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에 가담한 크리스토퍼 안 씨의 유죄 여부를 놓고 미국 검찰과 변호인의 공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적대국인 북한 당국자에 대한 행위는 미국 법의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변호인의 주장과 뉴욕 유엔주재 북한 외교관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검찰 측 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검찰은 크리스토퍼 안 씨의 북한 대사관 침입이 미국에서 벌어졌어도 명백한 범죄라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 검찰은 24일 미 보안국(US Marshal)을 대리해 재판부에 제출한 문건에서 안 씨가 미국에서 같은 사건을 저질렀어도 미국에서 기소됐을 것이라며, 최근 안 씨 측 변호인이 내세운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안 씨는 지난 2019년 2월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침입해 납치극을 벌인 혐의로 지난해 5월 스페인 신병 인도 결정을 받았으며, 이후 미 보안국을 상대로 인신 보호, 즉 구금의 적법성을 판단해 달라고 요청하는 청원을 제기했습니다.
그러자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법원의 페르난도 애닐-로차 판사는 지난 1월 미북 간 군사적 충돌 이후 평화 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며 적대국에 대한 미국인의 행위가 미국에서도 범죄로 인식되는지 의문이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이에 검찰은 지난달 8일 제출한 문건에서 스페인 당국이 안 씨를 기소할 때 외교공관이나 외교관에 대한 범죄가 아닌 일반 범죄를 사유로 제시한 만큼, 미국 역시 외교적 관점이 아닌 일반 형사 사건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맞받았습니다.
안 씨 측 변호인은 이달 10일 반박 문건을 내고 “안 씨는 적국의 관계자들을 설득해 망명시키려는 의도로 마드리드 북한대사관에 들어갔다”면서 이번 사건에서 적국인 ‘북한’이라는 요소가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검찰이 재반박 문건을 법원에 제출하면서 양측 간 공방에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검찰은 이번 문건에서 뉴욕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소속 북한 외교관과 가족도 미국 정부의 보호 대상이라는 비교 사례를 들었습니다.
특히 “미국 국무부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구성원들을 면책 특권과 보호를 누리는 북한 관리로 인정하고 있다”며 “따라서 만약 청원인(크리스토퍼 안)이 미국에 있는 북한 관리 혹은 그들의 가족을 상대로 행동했다면 스페인에서와 마찬가지로 국내(미국)에서도 기소됐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변호인은 북한 관리가 ‘공식적인 업무’로 미국에 있는 게 아닌 만큼 북한 관리와 그들의 재산이 미국에 의해 보호받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유엔으로부터 북한을 대표하는 자격을 부여받은 대표부 관계자들은 미국에서 외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더 나아가 유엔이 북한대표부 소속 외교관에게 지위를 부여한 뒤 이를 국무부에 통보한다며, 절차상으로도 미국 내 북한대표부 외교관들이 미국에서 외교관으로 보호받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현재 양측의 주요 쟁점은 크리스토퍼 안 씨의 혐의에 대한 `쌍방가벌성(dual criminality)' 원칙 존재 여부입니다. 피의자의 범죄 행위가 신병인도 청구국과 피 청구국 모두에서 위법일 경우에만 범죄인을 인도한다는 원칙이 적용되는지에 대한 다툼입니다.
현재 검찰은 스페인에서의 안 씨의 행위가 미국에서도 처벌받을 범죄인 만큼 쌍방가벌성 원칙에 부합한다는 입장인 반면, 변호인은 적국인 북한 외교관에 대한 행위를 일반적인 범죄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재판부가 양측의 공방을 토대로 쌍방가벌성 원칙과 관련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만약 재판부가 쌍방가벌성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안 씨의 스페인 신병인도는 취소됩니다. 반대의 경우라면 안 씨는 구치소로 옮겨져 신병인도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 시민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안 씨의 신병 인도에 반대할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이때는 법원 명령과 관계없이 안 씨는 스페인으로 향하지 않아도 됩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