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대표가 전 세계 다양한 문제를 논의하는 유엔총회 회의에서 한국과 북한이 연일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최근엔 한국이 북한을 ‘노스 코리아(North Korea)’로 부르자 북한이 이에 반발하면서 회의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는데요. 함지하 기자와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남북이 유엔 무대에서 설전을 벌이고, 공방을 벌인다는 소식은 여러 차례 전해 드렸는데요. 이번에는 회의가 중단됐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특별정치와 탈식민 문제를 다루는 제4위원회 회의에서 지난 6일 벌어진 일인데요. 먼저 김인철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참사관이 한국에 주둔 중인 유엔군사령부가 ‘유엔’이라는 명칭을 불법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유엔주재 한국대표부의 정재혁 1등 서기관이 반박 발언을 하며 공방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진행자) 여기까지는 통상 있는 일인데요?
기자) 맞습니다. 유엔총회 위원회 회의는 일반적으로 한국이나 북한이 주제 발언을 하면서 상대국을 언급하고, 이에 대해 해당 나라는 ‘반박권(Right of Reply)’을 요청해 대응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정재혁 서기관이 유엔사에 대한 북한의 문제 제기에 반박권을 사용한 것입니다.
문제는 정 서기관이 발언을 하면서 북한을 ‘DPRK’가 아닌 ‘노스 코리아(North Korea)’로 지칭했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문인 DPRK를 유엔에서 국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한국 대표가 북한을 ‘노스 코리아’로 지칭하자마자 의장이 ‘포인트 오브 오더’가 요청됐다며 정 서기관의 발언을 막았습니다.
진행자) 발언을 중간에 막는 것이 가능한가요?
기자) 네, ‘포인트 오브 오더’(point of order) 때문입니다. 각국의 발언이나 회의 진행이 절차에 어긋날 때 행사할 수 있는 절차인데요, 이 때 의장은 특정국의 발언을 중단시켜야 합니다. 이날 북한의 김인철 참사관은 자신이 ‘포인트 오브 오더’를 요청했다면서, 한국이 북한을 ‘노스 코리아’로 지칭한 점을 그 이유로 들었습니다.
이후 의장은 별다른 추가 언급 없이 정 서기관이 발언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정 서기관은 이번에도 ‘북한’을 ‘노스 코리아’로 지칭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또다시 ‘포인트 오브 오더’를 요청했는데요. 다만 발표가 막 끝나던 시점에 요청돼, 발언 중단으로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김인철 참사관은 이번에 다소 강경한 어조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러자 의장은 대책을 논의하겠다며 5분간 정회를 선언했습니다.
진행자) 남북의 신경전이 회의 중단으로 이어진 것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사실 한국과 북한은 올해 유엔총회 회의에서 여러 번 맞붙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노스 코리아’ 문제로 설전을 벌인 것은 이번이 4번째입니다. 그런데 회의가 중단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렇게 5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요. 이후 의장은 ‘각국이 예의를 지켜달라’는 짧은 말과 함께 회의를 재개했습니다.
이후 북한과 한국은 ‘유엔사’와 관련해 한 차례 더 설전을 벌인 뒤에야 공방을 마무리했습니다. 다만 정 서기관은 앞선 ‘노스 코리아’ 논란과 관련해 한국의 입장을 밝혔는데요. 정 서기관은 북한이 최근까지 한국을 ‘사우스 코리아’ 혹은 SK로 부르고, 또 사우스 코리아의 S철자를 대문자가 아닌 소문자로 사용한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북한이) 존중을 요구하고 있지만, 존중은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진행자) 북한이 먼저 한국을 ‘사우스 코리아’로 불렀다는 주장이군요? 정말로 그렇나요?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이 한국을 ‘ROK’로 부르기 시작한 건 올해부터입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하고, 한반도 통일 노선마저 포기했습니다. 이후 한국을 ROK 혹은 대한민국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 북한에게 한국은 그저 ‘남조선’이었습니다. 이번 4위원회 회의에서 문제를 제기한 북한의 김인철 참사관은 ‘서기관’이던 지난해, 1위원회 회의와 정보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을 ‘사우스 코리아’로 불렀습니다. 또 2022년 1위원회 회의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우스 코리아’로 지칭했습니다. 왜 우리를 ‘노스 코리아’로 부르냐고 항의한 인물도 정작 지난해까진 같은 방식으로 한국을 ‘사우스 코리아’로 불렀던 것입니다. 반면 당시 한국은 북한을 DPRK로 지칭했었습니다.
진행자)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나올 법 하군요?
기자) 네, 지난달 30일 유엔총회 1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김일훈 제네바 주재 한국 대표부 참사관이 그런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한이 ‘노스 코리아’ 문제를 제기하자 북한이 이날 회의에서 한국을 ‘속국’, ‘군사 식민지’로 지칭한 사실을 지적하며 “이제는 (북한이) 존중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북한이 존중을 받으려면 유엔 헌장부터 지키라”며 북한이 쓰레기 풍선을 한국으로 날린 사실을 거론하며 “자칭 주권 국가라는 조직이 이런 비문명적이고 저급한 행위를 즐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진행자) 혹시 다른 나라들도 이렇게 신경전을 벌이나요?
기자) 물론입니다. 유엔총회 회의에선 남북한 외에도 이스라엘과 중동 지역 나라들의 설전 장면을 쉽게 볼 수 있고요.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공방도 자주 목격됩니다. 물론 각국의 입장이 워낙 강경하고, 상대국과의 입장차이가 큰 만큼 어떤 결론도 맺지 못한 채 회의가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함지하 기자와 함께 유엔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과 북한의 공방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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