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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한국전쟁 고아의 아버지, 딘 헤스 공군대령


[인물 아메리카] 한국전쟁 고아의 아버지, 딘 헤스 공군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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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큰 전쟁에서 전투기를 몰고 적군을 공격해야 했던 목회자, 그는 전쟁 영웅이면서 부모 잃은 어린 생명들을 구출하는 인간애를 실천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한국 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싸우면서도 수 많은 전쟁고아를 구한 영화 “전송가”의 주인공 딘 헤스 미 공군 대령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딘 엘머 헤스는, 1917년 미국 중부 지방인 오하이오 주 마리에타 (Marietta) 에서 태어났습니다. 최초의 대서양 횡단 비행 영웅 찰스 린드버그 처럼 되고 싶었던 9살 아이 딘은 잔디를 깎고 신문을 배달해 돈을 모아 부근의 비행장으로 가 잠깐 동안 하늘을 나는 경험도 해봤습니다. 딘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신앙심 깊은 어린이였습니다. 그리고, 장차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기도 했습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며 돈을 모은 그는 고향에 있는 마리에타 칼레지에 들어갔습니다.

학교에서는 그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연방 자금 지원으로 조종사 훈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헤스는 주저 없이 그 제의를 받아들여 비행 훈련을 받았습니다. 헤스는 1941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어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헤스는 주유소 아르바이트 시절 동료의 누이동생인 매리 로렌츠 (Mary Lorentz)와 결혼했습니다. 헤스는 이제 비행기를 모는 목사가 됐습니다. 그는 오하이오 주 각지에 흩어져 있는 교회를 말 대신 경비행기로 순회하며 설교를 했습니다.

미국이 제 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자 그는 전투기 조종사로 자원 입대했습니다. 장교로 임관된 그는 조종술이 뛰어나 2년 동안 앨라바마 주 네이피어 공군기지에서 교관으로 복무했습니다. 대위로 진급된 그는 연합군의 노르망디 작전이 있은 후 유럽 전선에 배치됐습니다. 살인은 죄악이라 믿고 있는 그였지만 지상의 독일군을 공격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고 스스로도 놀랐다고 그는 자서전에서 회고했습니다.

1944년 12월, 그는 나치 독일로 진군하는 연합군을 지원하는 임무를 띄고 출격했습니다. 그는 기관총을 장착한 Republic P-47D 전투기를 몰고 편대장 빌 마이어스와 함께 공업도시 카이제스라우텐을 훑어보며 날았습니다. 이들은 지상에 두대의 독일 열차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헤스는 편대장을 따라 하강하며 날개 밑에 장착한 1천 파운드의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첫번째 폭탄은 열차의 기관차를 명중했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폭탄은 살짝 늦게 투하되며 인근 7층짜리 건물을 타격했습니다. 건물은 화염에 쌓였습니다. 헤쓰는 혹 건물안의 민간인이 죽지 않았을까를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헤쓰는 자서전 Battle Hymn 즉 전송가에서 그것보다는 자신이 공격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에 더 큰 신경을 썼다고 고백했습니다. 몇주 후 헤스는 해방된 그 도시를 집차로 순찰하다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폭탄을 맞은 건물은 고아들이 수용돼 있는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폭탄으로 뚫린 건물의 검은 구멍은 적의를 품고 나를 쏘아보는 눈동자 같았다”고 헤스는 자서전에서 고백했습니다. 아픈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한 헤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뒤 그는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수 많은 전쟁 고아를 구하는 활동에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습니다.

1945년 봄 유럽 전선을 떠나 오하이오로 돌아온 그는 오하이오 스테이트 대학에서 박사 과정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950년 봄, 그는 다시 군에 소집돼 일본으로 보내졌습니다. 부인과 두 아들을 남겨두고 전운이 감도는 태평양으로 가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소령으로 진급한 그는 1950년 6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군 조종사 훈련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는 대구로 날아가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공군 비행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훈련에는 2차대전 때 사용됐던 미국의 F-51D 무스탕 10대가 전부였습니다.

한국 조종사 훈련에는 미국의 자원봉사 교관들도 합류했습니다. 한국 전쟁 발발 1년 사이 이들 훈련 교관들 중 7명이 추락사하는 참극도 겪어야 했습니다. 미국의 군사교관들에게는 오직 훈련만 하도록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북한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이어지고 일본에 주둔한 공군기의 지원이 실현되는데 시간이 걸리자 그에게는 한국내 미 지상군 엄호를 위한 전투 비행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갑자기 혼란해 지자 도처에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이 방황했습니다. 헤스의 부대를 비롯한 연합군 부대들은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가운데서도 이들 어린이를 부대로 데리고 와 음식과 의복을 주어 보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곧 아이들이 군 막사에 넘쳐났습니다. 헤스는 고아들을 인근에 있는 보육원에 수용토록 했습니다. 제5공군의 러셀 블레이스델 군목은 헤스 소령에게 더 이상의 아이들을 데려오면 안전이 어렵다고 우려했습니다.

서울이 다시 위험해지자 헤스는 한국 조종사 들이 그들 가족을 피신시켜놓은 제주도로 고아들을 대피시키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헤스는 제주도의 한 폐교에 아이들을 임시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서둘러 고아들을 제주도로 수송하는 계획에 착수했습니다. 블레이스델 군목은 거의 천명에 가까운 고아들과 80여명의 보모들을 인천항으로 싣고 갈수 있는 군용 트럭을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인천에 도착했을 때 이들을 싣고 가기로 한 한국 해군의 LST 함정이 끝내 오지 못했습니다.

제주도에는 이들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었지만, 인천 부두에서 추위에 떠는 고아들의 안전을 보장할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고아들과 성인들은 김포공항으로 다시 옮겨졌습니다. 이들이 절망에 빠진채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멀리 공중에서 웅장한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1950년 12월 20일, 헤스의 긴급 호소를 들은 일본 주둔 미 공군의 패트릿지 (General Partridge)장군이 보낸 15대의 C-54 스카이매스터들이 날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서둘러 고아들과 보모들을 싣고 제주로 떠났습니다.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한 특파원들은 즉각 유모차(Operation Kiddy Car)작전이 전개됐다며 이 이야기를 타전했습니다.

제주도에는 미리 준비된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이들을 보살폈습니다. 헤스 대령은 “마지막 비행기에 숨어있던 남루한 어린 아이를 찾아냈을 때, 그토록 엄청난 감사와 안도의 스릴을 느낄 줄은 나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감격해 했습니다.

헤스는 기적적으로 치명적 부상을 면한 사건을 포함해 250회가 넘는 출격과 정든 한국 고아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1951년 6월 한국 복무를 마쳤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에게 한국군 최고 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헤스는 텍사스 주 제 5공군의 공보장교로 임명됐습니다. 헤스 대령은 제주의 보육원을 계속 도우면서, 부인 매리, 두 아들과 함께 서울에 새로운 고아원을 세우기 위한 기금을 모았습니다.

딘 헤스는 1956년 자서전 Battle Hymn 전송가를 펴냈습니다. 또 이 자서전은 헐리우드의 영화로도 만들어 졌습니다.

1957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위험에 처한 수 많은 고아들의 피난길이 막막해지자 긴급히 군 수송기를 마련해 아슬아슬하게 이들을 대피시키는 이야기로 미국의 영화 팬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영화 영화는 한국에서도 개봉됐습니다.

헤스는 영화 수입으로 수만 달러를 모아 고아원에 기증했습니다.

오하이오 고향으로 돌아온 헤스는 퇴역할때까지 라이트 패터슨 공군기지에서 복무했습니다. 그는 1969년 대령으로 퇴역했습니다. 그가 받은 무공훈장과 조종사 헬멧 등은 국립 미 공군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헤스 대령은 2015년 3월 97세로 타계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제주도에는 전쟁 중 수많은 어린 생명을 보호한 그의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제주 항공박물관에서 열린 제막식에는 군 관계자, 참전용사, 옛 고아 등 200여명이 참석해 그의 공적을 되새겼습니다. 기념비에는 단 세줄의 문구로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압축해 전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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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의 아버지
전쟁고아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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