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북한이 최소 8척의 중고 선박을 자국 소유로 등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국에서 불법으로 사들였을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일부 선박은 과거 기록이 전혀 없어 ‘선박 세탁’이 의심됩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해 북한은 중국산 중고 선박 여러 척에 북한 깃발을 달았습니다.
VOA가 국제해사기구(IMO)의 국제통합해운정보시스템(GISIS) 자료를 조회한 결과 2022년 한 해 북한은 ‘모란봉2’호 등 최소 8척을 북한 선박으로 등록했습니다.
모두 2000년대 초반에 건조됐고 크기는 중량톤수(t) 700t에서 3천500t으로 다양합니다.
GISIS는 이들 8척 중 5척이 먼저 중국 깃발을 단 것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모란봉2호와 5호, 송림호, 락낭2호, 포항 1호 등입니다.
모든 선박의 건조 연도와 처음 중국 선적으로 등록된 연도는 동일하게 기재됐습니다.
건조 시점부터 줄곧 중국 선박으로 항해했다는 뜻인데, 2022년 돌연 북한 선적 선박으로 등록된 것입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16년 채택한 대북 결의 2321호를 통해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에 선박을 판매하거나 북한 선박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위장회사를 동원해 중국은 물론 한국과 타이완 회사 소유의 중고 선박을 구매하고, 이를 공해상 선박 간 환적 등 불법 행위에 동원한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이번에도 중국 선박 5척이 갑자기 북한 깃발을 단 점으로 미뤄 중국이 20여 년간 운행한 선박을 북한이 불법으로 대거 매입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들 5척 외에 나머지 3척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앞서 5척은 최소한 중국 선적 선박이었다는 기본 정보가 확인되지만, 다른 3척은 건조 연도만 표시될 뿐 다른 어떤 나라에 등록됐던 기록도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북한이 지난해 11월 IMO에 등록한 묘향5호의 경우 2004년 8월이 건조 연도로 찍혀 있지만, 특정 국가의 깃발을 단 건 북한 선적으로 등록된 2022년 11월이 처음입니다.
지난 20년간 무선적 상태였던 선박이 갑자기 북한 선박이 돼 나타난 것입니다.
그 밖에 크기가 각각 약 2천900t급인 미래99호와 마두산1호도 2022년 북한 깃발을 달면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IMO 시스템에 등재됐습니다.
VOA는 선박의 안전검사를 실시하는 아태지역 항만국통제위원회(도쿄 MOU)를 통해 이들 선박의 안전검사 기록 여부를 확인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 선박이 공해상이나 타국 바다가 아닌 특정 국가 내에서만 운행했거나, 고유식별번호가 위조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해군 대령 출신으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에서 활동한 닐 와츠 전 위원은 28일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북한이 고유식별번호를 조작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와츠 전 위원은 북한이 선박 8척을 새롭게 등록하고, 이 중 3척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VOA의 지적과 관련해, 북한이 신규 혹은 중고 선박의 이전을 금지하는 대북제재를 우회할 방법을 찾고 있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와츠 전 위원] “Firstly, North Korea is clearly found a workaround for sanctions prohibiting transfers of new or second-hand vessels. Secondly, it is successfully employing vessel identity laundering with the complicity of vessel brokers and willing shipyards.”
특히 일부 선박의 과거 기록이 분명치 않다는 사실을 들어 “북한은 선박 중개인이나 조선소와 공모해 ‘선박 세탁’에 성공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앞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은 매년 발행하는 연례보고서에 북한 선박이 고유식별번호(IMO)와 해상이동업무식별번호(MMSI)를 조작해 제재 회피를 시도한 사례를 공개해 왔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북한이 고유식별번호가 아닌 새로운 식별번호를 스스로 부여해 이를 IMO에 등록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와츠 전 위원은 북한이 중국 선적 선박을 여러 척 구매한 행위와 관련해 중국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와츠 전 위원] “China is turning a blind eye to illicit vessel transfers within its jurisdiction, strongly demonstrating a resolve that started in December 2020 with its proposed draft resolutions to progressively lift sanctions on North Korea. China is prepared to undermine UN sanctions, not only with its veto power, but as the largest trade partner of North Korea in plain sight, brushing aside all the UN and North Korean watchers' reports on blatant sanctions violations using satellite imagery, vessel tracking and results from investigations of bad actors profiting from sanctions violations.”
“중국은 2020년 12월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을 제안한 이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 자국 영해 내 불법 환적에 눈감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아울러 “중국은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진 나라이자 북한의 최대 무역 파트너로서 유엔 제재를 훼손하고 있다”며 “유엔과 북한 관찰자들이 위성사진과 선박 추적, 그리고 제재위반 수혜자 조사를 통해 작성한 제재 위반 사례 보고서를 중국이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조만간 공개를 앞둔 전문가패널의 올해 연례보고서에는 북한의 해외 중고 선박 구매 문제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전문매체 NK뉴스는 지난 27일 보도에서 전문가패널의 새 보고서에 북한이 지난해 최소 6척의 중고 화물선을 구매한 내용이 포함됐다고 전했습니다.
앞서 VOA는 북한이 지난 2019년과 2021년 사이 한국 소유 중고 선박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이 기간에 북한이 매입한 중고 선박은 최소 9척이며, 이 중 7척이 과거 한국 깃발을 달았거나 한국 회사 소유였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한국 선박이 북한 선박으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최근 몇 년간 빈번해지면서 한국 외교부는 지난해말 한국 외항선사 보안담당자 등 16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대면 계도를 실시하는 등 방지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