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북한과의 군사 협력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러시아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북러 정상회담 이후 양국이 무기 거래 등 한국 안보를 위협하는 행동을 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는 평가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현지 시간으로 2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러 군사 거래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과 동맹, 우방국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또 “세계 평화의 최종적 수호자여야 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다른 주권국가를 무력 침공해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무기와 군수품을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정권으로부터 지원받는 현실은 자기모순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북한과 정전 상태로 국경을 맞대고 대치 중인 안보 위기의 직접 당사자로서 북러 간 군사 거래에 대한 결연한 반대 의지를 천명하고 국제사회의 관심과 연대를 촉구한 차원으로 해석됩니다.
이와 관련해 장호진 한국 외교부 1차관은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북러 간 군사 협력이 현실화할 경우 제재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장호진 차관]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중요한 군사 협력의 물증이 확인될 경우 안보리 결의가 현재 작동하진 않지만 미국, 일본, EU 등 서방 진영 또는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나라들과 협력해서 제재 공조를 할 수도 있고 당연히 독자 제재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장 차관은 러시아가 북한에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기술을 넘겨줬다는 물증이 증명되면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 군사 지원 가능성이 열리느냐는 질의에 대해선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에 관해서는 한러 관계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거라는 답변으로 갈음하겠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박형중 석좌연구위원은 북러 정상이 군사 거래와 관련해 많은 약속을 한 것처럼 연출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러시아의 이런 유동적인 태도를 주목하고 북러 간 군사 거래가 현실화하는 것을 억제하는 외교전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석좌연구위원] “만약에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을 지원해서 얻는 손해가 더 크다면 러시아는 북한을 도와주는 걸 주저하게 될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러시아에 대한 발언은 바로 그 러시아의 비용이 높을 거라는 점을 환기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 차관은 국회 외통위에서 이번 주 중 러시아가 한국에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안보리 개혁 필요성도 언급했습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이런 일련의 행동 때문에 “안보리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북한과 협력하려는 러시아의 행태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미일 정상의 안보리 개혁론에 발맞춘 언급으로 풀이됩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윤 대통령의 안보리 개혁 언급은 ICBM 발사 등 북한의 반복되는 도발에 대한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번번히 무산시키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불만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한국 입장에선 북한 무기 개발 이런 것들에 대한 유엔 제재 차원에서 안보리에서 러시아와 중국 때문에 계속 부결이 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북한 위협으로부터 안보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해 주는 유엔 안보리 개혁이 또한 필요하다라는 그런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해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주한 러시아대사관은 윤 대통령 연설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러시아대사관은 21일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논평에서 윤 대통령 연설에 대해 “미국 정부가 발의하고 미국과 한국 언론이 뒤쫓은 북러 협력 폄훼 선전전에 가세한 것은 깊은 유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우리는 이를 미국 주도의 서방 집단이 벌이는 공격적인 대 러시아 하이브리드 전쟁의 맥락에서 전개되는 도발적이고 대결적인 성명으로 간주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와의 호혜적 교류와 협력 경험을 가진 한국 지도부가 한국 정부의 추가적 반러 노선 추구로 양국 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에 기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중국과 관련한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
북러 밀착에 중국이 합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외교전략적 차원일 수 있고 연내 서울에서의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추진 중인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홍민 선임연구위원] “지나치게 북중러가 연대하는 것도 일정 부분 제어하고 한중일 아시아적 네트워크도 어느 정도 활성화시키는 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기 보다는 중국과는 좀 더 유대감을 높일 수 있는 그런 외교적 차원으로 끌어가려는 그런 목표가 보여집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매개로 한 북러 밀착에 동조하는 데 대해 자국의 외교안보 차원에서 부담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임 교수는 한국 정부가 이런 흐름을 읽으면서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통해 중국에도 향후 북한과의 군사 협력 가능성에 대해 간접적인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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