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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 “하마스 ‘민간인 공격’ 안 돼…강제북송 악몽 떠올라”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날아든 로켓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남부 도시 아슈켈론에서 경찰이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날아든 로켓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남부 도시 아슈켈론에서 경찰이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탈북민들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민간인들이 희생된 데 대해 우려를 표했습니다. 겁에 질린 채 하마스 대원들에게 끌려가는 여성과 아이를 보며 강제 북송의 악몽이 떠올랐다고 호소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탈북민들의 반응을 들어봤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전쟁이 발발하자 여러 탈북민은 인터넷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지지 여부를 떠나 민간인을 무참하게 살해하거나 인질로 붙잡는 데 대한 거부감이 주를 이뤘습니다.

온라인 박물관인 ‘북한 홀로코스트 뮤지엄’ 공동대표인 지현아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습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글을 올리며 하마스에 끌려가는 이스라엘 여성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지 작가는 10일 VOA에 겁에 질린 채 하마스에 인질로 끌려가는 여성을 보면서 과거 중국과 북한에서 붙잡혀 고문당했던 악몽이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든 하마스든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하거나 짐승처럼 끌고 가 인질로 삼는 것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녹취: 지현아 작가] “어유 참 끔찍했죠. 저는 중국과 북한에서의 삶이 연상되어서요. 중국에서도 저는 끌려가는 일에 부딪혔고. 또 북한에서도 성경책을 봤다고 끌려가서 고문받고 강제송환 됐을 때, 또 감옥으로 끌려갔고. 여러 가지 끌려가는 이러한 부분에 있어선 개인적으로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런지 너무 와닿고 그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죠.”

지 작가는 특히 “탈북민 대다수는 ‘인질’에 대한 아픔과 분노가 누구보다 많다”며 북한 정권이 사실상 탈북민들의 가족을 인질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지현아 작가] “우리는 남한에 왔지만, 우리가 한국에서 북한 정부에 대해 증언하거나 얘기할 때 북한 정권은 북한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 두고 위협하고 그러잖아요. 취지는 다르겠지만 일단 약자를 인질로 잡아두는 것은 (하마스와 북한) 공통점이 있죠. 어디까지나 그런 인질은 있어서는 안 되겠죠.”

과거 중국에서 공안에 체포돼 강제북송을 3번이나 당했던 영국의 박지현 ‘징검다리’ 대표도 머리를 푹 숙이고 죄인처럼 끌려가는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보면서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았던 과거의 악몽이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씨] “여성과 아이들, 노인 인질을 보면서 저희가 중국에서 북한으로 북송되던 그때가 생각나 진짜 요즘은 계속 악몽에 시달립니다. 죄 아닌 죄, 북한을 떠났다는 그거 하나 때문에 죄인으로 몰려서 진짜 머리를 푹 숙이고 교두를 건너가던 그때 그 생각이 납니다. 더구나 전쟁이 일어나면 우선 피해자는 민간인들이잖아요.”

이처럼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 대한 탈북민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어느 쪽이 옳다는 이분법적 접근보다는 누가 민간인에 먼저 테러를 가했는가에 무게가 더 쏠렸습니다.

7일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대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에서 납치한 주민을 오토바이에 태워 이동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7일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대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에서 납치한 주민을 오토바이에 태워 이동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지난 8월 유엔 안보리가 6년 만에 개최한 북한인권 공식 회의에서 증언해 주목받았던 탈북 청년 김일혁 씨는 어떤 경우에도 무고한 민간인을 겨냥하는 반인륜적인 범죄가 일어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김일혁 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렇고 이번에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도 마찬가지로 죄 없는 민간인이 너무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민간인을 학살하거나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력을 행사하면 안 되는데 요즘 행태를 보면 보복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이에요. 폭력을 행사하는 당사자의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목숨을 갖고 저울질하는 이런 반인륜적인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농업과학원 연구원 출신으로 대북 정보 유입 활동을 하는 이민복 대북풍선단장도은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하마스의 테러를 규탄하는 글을 올리면서 비슷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녹취: 이민복 단장]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폭력을 누가 먼저 했냐를 따져야죠. 그런데 지금 하마스가 먼저 테러를 했잖아요. 그것을 이분법으로 생각하면 안 되죠. 이스라엘이 그랬으면 이스라엘이 잘못한 거고요. 하마스가 (이번에) 테러했으니 하마스가 잘못한 거죠. 아니 민간인들에게 총을 쏘는 게 어딨어요? 거기에 무슨 토를 달아요.”

이 단장은 글을 통해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며 특히 탈북민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 상황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카멜레온으로 봐 선 안 된다”고 경계했습니다.

[녹취: 이민복 단장] “북한에 있을 때는 팔레스타인 편이었다고요. 이스라엘은 미국 편이니까 나쁘다고 했고요. 근데 이제 탈북했으니까 이스라엘은 우리 편이야, 이렇게 단순한 구도로 보면 안 됩니다. 심층 있게 그것이 이스라엘이든 팔레스타인이든 테러하면 안 된다. 본질을 놓고 봐야죠. 만약 이스라엘이 민간인들 먼저 쏴 죽였다면 이스라엘이 잘못된 거죠.”

실제로 북한 지도부는 이 단장의 지적처럼 팔레스타인과 매우 우호적인 관계, 이스라엘에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북한 고위관리 출신으로 서방세계에 망명한 한 인사는 9일 VOA에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평양을 여러 번 방문하는 등 북한과 팔레스타인은 오랫동안 매우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지도부는 간부 교육 때 “하마스를 정의로운 조직”으로 가르쳤다며 북한이 무기와 기술, 군사 훈련 등 다양한 지원을 했다는 소식도 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전직 북한 고위관리] “이스라엘은 북한이 볼 때 적대국이란 말이에요. 미 서방세계와 동맹 또는 유대관계를 맺는 나라는 다 적이란 말이에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은 자기 조국을 찾기 위해 투쟁하는 정의로운 조직으로 본단 말이에요. 팔레스타인이 그것을 찾기 위해 무장투쟁을 벌인다. 우리의 편이다. 미국 놈들이 남한 땅을 차지한 것처럼 이스라엘이 이런 비유법이란 말이에요. 그러나 일반 주민들에게는 하마스 이런 거 교육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몰라요”

VOA가 9일 기준으로 최근 한 달간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보도를 검색한 결과 북한은 ‘이스라엘군의 살인 만행’이란 제목 등 적어도 13회에 걸쳐 팔레스타인을 적극 지지하며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소식을 전하거나 논평했습니다.

이 전직 고위관리는 “북한을 탈출한 후에 이스라엘의 건국 배경과 유대인 수백만 명이 학살된 홀로코스트의 진상을 알게 됐다”며 “현 상황을 보면서 무엇이 정의인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부 탈북민 목사는 한국의 3만 4천여 탈북민 가운데 다수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이번 전쟁을 성경적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국 안산동산교회에서 통일선교예배를 담당하는 북한 청진 출신 허은성 목사입니다.

[녹취: 허은성 목사] “기독교인들이 많고 아무래도 성경적 문화는 이스라엘 문화이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이 다 기독교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에 복음이 다 전해지면 하나님 나라가 돌아온다는 얘기도 탈북민들의 마음속에 있고. 북한 무기와 땅굴, 갑작스러운 하마스의 공격도 그렇고. 그러면서 이스라엘에 대해 항상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지난 2019년 발표한 한국 내 탈북민에 대한 종교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가 51.2%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 단체와 탈북민 성직자들은 이에 대해 북한 주민들이 탈북 후 중국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에 정착한 뒤 기독교를 선택하는 경향이 높다고 설명합니다.

미국에 사는 탈북 난민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 내 탈북 난민 1호 데보라 최 씨는 9일 VOA에 매년 여름마다 열리는 미국 내 탈북 난민 개신교 수련회에 200여 명에 달하는 전체 탈북 난민의 4분의 1인 평균 50명 정도가 각지에서 참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과 탈북 여성 친구들이 최근 이스라엘의 기독교 성지들을 방문한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데보라 최 씨]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래전에 쫓겨나서 다른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살다가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와서 나라를 찾았어요. 그런 게 북한과 우리 탈북민들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직접 이 땅에 와서 성령 충만을 받고 우리 북한 땅을 깊이 생각하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최 씨는 전쟁 발발 하루 전인 6일 이스라엘을 떠나 가까스로 화를 면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내 탈북민 출신 목회자 단체인 북한기독교총연합회(북기총)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김광호 유니블하트 대표는 모든 탈북민이 이스라엘에 더 동정적인 것은 아니라면서도 “집단수용소의 아픔, 가족과의 생이별에 대한 죄책감 등에 대해선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는 “북한 수용소로 끌려간 뒤 실종된 누나를 두고 떠난 죄책감 때문에 한국에 사는 어머니는 식탁에서 식사조차 못 하신다”며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김광호 대표] “북한에 있는 딸이 식탁이 없는 감옥에서 어찌 식사를 하는지 그런 마음이 있으셔서 그게 커요. 그래서 우리는 지난 12월에 독일에 있는 (옛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를 방문했었어요. 사실 우리에게 화해는요. 용서와 사랑 전에 정의가 필요합니다. 진실이 필요합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홀로코스트의 아픔을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그런 것에 대해 굉장히 공감하죠. 우리 어머니가 수용소에 간 누나를 어찌 잊겠어요?”

하지만 이번 전쟁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거나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낸 뒤 작가로 활동 중인 조경일 피스아고라 대표는 9일 VOA에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강경책으로 오랫동안 고통받아 온 현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경일 대표] “이것을 뭐 이스라엘이 잘했다 팔레스타인이 잘했다고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패권국, 즉 영국과 미국이 개입된 문제라고 봐요. (이스라엘의) 건국 시점 때부터 발생한 갈등이고 거기에 종교까지 끼어든 거라서. 그리고 사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봉쇄라든가 폭압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조 대표는 “모든 전쟁은 어쨌든 전쟁을 일으킨 쪽이 가장 나쁘다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현 상황을 “단순히 기습 공격에 대한 자국 방어 차원의 논리로 봐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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