북한과 맞붙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10월17일 제1위원회 회의에서 북한 김인철 서기관이 미한 연합훈련과 미국의 군사활동 등을 강하게 비판하자 유엔주재 한국대표부의 김성훈 참사관이 지난 30년간 북한의 약속 불이행 사례를 조목조목 나열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녹취: 김성훈 참사관] “The nuclear issue surfaced in the early 1990s right after the joint statement on the denucleariz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between the and DPRK. However, the DPRK avoided the IAEA inspection and demanded a suspension of joint military exercises for inspection, which we did…”

김 참사관은 “북한 핵 문제는 1990년대 초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직후 불거졌다”며 “당시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거부하면서 (미한)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했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1993년에서 2012년까지 이어진 북한과 국제사회의 약속을 열거하면서, 보상을 노리고 약속을 어겨 지금의 상태에 이르게 만든 장본인은 북한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한국 등은 북한과 합의를 맺을 때마다 중유 등을 제공하고 경수로까지 만들어주려고 했지만 “이런 노력은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고, 늘 대화는 이런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엔 회원국들은 제77차 유엔총회가 폐회하는 오는 9월까지 다양한 국제현안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일 예정입니다. 남은 기간 한국과 북한이 어떤 사안을 놓고 맞붙을지 주목됩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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