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위협이 크게 고조된 상황에서 오는 26일 열리는 미한 정상회담에서 보다 강력한 확장억제 방안이 나올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타이완 해협 문제와 우크라이나 지원을 둘러싼 미한 간 협력 수위도 민감한 주제로 논의될 전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오는 26일 워싱턴 D.C.에서 갖는 정상회담에선 ‘한국형 핵 공유’에 맞먹는 보다 강력한 확장억제 강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미한 두 나라 정부는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와 미한 동맹 70주년을 맞아 26일 정상회담 후 채택하는 공동문서를 통해 미국의 확장 억제를 실효적이고 구체적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24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한국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 영토가 북한 등으로부터 핵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핵으로 보복대응한다는 정상회담 내용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 미국 측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또 현재 운영되는 미한 간 확장억제 공조체제를 보다 내실화하기 위한 조치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한반도에서 핵 위기 발발 시 미한이 그때 그때 협의할 수 있는 상설협의체가 필요하다는 게 한국 정부의 인식이라고 말했습니다.
확장억제는 한국이 핵 공격 위협을 받을 시 미국이 핵우산, 미사일 방어체계 등을 동원해 미 본토 수준의 억제력을 제공한다는 개념입니다.
한국 정부는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등 미한이 현재 운영 중인 확장억제 관련 협의 제도가 보다 실질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EDSCG는 미한 외교와 국방 당국의 차관급 인사 4명이 ‘2+2’로 모이는 형태이기 때문에 고위급에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이행 의지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회의를 자주 열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미한 확장억제력 실행 체계의 모델로 많이 거론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핵기획그룹(NPG)은 상설 조직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미한은 지난해 9월 EDSCG와 11월 국방당국 간 안보협의회의(SCM) 등을 거치며 정보 공유와 위기 시 협의, 공동기획, 공동실행 4가지 확장억제 정책 범주에 대한 공조 방안을 진전시켜 왔습니다.
최근 북한이 핵과 미사일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한국 내에서는 자체 핵무장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21일 미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의 핵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억제에 대한 공약을 강조하기 위해 충분한 조치를 약속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 당국자는 “대중의 기대와 확장억제 약속의 현실 모두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한국 당국자들과 강도높게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내 자체 핵무장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확장억제 강화 방안이 도출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한국 국내 여론이 70~80%가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고 있고요.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해서도 회의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로선 상당히 강력한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는 게 부담이고요. 미국 입장에선 한국이 미국의 인태 전략, 글로벌 전략에 협력을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제일 큰 게 한국 내 핵무장 여론이 커지고 있다는 게 상당한 부담이거든요.”
타이완 해협과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를 둘러싼 미한 공조 수위도 민감한 주제로 다뤄질 전망입니다.
미 백악관은 지난 20일 미한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한국 대통령실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타이완 해협 문제’가 정상회담 의제로 선정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두 정상 간 글로벌 정세 논의 중에 이 문제들이 다뤄질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중국은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로이터’ 통신 인터뷰 내용 중 ‘힘에 의한 타이완 해협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발언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외교부 대변인은 물론 외교부 수장까지 거친 표현을 동원해 윤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는 한편 관영매체도 험한 표현을 쓰며 쟁점화하는 양상입니다.
중국 전문가인 통일연구원 전병곤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의 예민한 반응은 미한정상회담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전병곤 선임연구위원] “한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 동참하고 지금과 같은 이런 수준을 넘어서 군사안보적 맥락에까지 협조하게 되는 부분들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한국을 잡아두고자 하는 그래서 한미동맹을 일정 부분 제어하고자 하는 그런 의도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타이완 해협의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는 중국과 타이완 간 무력 충돌이 빚어질 경우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한국 정부의 입장이라며, ‘하나의 중국’ 원칙과 충돌하는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교수는 해당 표현이 이번 미한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포함될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타이완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것은 무력 갈등이 일어나선 안된다는 내용인데 그 정도는 정상회담에서 문구로서 들어갈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윤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선 ‘민간인 대량학살’ 등 상황 발생을 전제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고, 러시아는 이에 반발해 북한에 대한 첨단무기 지원 가능성을 내비치는 위협을 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국 측이 이번 미한 정상회담에서 타이완 해협,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와 관련해 신중하면서도 지난해 미한 정상회담과는 조금은 다른 입장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한국) 대외정책의 원칙이 지난번 자유 평화 번영의 인태 전략에 다 담겨 있기 때문에 이제 그것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작년 5월 20일에 나왔던 것 보다는 중국 타이완 문제나 러시아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그런 표현이 담길 가능성이 높죠.”
일각에선 이번 정상회담에서 나오는, 이들 문제와 관련한 표현 수위에 따라 미한일 대 북중러의 대립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