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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풍계리 인근 탈북민 일부 염색체 변형…“핵실험과 인과관계 입증 안 돼”


북한이 지난 2018년 5월 공개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4번 갱도 입구 (자료사진)
북한이 지난 2018년 5월 공개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4번 갱도 입구 (자료사진)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 가운데 일부가 염색체가 변형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 정부는 핵실험에 따른 피폭을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지만 다른 변수 때문일 수도 있어 인과관계를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는 한국원자력의학원이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풍계리 핵실험장이 있는 길주군 등 인근 8개 시군 거주 이력이 있는 탈북민 8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5~11월 실시한 방사선 피폭과 방사능 오염 검사 결과를 29일 공개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신체의 방사능 오염 여부를 검사하는 전신계수기 검사와 소변시료 분석 결과 유의미한 측정값을 보인 탈북민은 없었습니다.

방사능 오염 검사는 음용수나 식품 등을 통해 체내에 들어온 핵종이 검사 시점에 얼마나 남았는지를 측정하는 수단입니다.

그 가운데 전신계수기 검사는 감마선 방출 핵종을, 소변시료 분석은 알파선과 베타선 방출 핵종에 의한 오염을 각각 평가합니다.

원자력의학원은 “모든 수검자에서 검사 시점 기준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방사능 오염은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유의미한 핵종 오염이 없었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반감기를 계속 거치면서 체내에 검출한계 미만의 수준으로 남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핵실험장 인근에서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핵종 중 요오드-131은 유효반감기가 7.6일에 불과하고, 세슘-137도 70일가량입니다.

따라서 한국에 입국한 후 여러 해가 지난 탈북민이라면 거주지 지하수 등을 통해 핵실험으로 방출된 이들 핵종을 섭취했더라도 현재까지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이번 검사에선 유효반감기가 5천500일이나 되는 스트론튬-90이나 6만4천일에 이르는 플루토늄-239도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염색체 이상 정도를 측정해 평생 누적돼 온 피폭선량을 가늠할 수 있는 ‘안정형 염색체 이상 검사’에선 17명에서 누적 노출 선량이 최소검출 한계인 0.25그레이(Gy) 이상인 것으로 측정됐습니다.

이들 17명 가운데 풍계리가 속한 길주군 출신은 5명입니다.

다만 17명 중 2명은 2016년 검사에선 최소검출 한계 미만의 수치를 보였고, 재입북한 이력이 없는 만큼 탈북 이후 의료방사선 피폭 등 교란 변수로 인해 이번 검사에서 최소검출 한계 이상의 수치가 나온 것으로 원자력의학원은 분석했습니다.

따라서 많게는 15명이 핵실험 후 유출된 핵종에 피폭돼 염색체 이상이 일어났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원자력의학원은 그러나 이들의 염색체 이상 역시 의료용 방사선, 독성물질, 고령 등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원자력의학원은 이들의 안정형 염색체 이상 검사 측정치가 의료용 방사선 피폭으로도 나올 수 있는 범위에 있기 때문에 이 값만으로 이들이 핵실험에 따른 피폭으로 염색체 이상이 생겼다고 판단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핵종 피폭으로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 질환인 암과 관련해 17명 중 2명이 각각 폐암과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 완치됐으나, 핵실험 피폭과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검사에서 인과관계 평가의 결정적 장애물은 해당 지역의 음용수 등 환경시료를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이 꼽힙니다.

원자력의학원은 “환경시료를 확보할 수 없는 제약을 고려할 때 핵실험이 인근 주민에 미친 영향을 과학적으로 평가하려면 더 많은 피검자를 확보하고, 입국 후 의료방사선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이른 시간에 검사를 실시하는 등 상당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또 “앞으로 전수검사가 계속 진행되며 수검자 인원이 늘어나면 교란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통계적으로 인과관계를 입증할 만한 데이터를 얻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검사는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원자력의학원 연구진이 수행했습니다.

길주군 등 8개 시군 탈북민은 총 796명이며 이 가운데 2017년과 2018년 그리고 작년까지 총 150명이 피폭검사를 받았습니다.

한국 내에서 방사선 피폭검사를 수행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기관은 원자력의학원이 유일한데 연간 검사 역량은 최대 80명입니다.

전수검사 완료까지 남은 인원이 약 650명이므로 앞으로 8년 이상이 걸리는 셈입니다.

통일부는 향후 전수조사를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며 핵실험과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들 피폭 사이의 인과관계를 지속해서 파악해 나간다는 계획입니다.

통일부 관계자는 “원자력의학원의 검사 인력을 늘릴 수 있도록 예산 당국과 협의 중이어서 내년부터는 연간 검사 인원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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