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들의 공동성명에 반발하는 담화를 냈습니다. 스스로 핵 열강이라며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가 불가역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2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를 내고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공동성명에 대해 “황당무계하고 불법무도한 내정간섭행위”라고 반발했습니다.
최 외무상은 G7이 정의로운 국제사회를 대변하지 않고 미국의 패권적 지위 보장에 복종하는 정치 도구라고 폄하하면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최 외무상은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에 대해선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이라고 규정하고 실제적인 핵 억제력 존재와 ‘국가 핵 무력 정책법령’에 따라 국법으로 고착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앞서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 무력 정책법을 채택함으로써 핵 보유국 지위가 불가역적으로 됐다는 주장을 펴왔습니다.
최 외무상은 북한이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다는 사실을 들며 “어떤 조약상 의무로부터 자유롭다”고 강변하기도 했습니다.
최 외무상은 이와 함께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등은 미국과 그 동맹의 군사행동에 대한 “정당한 주권행사”라며 “적대적인 주변환경이 근원적으로 종식될 때까지 행동조치들을 계속 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G7 외교장관들은 지난 18일까지 사흘간 일본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서 회의를 갖고 북한의 거듭되는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또 북한이 NPT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치를 완전히 준수하고,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최 외무상의 핵 보유국 지위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이효정 통일부 부대변인의 21일 정례브리핑 발언 내용입니다.
[녹취: 이효정 부대변인] “북한은 억지 주장과 위협을 그만두고 자신들의 무모한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경청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합니다.”
이 부대변인은 “북한의 핵고 미사일 개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며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통해서는 결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고립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최 외무상 명의 담화 발표는 지난해 11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를 규탄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비난한 이후 5개월 만입니다.
G7 외교장관 성명은 지난 13일 북한의 고체연료 신형 ICBM인 ‘화성-18형’을 첫 발사한 데 따라 나온 겁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최 외무성의 이번 담화는 다음달 G7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제사회를 향해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핵 보유국 지위에 관해서는 북한이 굉장히 민감해하고 그 자체는 북한이 대미 억제 차원, 대미 협상 차원에서 가장 근간이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그 자체에 대해서 G7에서 메시지가 나온 데 대해서 강력하게 반발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집니다. 시기적으로 G7 정상회담에서 나올 결과에 대한 일종의 사전적 대응이랄까요, 이런 개념이 강해 보인다고 생각이 듭니다.”
최 외무상은 북한이 핵을 가지게 된 이유 그리고 핵과 미사일 도발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를 미국의 위협 때문이라고 강변했습니다.
그러면서 "핵 타격 권리와 능력이 워싱톤에만 있지 않고, 우리는 미국의 핵 위협에 맞받아칠 수 있는 힘만 가지면 그만"이라며 핵 보유국 지위에 대해 그 누구의 인정도, 승인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철회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북한이 외무상 담화라는 무게를 실은 방식을 통해 핵 보유의 정당성을 넘어 핵 무력 고도화로 ‘강대강’ 국면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대화나 협상 이런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미국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핵 무력을 고도화시키는 게 우리의 목표다 그런 메시지를 분명하게 제시한 것이라고 봐야겠죠.”
북한 군부 최고위층인 리병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앞서 지난 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화성-18형’ 발사와 관련해 공개회의를 갖기 직전 이를 비난하는 경고 담화를 낸 바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최고위층 차원에서 잇달아 국제사회를 겨냥해 핵 보유국 지위를 정당화하고 도발행위를 자위권 차원의 행동이라고 선전하는 담화를 내고 있는 데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중국과 러시아 권위주의 세력 간 신냉전 구도를 활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지금의 갈라진 국제 정세 지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윤석열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과 타이완간 양안 갈등 문제를 놓고 서방세계와 보조를 맞추는 움직임 또한 북한의 보다 공세적인 대외메시지를 자극하는 요인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지금 윤 정부가 전략적 선명성을 아주 빠르게 보이고 있거든요. 북한 역시 북중러 연대 강화의 호기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고 그리고 어차피 단기간 북미, 남북 관계 개선 여지가 없다고 북한은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선 어차피 국제사회가 분열돼 있기 때문에 저런 행동을 해도 중국과 러시아는 비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민간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차두현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당분간 협상은 없다는 대외 메시지를 통해 북한 내부를 결집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차두현 수석연구위원] “일종의 북한 권력 엘리트들과 주민들에 대한 마음 다잡기에요.이 노선은 변하지 않는다, 스스로 닫아놓는 것 같고요. 최소한 지금까지 행태는 2024년에 미국 대통령 선거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거에요, 버티면서 어떻게든.”
차 수석연구위원는 북한이 스스로 중러와의 연대라는 진영논리에 의존해 대외적인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