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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에 포착돼도 ‘신호’ 안 잡히는 북한 선박…위치 숨기며 제재 회피


북한 석도 동쪽 해상을 촬영한 24일 자 위성사진에 선박 25척이 보인다. 사진=Planet Labs
북한 석도 동쪽 해상을 촬영한 24일 자 위성사진에 선박 25척이 보인다. 사진=Planet Labs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북한 선박들이 위성에는 생생히 포착되면서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지도에는 보이지 않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불법 행위가 의심되는 선박이 고의로 통신 장비를 끄면서 위성사진을 통해 육안으로만 확인이 가능한 건데요. 국제 해상 안보와 제재 단속의 심각한 허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24일 북한 서해 석도 동쪽 해상엔 크고 작은 선박 25척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이날 ‘플래닛 랩스(Planet Labs)’가 찍은 위성사진에 나타난 이들 선박은 북한 남포의 관문 격인 이 지점에서 대기 중입니다.

약 30~100m 길이로 망망대해 위에서도 각각의 형태가 뚜렷하게 확인됩니다.

하지만 선박의 위치정보를 나타내는 ‘마린트래픽(MarineTraffic)’ 지도엔 이들 선박이 1척도 표시되지 않습니다.

24일 마린트래픽 지도엔 석도 동쪽 해상에 선박이 단 1척도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선박이 모두 AIS 신호를 껐기 때문이다. 자료=MarineTraffic
24일 마린트래픽 지도엔 석도 동쪽 해상에 선박이 단 1척도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선박이 모두 AIS 신호를 껐기 때문이다. 자료=MarineTraffic

해당 지점에서 북동쪽으로 약 8km 떨어진 곳에 떠 있는 선박 1척만 ‘신호’를 낼 뿐 위성사진에 선명하게 포착되는 이들 선박은 온데간데없습니다.

25척이나 되는 선박이 마린트래픽 지도에선 전혀 식별되지 않는 이유는 모두 ‘자동식별장치(AIS)’와 ‘위성항법시스템(GPS)’ 신호를 껐기 때문입니다.

육안으로 해상 동향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위성사진과 달리 통신장치에 의존하는 마린트래픽 지도는 같은 바다를 관측한다 해도 위치를 숨긴 채 이동하는 선박을 식별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같은 현상은 동해에서도 쉽게 확인됩니다.

24일 플래닛 랩스의 위성 사진에는 북러 무기 거래 현장으로 지목된 북한 라진항에 정박한 약 100m 길이의 선박 1척이 찍혔습니다.

미국 백악관이 ‘무기 선적지’로 주시해 온 곳에서 올해 들어 7번째 선박이 포착된 것인데, 마린트래픽을 통해선 이 선박의 위치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습니다.

북한 라진항을 촬영한 24일 자 위성사진(왼쪽)에 대형 선박의 입항 장면이 보인다. 반면 같은 날 마린트래픽 지도(오른쪽)에선 반대편 부두에 정박한 선박만의 위치정보가 확인될뿐 위성사진에 포착된 선박은 보이지 않는다. 사진/자료=Planet Labs / MarineTraffic
북한 라진항을 촬영한 24일 자 위성사진(왼쪽)에 대형 선박의 입항 장면이 보인다. 반면 같은 날 마린트래픽 지도(오른쪽)에선 반대편 부두에 정박한 선박만의 위치정보가 확인될뿐 위성사진에 포착된 선박은 보이지 않는다. 사진/자료=Planet Labs / MarineTraffic

대신 마린트래픽 지도는 반대편 부두에 정박한 다른 선박 1척을 인식합니다. 과거부터 줄곧 이 자리에 머무르고 있어 북러 무기 거래에 동원되진 않았던 선박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 선박의 위치 정보가 표시되는 것은 마린트래픽의 선박 수신 장치가 이 지역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유독 ‘의심 선박’의 위치 정보가 잡히지 않는 건 이 선박이 AIS를 꺼 의도적으로 동선을 감추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이런 ‘사각지대’가 북한을 포함한 각국 선박의 대북제재 위반 행위까지 감시망을 벗어나게 한다는 점입니다. 선박의 운항 여부와 동선을 위성으로 일일이 식별하고 감시해야 하는 만큼 단속에 구멍이 생기는 것입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 선박 혹은 대북제재를 위반하는 제3국 선박에 AIS를 끄고 운항하는 관행을 개선하라고 촉구해 왔습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국제 수역을 운항하는 선박들이 해적의 기습 공격 등 특수한 상황에 처하지 않는 한 AIS를 항상 켜둔 채 운항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이날 위성사진에 포착된 20여 척의 선박이 우연의 일치로 모두 긴박한 위험에 빠진 게 아니라면 모두 국제 규정을 어긴 것입니다.

나타샤 브라운 IMO 언론정보 서비스 담당관은 지난해 10월 러시아 선박이 AIS를 끈 채 북한 항구에 입항했다는 VOA의 지적에 “선박이 항해 중이거나 정박 중일 때 AIS를 항상 작동시켜야 한다는 지침은 매우 명확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브라운 담당관] “The guidelines are very clear - AIS should always be in operation when ships are underway or at anchor. If the master believes that the continual operation of AIS might compromise the safety or security of his/her ship or where security incidents are imminent, the AIS may be switched off.”

그러면서 “선장이 AIS의 지속적인 작동이 선박의 안전 혹은 보안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하거나 보안 사고가 임박했다고 판단하는 경우 AIS를 끌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처럼 명확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대북제재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선박들이 계속 AIS를 끈 채 운항하자 지난해 IMO는 제33차 총회에서 북한 선박의 규정 준수를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총회 의장인 칼리드 빈 반다르 알 사우드 영국 주재 사우디대사는 “모든 회원국과 이해 당사국들에 ‘암흑 선단’ 또는 ‘그림자 선단’의 해양 분야 불법 운항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촉진할 것을 촉구하는 부속서 7조 29항을 채택한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알 사우드 의장] “We adopt the resolution on urging member states and all relevant stakeholders to promote actions to prevent illegal operations in the maritime sector by the Dark Fleet or Shadow Fleet. In paragraph 29 in annex 7 we adopt.”

결의에 명시된 ‘암흑 선단’과 ‘그림자 선단’은 제재 회피와 안전 또는 환경 규정 회피 등 기타 불법 활동에 관여하는 선박을 의미합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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