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부가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을 '반러시아 적대행위'로 간주하겠다고 이례적인 심야 논평을 통해 거듭 경고했습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모스크바 시간 20일 이른 새벽 논평을 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윤석열 한국 대통령의 발언이 실현될 경우 강경 대응할 방침을 밝혔습니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한국을 향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떠한 무기 제공도 반 러시아 적대 행위로 간주하겠다는 점을 확인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전쟁에 관해 "러시아는 키예프(크이우: 우크라이나 수도) 꼭두각시 정권을 대리전의 도구로 선택한 서방 집단에 대항해 방어전을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무기 공급은 그것이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 의해 이뤄지든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반러시아 행위로 간주한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외무부의 이같은 입장은 전날(모스크바 시간 19일) 크렘린궁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의 강경 발언에 이은 것입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한국이 러시아에 대해 비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19일 현안 브리핑에서 밝히고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전달하면 어느정도 분쟁에 개입하게 된다는 뜻"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어서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확실한 전쟁 개입"이라고 경고했습니다.
■ "적 돕고자 하는 열성가 등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메드베데프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도 윤 대통령 발언에 강력 반발했습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그 나라(한국)가 원칙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이날(19일) 텔레그램에 쓴 뒤 "우리의 적을 돕고자 하는 새로운 열성가가 등장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최근까지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떤 살상 무기 제공 가능성도 배제한다고 분명히 확인했다"고 상기시켰습니다.
그러면서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북한에 대한 최신 무기 지원 가능성을 밝혔습니다.
"러시아의 최신 무기가 그들(한국)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우리의 파트너인 북한에서 나오는 것을 볼 때 그 나라(한국) 국민들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면서, "대가를 치르는 것(Quid pro quo)"이라고 굵은 글씨로 마지막에 적었습니다.
한국이 러시아의 적인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러시아는 한국의 적인 북한에 무기를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19일) 자국군 장거리 폭격기 투폴레프(Tu)-22M3 8대가 오호츠크해와 한반도 동해 북부 중립 수역에서 전투 훈련 비행을 벌였다고 발표했습니다.
러시아 극동 태평양함대는 푸틴 대통령의 명령으로 지난 14일부터 비상 전투준비태세 점검 훈련을 실시 중입니다.
■ "대규모 공격 시 인도주의적 지원만 주장하기 어려워"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 발생하면 군사적 지원을 고려할 수 있다고 18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학살, 심각한 전쟁법 위반같이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면, 우리가 인도주의적 또는 재정적 지원만 주장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한국이 1950~1953년 한국전쟁 당시 국제 원조를 받았던 것처럼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고 재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는 전했습니다.
이같은 발언에 관해 로이터는 군사적 지원에 반대해왔던 한국 정부의 정책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고 해설했습니다.
로이터는 또한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자 주요 포탄 생산국인 한국이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에 대한 영향력 행사 등의 문제로 지금까지 군사적 지원을 꺼려왔다고 덧붙였습니다.
윤 대통령의 이번 입장 변화 시사에 관해, 우크라이나와 유럽 대다수 매체들이 주요 기사로 타전했습니다.
■ '살상무기 제공 않는다' 기존 입장
앞서 윤 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방독면, 방탄조끼, 의약품 등은 제공하지만 살상무기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공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미국 정부의 기밀 문건 유출 사태 와중에, 한국 정부의 입장 변화 가능성이 주목됐습니다.
유출된 기밀 자료 가운데 적어도 2곳에서, 한국 정부가 살상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기고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공급'할지에 관해 내부 논의를 진행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지난 8일자에서 설명했습니다.
한국이 폴란드에 포탄을 수출하고, 폴란드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대안입니다.
얼마전 사임한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등이 이같은 대화를 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포탄 공급 압력을 가할 가능성을 놓고 한국 관리들이 우려하는 대목도 나옵니다.
이와 관련, 한국이 미군에 155mm 포탄을 제공하는 논의가 진행된 사실이 지난해 11월 확인된 바 있습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하고, 한국으로부터 재고를 채우는 방식으로 거론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다음 주 워싱턴 D.C.를 방문해 바이든 대통령과 미한동맹 70주년을 맞아 회담할 예정입니다.
■ 북한 위협 대응 '초고성능 무기' 개발
한편 윤 대통령은 대북관계에 관해 '보여주기식' 남북 정상회담은 없을 것이라고 이날 로이터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쇼를 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은 열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평화 증진을 위한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한국이 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초고성능 무기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중국-타이완 갈등과 이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긴장에 관해 "무력으로 타이완해협 현상을 변경하는 데 절대 반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진행됐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