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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파견 출신 탈북민들, 노동자 증파 우려에 “열악한 노동·착취 악몽 떠올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건설 현장의 북한 노동자들 (자료사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건설 현장의 북한 노동자들 (자료사진).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 노동자 파견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러시아 파견 노동자 출신 탈북 난민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과 임금 착취 기억을 떠올립니다. 다만 극심한 통제 속에서도 돈을 벌고 세상을 경험한 좋은 기회였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 노동자 파견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러시아 파견 노동자 출신 탈북 난민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과 임금 착취 기억을 떠올립니다. 다만 극심한 통제 속에서도 돈을 벌고 세상을 경험한 좋은 기회였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미국에 사는 러시아 파견 노동자 출신 탈북 난민들은 TV 뉴스를 통해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고 말합니다.

외국에서 고생할 때 조국의 지도자가 주재국을 방문하면 반가워야 하지만 당시 김씨 정권에 임금을 거의 착취당한 채 힘든 생활을 한 것을 떠올리면 화가 치밀어오른다는 것입니다.

미국 중서부에 사는 러시아 파견 건설공 출신 한동호 씨입니다.

[녹취: 한동호 씨] “노동 생활이 굉장히 열악하죠. 북한 사람들은 일하는 데서 다 먹고 잡니다. 출퇴근 못 하고 그냥 현장에서 먹고 자고 하거든요. 짐승 생활이죠 짐승 생활. 현장에 뭐 대충 깔고 그렇게 하고 먹고 자고 하는데, 하루에 식비도 몇 푼 안 되죠.”

한 씨는 특히 북러가 밀착하면 노동자도 더 많아질 것이라며 그에 따른 임금 착취도 자신들이 당한 것처럼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동호 씨] “재주는 누가 부리고 돈은 누가 가져가고. 참. 그 사람들 다 나가면 다 착취당하고 돈은 국가가 가져가고 어유 또 숱한 사람들이 착취당하겠네요. 이제 가면”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북한정권이 러시아에 보내는 노동자 수가 더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김 위원장의 수행단에 건설 담당 박훈 내각부총리가 포함됐고 올레그 코제먀코 연해주 주지사는 13일 자신의 텔레그램을 통해 북한과 “농업, 건설, 관광 등 많은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란 좋은 전망을 하고 있다”고 말해 증파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게다가 러시아의 ‘타스’ 통신과 ‘인테르팍스’ 통신 등은 이날 북러 정상회담이 끝난 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국내 TV 매체(VGTRK)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 “교통, 물류, 철도, 고속도로를 포함한 많은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미 정부는 앞서 북한 노동자들의 러시아 파견이 증가 추세에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었습니다.

국무부는 지난 6월 발표한 ‘2023 인신매매 실태 보고서’에서 러시아 정부가 북한의 해외 노동을 금지하는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회피하기 위해 2021년에 4천 93건, 지난해에는 4천 723건의 비자를 발급하거나 재발급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국무부 보고서] “The government issued or re-issued 4,723 visas to North Koreans in 2022 in an apparent attempt to circumvent 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UNSCRs) prohibiting DPRK overseas labor. (compared with 4,093 in 2021)”

보고서는 이런 증가 추세에 우려를 나타내며 비자 소지자 중 상당수가 러시아에서 불법적으로 일하고 있어 노동력 착취 등에 취약한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지난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될 당시 약 500명의 북한 노동자가 러시아에 남아 있다고 유엔에 보고한 이후 계속 침묵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파견 노동자 출신 탈북민들은 노동자가 증가하면 탈북하는 사람들도 늘 수 있다며, 그러나 최근 북중 밀착으로 러시아 경찰의 단속이 더 강화될 수 있다며 우려했습니다.

지난 2016년 러시아에서 난민 지위를 받아 입국한 김국철 씨입니다.

[녹취: 김국철 씨] “북한하고 러시아가 그렇게 가깝게 지내니까 여느때보다도 아무 통제는 더하겠죠.러시아가 오히려 더 통제하겠죠. 잡혀 나가면 또 북한에 나가 취조받죠. 관계가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탈북해서 달아나는 사람들에겐 나쁘죠.”

러시아 동부의 한 소식통도 이날 VOA에 탈북민들을 돕는 활동이 많이 위축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러시아 소식통] “내가 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죠. 이들을 돕는 것도 만나기도 힘들고. 옛날에는 그냥 자유롭게 이들이 이동했는데, 일단은 정부적 차원에서 이들을 통제해야 되니까 개별적 행동들이 많이 제한받겠죠”

이 소식통은 그러면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장기간 발이 묶여 있다가 탈출을 고민하던 일부 파견 노동자들 사이에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일부 북한 노동자 출신 탈북민은 그러나 생활이 열악해도 북한에서 받는 임금보다는 훨씬 낫다며 더 많은 북한인들이 러시아에 파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김국철 씨는 “그래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뇌물을 고여서라도 밖에 나오려는 것”이라며 역설적이지만 더 많이 밖에 나오는 게 낫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김국철 씨] “우리 노동자 입장에선 그게 오히려 더 낫죠.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 들어가니까. 북한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어흐…나와서 돈 버는 게 좋죠. 북한에선 뭐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김 씨는 “기본 목적은 돈을 벌려는 것이고 1년에 열심히 몇백 달러라도 챙길 수 있다”면서 “더 중요한 것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고 보니까 좋다”고 말했습니다. 자신도 밖에 나왔기 때문에 세뇌에서 깨어나 탈출을 결심해 미국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한동호 씨도 밖을 경험하는 게 훨씬 낫다면서도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 지역 재건에 젊은 북한군 노동자들이 파견될 가능성에 대해선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동호 씨] “나는 그거보다 건설로 (군인들을) 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젊은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을까 그게 제일 걱정되네요. 가면 죽을 수도 있는데. 북한 사람들 지금 어떤 전쟁인지도 모르고 젊은 아이들 나가라면 나가는 것밖에 모르는데.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 그거 참 불행한 일이죠.”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군 출신 탈북민은 북러가 추가 노동자 파견에 합의했다면 노동자로 위장한 군인들을 여러 지역에 더 파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공병국 출신으로 러시아에 파견됐다 탈출한 이 탈북민은 “군인은 민간인보다 젊고 월급은 거의 없어 당국이 거의 모든 임금을 가져간다”며 유학생 비자로 러시아에 간 북한인들 중 젊은 군인들이 많다고 전했습니다.

국무부는 올해 인신매매 실태 보고서에서 지난해 기준 러시아에 등록된 북한인들 중 9천 571명이 유학 목적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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