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 EAS에 참석한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대북 제재 준수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책임이 더 무겁다고 말했습니다. 북한과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러시아와 제재 이행에 미온적인 중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 EAS에 참석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해 “회의에 참석한 모든 국가를 겨냥하고 타격할 수 있는 실존적인 위협”이라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북한 핵 개발 의지보다 이를 저지하려는 국제사회 결의가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특히 “북한은 유엔 안보리로부터 가장 엄격하고 포괄적인 제재를 받고 있고 모든 유엔 회원국은 제재 결의를 준수해야 한다”며 “그러한 결의안을 채택한 당사자인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고 지적했습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대북 제재에 동참했음에도 제재 이행에 소극적이고 추가 대북 제재에 대해선 거부권을 발동해 막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이날 회의에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각각 리창 총리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참석해 윤 대통령 발언을 지켜봤습니다.
특히 북한과 무기 거래를 논의하기 위한 정상회담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를 향해선 연이틀 압박 메시지를 날린 것으로 해석됩니다.
윤 대통령은 전날인 6일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에서도 “국제사회 평화를 해치는 북한과 군사 협력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며 “어떠한 유엔 회원국도 불법 무기 거래 금지 등 안보리가 규정한 대북 제재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입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한미일 협력에 대한 대응으로 북중러 연대가 강화되고 있는데 북중러 불법 연대를 견제하고 차단하고 국제사회의 일치된 의견을 모으기 위한 그런 의지라고 판단됩니다.”
EAS는 역내 주요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협력체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즉 아세안(ASEAN) 회원 10개국과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이 속해 있습니다.
한편 한국 국가정보원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오는 10~13일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 기간 중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또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할 때 기존 알려진 경로와 다른 경로를 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국회 정보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유상범 의원은 7일 김규현 국정원장이 출석한 국회 정보위 비공개회의를 마친 뒤 “뉴욕타임스(NYT)에 예상 경로가 공개되면서 김 위원장이 기존과는 다른 경로로 ‘깜짝행보’할 가능성이 있다고 국정원 관계자가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4일 미국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김 위원장이 이달 중 러시아 방문을 검토하고 있으며, 장갑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한 뒤 푸틴 대통령을 만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러시아 정부 관계자도 6일 일본 ‘NHK’에 북러 양국이 정상회담을 위한 조율을 진행 중이며 장소는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 섬에 있는 극동연방대도 검토 대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김규현 국정원장은 정보위 비공개회의에서 “북러 회담 여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정세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어 각국 정보기관과 긴밀하게 정보를 교환하면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은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정부 초청으로 류궈중 국무원 부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중국 당과 정부 대표단이 북한 정권 수립일인 9.9절 75주년 행사 참석을 위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7일 보도했습니다.
중국 대표단은 9.9절 75주년 기념 열병식 등에 참석할 것으로 보입니다.
5년 전인 70주년 행사 때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별대표로 당시 공산당 서열 3위인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이 단장을 맡은 중국 대표단이 방북한 바 있습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5년 전 리잔수 정치국 상무위원이 단장으로 방북한 것을 고려하면 조금 격을 낮춰서 대표단을 선정했다”며 미한일 공조 강화를 의식한 결정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북러 간 밀착으로 그만큼 미한일 협력이 강화되고 대중 압박 강도가 높아질 가능성을 우려해 대표단을 구성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체면치레 수준의 대표단을 구성한 것으로 평가하면서, 북러의 군사 밀착이 급속하게 이뤄지는 과정에서 중국은 미국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풀이했습니다.
홍 박사는 중국 입장에선 북러의 군사 협력 강화가 자국의 대미 안보전선 차원에서 이익이기 때문에 이를 말리지도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미국의 향후 행보를 지켜보겠다는 셈법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북한과 러시아가 저렇게 군사 협력을 하고 만약 연합훈련까지 하고 이렇게 밀착하는 것이 중국에겐 큰 실익이 되거든요. 그래서 그런 실익은 조용한 가운데서도 챙길 수 있다 그런 거죠. 굳이 나서서 자극하는 듯한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오히려 조용한 가운데서 실익을 챙기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보여집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류궈중 부총리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고향인 산시성에서 당 서기를 지내고 단기간에 국무원 부총리로 고속 승진했습니다.
현재 경제 분야를 총괄하는 관료이자 북중 교역의 핵심인 지린성 성장 출신으로 북한 문제에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류궈중의 배경으로 볼 때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 협력을 모색하는 데 비해 중국과는 경제 협력 분야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의 필요와 중국의 정치적 고려가 만나 류궈중 단장의 방북 일정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이상숙 교수는 북중이 연대를 과시하는 외형적인 측면보다 실리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상숙 교수] “북러 간 안보 협력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북중러 안보 협력엔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메시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중국은 북한과의 안보 협력 보다는 경제 협력에 초점을 둘 것이고 그런 선상에서 류궈중 부총리가 이번에 방북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9.9절 대표단 파견 방침을 공개했습니다.
마 대변인은 또 정례브리핑에서 북러 무기 거래 가능성과 관련해 “무기 거래 문제는 명백하게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와 관련된 문제”라며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가정적인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북중러 3국 연합군사훈련 가능성에 대해선 “북중러 연합훈련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