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방안을 발표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과 미국 연쇄 방문이 확정되면서 미한일 3국간 안보 협력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양상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가 최근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하자 미국은 적극적인 환영 의사를 표했고 일본은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를 계기로 고조되고 있는 북 핵 위협 등에 대응한 한일 안보 협력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한일 양국은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 해법을 발표하면서 밝힌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이라는 목표를 뒷받침할 후속조치들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문가들은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법적 지위 정상화가 이뤄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한일 지소미아는 양국이 북한 군과 북한사회 동향, 핵과 미사일 정보 등을 공유하기 위해 지난 2016년 11월 체결한 군사협정으로, 양국이 수집하고 보유한 관련 정보를 서로 보완하는 게 주된 목표입니다.
그러나 일본 측이 2018년 10월에서 11월 사이 한국 대법원이 내린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 판결에 따른 보복 차원에서 2019년 7월부터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취하면서 폐기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 등을 감안해 ‘수출규제 관련 협의’를 조건으로 한일 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 유예’한다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현재 한일 군사당국 간엔 지소미아에 따른 북한 관련 정보의 사후 공유가 이뤄지고 있지만 법적 지위는 한국의 ‘조건부 종료 유예’ 선언 이후 5년째 계속 불안정한 상태에 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차두현 수석연구위원은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로 지소미아 정상화를 향한 물꼬가 트인 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차두현 수석연구위원] “지소미아 자체가 종료 유예가 됐다는 그 분위기 때문에 풍부한 정보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지 그 자체가 가로막고 있는 대상은 아니에요. 그러나 양측에서 정보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던 정치적 장애물이 없어짐으로 인해서 향후 특히 북한 미사일이나 핵 위협 관련된 정보 교류가 더 활발해질 수 있는 근거는 분명히 마련이 된 거죠.”
한국 정부 안팎에선 강제징용 배상 해법 발표에 따른 한일 관계 개선 모멘텀을 계속 살려가기 위해 지소미아의 법적 지위를 선제적으로 정상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한일 관계 개선이 전제돼야 가능한 미한일 3자 확장억제 협의체 창설 문제도 수면 위로 부상하는 양상입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8일 미국 정부가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에 핵 억지력과 관련한 새로운 협의체 창설을 타진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금은 한일 갈등 속에서 미한, 미일 간 확장억제와 관련한 협의체가 따로 따로 가동 중입니다.
미한일 확장억제 협의체 창설은 ‘핵우산’을 포함한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한일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북한 등의 핵 위협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8일 언론브리핑에서 이 보도 내용을 확인해 달라는 질문에 “우리는 확장억제 공약을 심화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기회를 활용해왔다”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또 미한, 미일 양자 협의를 넘어 미한일 3국 차원에서 확장억제를 심화할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북한의 불법 무기 프로그램의 진전을 제한하고 대응하기 위해 양자와 3자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함께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의 9일 정례브리핑 발언 내용입니다.
[녹취: 전하규 대변인]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비 확장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협의체를 현재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협의체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한미 간에 긴밀히 협의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9일 ‘VOA’와 전화통화에서 한국도 미국, 일본과의 안보 협력 강화를 원하지만 미한일 확장억제 협의체의 경우엔 주요 경제 파트너인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내 일각에선 3국 확장억제 협의체가 북 핵 대응에 특화된 미한의 ‘맞춤형 확장억제전략’과 상충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향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미한일 안보협력이 보다 구체화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박 교수는 세 나라가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응한 실시간 정보 공유와 탐지, 요격 등 각자의 역할을 숙달하는 합동훈련들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이 미사일을 쐈을 때 실시간 정보 공유 그 다음에 탐지 식별 그 다음에 최종 요격까지 하나의 사이클이거든요. 그래서 북한 핵에 대한 대응은 한미일이 그 형태로 발전을 시켜 나갈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지소미아이고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는 게 실시간 경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고.”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미한 동맹을 미일 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미한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자 한다며 한국과 일본도 이에 부응하는 양상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홍민실장] “미국이 역내에서의 전쟁을 억지하고 상황을 관리하고 또 북한과 중국이 대만 문제나 한반도 차원의 문제에서 군사적 충돌선을 넘지 않도록 억지하는 부분들에서 한일이 필수적으로 협력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도를 견인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일본과 한국도 각각의 이해의 측면에서 거기에 부합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강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한일 관계 개선을 낙관할 수 만은 없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엔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참여는 포함되지 않았고 일본 측은 한국 측의 일본 기업 참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측은 한국 정부의 해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것 외에는 상응 조치가 없는 겁니다.
한국 내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16일부터 이틀간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가질 예정인 정상회담에서 일본 측이 한국의 강제징용 해법에 호응하는 후속조치를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