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문가들은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3국이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을 성과로 꼽으면서도 북핵 등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을 재확인했을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중국이 북핵에 대한 우려보다 미국을 견제하고 미한일 협력에 분열을 일으키길 원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안준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스콧 스나이더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27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한일중 3국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한반도 비핵화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미중 경쟁 심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중국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관심보다 미국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스나이더 소장] “I think it shows the impact of the deepening rivalry between the US and China. And it shows that for China, the focus on the United States supersedes concerns about North Korean denuclearization.”
3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정·번영이 우리의 공동 이익이자 공동 책임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면서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3국이 역내 주요 현안에 대해 합의를 도출한 것이 아니라 각국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평가됩니다.
스나이더 소장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엔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다자 간 협력하거나 미국의 요청에 따라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중국은 5년 전인 2019년 12월 중국 청두에서 열린 3국 정상회의에선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했지만, 이번엔 이에 대한 언급 없이 “관련국은 자제하고 사태 악화를 예방해야 한다”고만 말했습니다.
스나이더 소장은 “가장 최근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을 포함해 유엔 안보리에서 우리가 본 바에 따르면, 3국 정상회의 공동성명은 최근의 상황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3월 28일 유엔 안보리는 전체회의를 열고 대북 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의 임기를 내년 4월까지 1년 연장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반대와 중국의 기권으로 부결된 바 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이번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북한, 핵 무기, 북한의 위성 발사,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영토 문제, 중국의 군사력 확장과 이웃 국가에 대한 위협 행위 등 어렵고 첨예한 문제들이 전반적으로 누락된 것이 눈에 띈다”고 말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 “Difficult and divisive issues, such as North Korea, nuclear weapons, Pyongyang's satellite launches, Russia, the Ukraine war, territorial issues, China's military expansion and acts of intimidation against its neighbors, and much more, were notable by their general absence from the concluding trilateral statement.”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는 “북핵과 다른 많은 미묘한 문제에 대한 합의가 부족했기 때문에 세 정상은 덜 시급한 다른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공통 분모 합의를 찾아야 했다”면서 “그래서 3국 정상은 인적 교류, 3국 자유무역협정, 기후 변화, 보건 및 고령화 관련 문제 등 쉽게 합의할 수 있는 ‘가벼운’ 이슈를 중심으로 공동성명을 작성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나쁜 소식은 3국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대신 “좋은 소식은 3국이 계속 소통하고 이견을 논의하며, 오해를 피하고 여전히 찾기 어려운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 담당 부국장을 역임한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이날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는 공동성명 내용과 관련 “이는 각국이 자국의 비전을 제시한 것이지 다른 나라들이 반드시 동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각국의 우선 순위에 대한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에 진전이 없는 것에 대해 미국과 그 동맹들을 비난해 왔으며 미국과 동맹의 연합 군사훈련 실시를 비난하고 있는 반면 미한일 3국은 북한이 문제이며 중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본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클링너 선임연구원] “So I assume it was each country laid out its vision, not necessarily that the other countries agreed to them. So you know, I don't think there was any progress made on each country's priorities. Certainly, China has been blaming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for the lack of progress on denuclearization on the peninsula.”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그간 한중, 한일 관계가 경색돼 있었던 만큼 “정상회의가 열릴 정도로 관계 개선이 이뤄졌다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회의만 개최했다고 해서 큰 성과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며 “안보 측면에선 3국이 여전히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고, 경제 측면에서는 중국으로부터 다변화해야 하는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캠프 데이비드 선언에서 미한일 3국은 경제 안보와 공급망 강화를 약속했는데, 이는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번 한일중 3국 정상회의에서 중국과의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3자 무역을 활성화하겠다고 한 것은 한국과 일본이 해야 할 일과는 정반대라는 지적입니다.
중국이 이 3국 정상회의를 민주주의 국가를 분열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안보 석좌는 “중국은 의도적으로 안보 대화를 제한하려고 했다”면서 “이는 2008년 시작된 이 3자 회의가 경제에 초점을 맞춘 것과도 일치한다”고 말했습니다.
[크로닌 석좌] “China purposely sought to limit security dialogue, which is also consistent with the economic focus of this trilateral meeting process that began in 2008. (중략) Beijing is using this trilateral summit process to divide democracies, especially on high-tech policy, and with an eye toward further opportunities after the November U.S. election.”
크로닌 석좌는 “시진핑 주석 집권 하의 중국은 경제 성장과 기술 우위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중국은 특히 첨단 기술 정책 부문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을 분열시키고, 11월 미국 대선 이후 더 많은 기회를 노리기 위해 이번 3자 정상회의를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전 세계에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는 미중 경쟁과 갈등 속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일본 등 민주주의 국가들의 첨단 기술 협력을 방해하고 분열시키는 데 더 관심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를 역임한 데이비드 맥스웰 아태전략센터 부대표는 이날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중국이 비핵화와 관련한 공동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현재의 중국, 북한, 러시아 관계를 고려할 때 맞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들은 독재자들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면서 “중국, 러시아, 북한의 관계는 개선되고 있고 더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공동성명에 비핵화를 명시했던) 2019년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맥스웰 부대표] “And so I think for anybody to expect China to make a statement about denuclearization, that is not something that fits with the current condition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China, North Korea and Russia.”
맥스웰 부대표는 “향후 중국, 러시아, 북한은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악의적인 활동은 미국과 경쟁하고, 더 중요한 것은 미국, 한국, 일본 및 같은 생각을 가진 민주 국가들이 지키고자 하는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해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이것이 전략적 경쟁의 본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이번 3국 정상회의에서 “한국과 일본은 긴장 완화와 동북아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반면 중국은 한국∙일본과 미국과의 동맹을 진정한 위협으로 보고 있다”면서 “그래서 이번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행동은 한국∙일본과 미국을 분열시키는 데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맥스웰 부대표] “But China is really looking at the alliances of South Korea and Japan with the United States as a real threat. And so China's actions in this trilateral summit, I believe, are more focused on trying to drive a wedge between Japan and Korea and the United States because China not only looks at the alliances that the US has as threats it also envies them also would like to have alliances like that.”
로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 대사대리는 “이번 정상회의의 가장 큰 성과는 4년여 만에 개최됐다는 사실”이라면서 “3국 정상이 합의한 분야가 기후, 과학기술 협력, 인적 교류, 보건 및 고령화 등 공통 분모가 가장 낮은 이슈였다는 점은 예견됐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북한, 타이완, 우크라이나 문제 등 주요 지역 및 세계 평화와 안정 문제와 관련해 선언문에서 매우 상투적인 표현을 제외하고는 중국과 구체적인 내용이나 합의가 거의 없었다는 점도 놀랍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랩슨 전 대사 대리] “The most significant outcome of this trilateral summit is the fact that it was actually held after 4+ years. No surprise that the areas of three-way agreement, per the joint declaration, were on lowest common denominator issues: climate, S&T cooperation, people to people exchanges, health & ageing.”
그러면서 “누구도 이번 3국 정상회의에서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란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현 단계에서는 실체보다 절차가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맥스웰 부대표도 이번 정상회의의 성과와 관련해 “(영국 수상인 윈스턴) 처칠이 말했듯 ‘턱과 턱을 맞대고 대화하는 게 전쟁보다 낫다’”면서 “오랜만에 정상들이 만났고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 대화가 좋다는 것, 그것이 이번 정상회의의 유일한 성공”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맥스웰 부대표] “As Churchill said, it is always better to jaw jaw than war, war. And so I support diplomacy and I think that is the only success that comes from this summit is the fact that they met after almost 6 years and that they are talking and talking is good. Talking brings understanding but our understanding must be based on the reality of the nature of the Chinese communist party, the nature of the Kim family regime, the nature of Putin and his dictatorship.”
다만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게 하지만, 우리의 이해는 중국 공산당의 본질, (북한) 김씨 정권의 본질, (러시아) 푸틴과 그의 독제 체제의 본질이라는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안준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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