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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튀르키예-시리아, 해빙 기류 속 여전한 갈등


시리아 이들리브에서 남동쪽으로 6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콰미나스 마을에 튀르키예 군인들이 앉아 있다. (자료 사진)
시리아 이들리브에서 남동쪽으로 6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콰미나스 마을에 튀르키예 군인들이 앉아 있다. (자료 사진)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 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가 오랜 갈등 관계에서 벗어나 최근 해빙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연달아 양국 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발언을 내놓고 있는데요. 하지만 최근 튀르키예에서 발생한 시리아 이민자 집단 폭력 사태로 다시 긴장이 고조되는 형국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사이의 갈등 요인과 관계 개선 전망을 짚어봅니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두 나라”

시리아와 튀르키예는 900km가 넘는 긴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시리아로 보면 북쪽에, 튀르키예로서는 남쪽에 상대국 나라가 있는 셈입니다.

중동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이 두 나라는 지리적, 민족적, 종교적, 정치적으로 마찰과 갈등의 시간으로 점철됐습니다.

종교적으로만 봐도 튀르키예와 시리아 모두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어 같은 색깔일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하지만 종파적으로 들어가 보면 좀 다릅니다. 튀르키예는 수니파가 절대다수를 차지합니다. 반면 시리아는 국민들은 수니파가 다수이지만 지배 세력은 소수인 시아파가 독재적으로 집권해왔습니다. 그 때문에 시리아 지배층과 튀르키예는 종파적으로 다른 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민족 구성도 다릅니다. 튀르키예는 오스만투르크족의 후예로, 튀르키예인이 70~75%를 차지하고 있는, 다시 말해 아랍권 국가가 아닙니다. 반면 시리아는 아랍인이 80~85%를 차지하는 아랍 국가라고 하겠습니다.

두 나라는 소위 ‘물 전쟁’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 북쪽에 있는 튀르키예에서 발원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은 아래쪽에 있는 시리아와 이라크 등지로 흘러 내려가고요. 물이 귀한 이들 나라의 귀한 젖줄입니다. 하지만 1960년대 튀르키예가 수력 발전을 위해 댐들을 짓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벌어지는데요. 국제 사회의 반대 여론 속에 결국 튀르키예는 시리아와 이라크에 안정적인 물 공급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양국 간에 갈등이 심화하면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는 형국입니다.

두 나라는 시리아에서 내전이 발발한 다음 해인 2012년 외교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튀르키예는 시리아 정부의 반정부 세력 유혈 탄압을 신랄히 비판하고 아사드 정권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고요. 이는 결국 국교 단절로 이어졌습니다.

“튀르키예 내 쿠르드족”

튀르키예와 시리아 간 갈등에는 또한 ‘쿠르드족’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존재합니다.

쿠르드족은 오랜 옛날부터 중동 일대에 살던 민족으로, 오늘날 약 2천500만 명에서 3천500만 명이 튀르키예,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종파적으로는 튀르키예와 같은 수니파에 속합니다.

이들은 현재 튀르키예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데요. 튀르키예 통계 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약 1천700만 명이 튀르키예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튀르키예 전체 인구의 약 20%에 달하는 것으로, 튀르키예 사람 5명당 1명꼴이 쿠르드족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쿠르드족 사회가 커지면서 쿠르드족만의 국가 건설을 추진하는 무장세력도 생겼는데요. 이에 위기감을 느낀 튀르키예 정부는 ‘쿠르드노동자당(PKK)’ 같은 급진 세력을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특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쿠르드족에 대한 고삐를 더 죄었는데요. 그러면서 쿠르드족이 많이 거주하는 튀르키예 남동부, 즉 시리아 접경 지역에서 튀르키예 정부군과 이들 간에 유혈 충돌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내 쿠르드족”

시리아에는 약 250만 명 정도 쿠르드족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년 넘는 내전을 겪으면서 시리아 인구는 많이 줄었는데요. 미국 중앙정보국(CIA)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시리아 전체 인구는 약 2천380만 명입니다. 그러니까 시리아 내 쿠르드족은 전체 인구의 약 10% 정도를 차지하는 셈입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고 어수선한 가운데 이들 쿠르드족은 2014년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IS가 시리아와 이라크 등지에서 준동하자 미국과 연합국의 대테러 작전을 함께 수행하며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문제는 튀르키예 정부가 ‘시리아민주군(SDF)’과 ‘쿠르드민병대(YPG)’ 같은 무장 조직을 자국이 테러 집단으로 규정한 PKK 연계 세력으로 본다는 점이었는데요. 튀르키예는 쿠르드족이 IS 대테러 작전을 핑계로 세를 불려 자국의 더 큰 안보 위협이 되고 있다고 보고, 이들의 거점인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 수시로 공습을 단행했습니다.

이는 시리아 정부의 반발을 샀습니다. 시리아는 자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항의했고,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도 이에 동조했습니다. 아사드 대통령을 비롯한 시리아 지도부는 시아파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시아파 맹주인 이란도 거들었습니다. 하지만 튀르키예 정부군과 민병대는 지금도 쿠르드 거점인 시리아 북동부에 대한 공격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리아와 인접한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국경마을 야일라다그에 위치한 시리아 난민촌 모습 (자료사진)
시리아와 인접한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국경마을 야일라다그에 위치한 시리아 난민촌 모습 (자료사진)

“시리아 난민과 튀르키예 사회의 불만”

2011년 4월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13년이 넘도록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유엔 발표에 따르면, 내전 때문에 할 수 없이 살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시리아 국민은 1천400만 명이 넘습니다. 여기에는 국내 실향민과 다른 나라로 국경을 넘어 간 사람들 모두 포함됩니다.

튀르키예와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이집트 등 주변 5개국에 체류 중인 이들 시리아인은 약 55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요. 이 중 튀르키예가 약 330만 명으로 가장 많은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이 길어지면서 튀르키예 사회에서 시리아 난민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튀르키예 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것도 한몫하고 있는데요. 시리아 내전 초기, 난민들의 고통에 연대했던 튀르키예 국민들도 기약 없이 길어지는 전쟁으로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분석입니다.

그러면서 시리아 난민들과 튀르키예 시민 사회 간 충돌도 종종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에도 한 시리아 남성이 7살 친척 소녀를 성추행한 것에 분노한 튀르키예 주민들이 시리아인들을 집단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일부는 더 이상 시리아인들을 원하지 않는다며 돌아가라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튀르키예 정부는 폭행에 가담한 사람들을 체포하면서 “튀르키예의 신앙과 문명적 가치는 외국인 혐오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는데요. 하지만 시민 사회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고요. 야권도 난민을 받아들인 에르도안 정부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해빙 기류 속 여전한 갈등”

지난 10여 년간 경색돼 있었던 시리아와 튀르키예 관계에 최근 해빙 기류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 이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도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밝혔기 때문입니다.

아사드 대통령은 튀르키예가 시리아의 주권을 존중하고 테러 대응에 기여하는 한 양국 관계 정상화 노력에 열려 있다고 말했는데요. 이 같은 발언에 에르도안 대통령도 바샤르 대통령과의 회담을 비롯해 양국 관계 회복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튀르키예의 이 같은 입장 변화는 포화 상태에 있는 시리아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시리아 난민 집단 폭력 사태에서 보여진 여전한 갈등과, 또 시리아 정부 관리들이 관계 정상화에 앞서 시리아 북부 반군 거점에 주둔하고 있는 수천 명 규모의 튀르키예 군대 철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 양국 관계 복원에 큰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RN) 전 대표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RN) 전 대표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프랑스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의 실질적 지도자 마린 르펜 의원입니다.

지난 6월 30일 치러진 프랑스 총선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이 득표율 1위를 기록했습니다. 7일 있을 2차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하면 RN은 창당 이래 처음으로 총리를 배출하게 됩니다.

현재 RN은 올해 28살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가 이끌고 있지만, 실질적 지도자는 마린 르펜 전 대표입니다. 마린 르펜 전 대표의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이 1972년에 RN의 전신인 국민전선을 창당했는데요. 마린 르펜은 2011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RN의 대표로 선출돼 약 10년간 당을 이끌다 2022년 대표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르펜 전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도 자신의 지역구에서 승리했습니다.

르펜 의원은 1968년생으로 55살입니다.
극우 정치인인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의 세 딸 중 막내였습니다. 유년 시절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1976년 르펜 의원 가족이 살던 아파트가 폭탄 테러를 당하는 사건을 겪었고, 이 일은 그녀의 성격 형성과 정치적 시각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학을 전공한 르펜 의원은 1992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고요. 파리에서 변호사로 일했습니다. 1998년에는 아버지의 국민전선에 합류해 당의 법무 책임을 맡았고, 2003년에 당의 부대표가 됐습니다.

2007년,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는 대선 캠페인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르펜 의원은 아버지의 일부 극단적인 의견에 반대하면서 아버지의 그늘에서 점점 벗어나기 시작했고요. 아버지와 거리를 뒀습니다.

르펜 의원은 2017년과 2022년 프랑스 대선에서 결선까지 진출했는데요. 두 번 모두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과 맞붙어 패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르펜 의원은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는 거물급 정치인으로 몸집을 키웠습니다.

르펜 의원은 아버지와 RN의 극단적 이미지를 계속 완화해 가며 유권자들에게 기성 정당들의 대안으로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외 계층인 노동자, 농민, 시골 지역 표심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 중도 세력과 좌파 연합은 RN이 2차 투표에서 다수당이 되지 못하도록 급하게 연대를 추진하고 있는데요. 르펜 의원은 2차 투표에서 RN이 절대 다수를 얻을 경우만 정부를 구성하겠다며 총력적 지지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당적이 다른 대통령과 총리의 동거 정부가 있었던 건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다른 성향의 동거 정부가 구성된 적은 한 번도 없는데요. 2차 결과에 따라 RN과의 동거 정부가 출범하면 마크롱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난항이 예상됩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관계 살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연합의 실질적 지도자 마린 르펜 전 대표 소개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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