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군사 밀착이 북한 군의 러시아 파병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북중 관계는 여전히 냉랭한 기운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표면적으론 북러 협력이 당사국 문제라는 원칙적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자국 경제난을 가중시킬 수 있는 북한의 행동에 불만이 크다는 관측입니다. 서울의 김환용 기자를 연결해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북중 관계가 좋지 않다는 징후들이 지속되고 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이 최근 각국의 상품을 전시하는 ‘국제상품전람회’를 개최했는데 이번 행사에서 북러 밀착관계가 부각된 반면 북중 간 소원한 관계가 또 다시 확인됐습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0일 “제16차 평양 가을철 국제상품전람회가 개막됐다”며 “우리나라와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160여 개 기업체와 회사들이 생산한, 국제경쟁력을 갖춘 제품들이 출품됐다”고 전했습니다.
‘노동신문’은 러시아 기업 제품이 출품됐음을 직접 언급하면서 신문에 실은 1장의 사진에도 러시아 제품이 출품된 부스를 부각시켰습니다.
반면 이 행사에 참석한 왕야쥔 평양 주재 중국대사와 중국대사관 외교관들에 대해선 참석 사실은 물론 중국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북중은 올해 수교 75주년을 맞아 ‘조중 우호의 해’를 선포했음에도 양국 관계를 부각하는 행보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북러 신조약을 체결한 이후 북중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는 정황들은 계속 포착돼 왔습니다.
진행자) 북러 신조약 체결 이후 북한이 인민군을 러시아에 파병까지 했는데 중국은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죠?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3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분쟁 확산을 막고 불에 기름을 끼얹어 적대감을 키우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사태를 조기에 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발언은 북한 군의 러시아 파병 문제가 불거진 직후 나온 것으로, 북러 밀착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중국 경제가 최악인 상황이고 시진핑의 지도력까지 흔들리는 상황으로 추정이 되는데 이 상황에서 북러 밀착, 그 다음에 유럽과 한반도 안보 위기 이건 중국으로선 상당히 불편한 상황이고 중국 국익과도 러우전쟁 확전, 인민군 참전까지 포함해서 이건 아주 불편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죠.”
다만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시 주석이 발언한 이튿날인 24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중국은 관련 상황을 알고 있지 않다”면서 “각 당사자가 국면 완화를 추동하고 정치적 해결에 힘쓰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북러 밀착으로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 축소도 우려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중국이 북한의 행동을 제약할 수단이 있지 않나요?
기자) 아주대학교 미중정책연구소 김흥규 소장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며, 특히 북한이 최근 들어선 핵 보유국 지위를 내세워 중국에 한층 뻣뻣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소장은 중국이 그런 북한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관련한 사치품 금수, 북한의 IT 인력 중국 내 활동 차단 등 압박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소장은 특히 중국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외교적 입지가 약화된 한국과 관계 회복 의지를 노골화하고 있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전략경쟁을 앞둔 포석이기도 하지만 한반도 안정을 해치는 북한의 도발을 반대한다는 분명한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흥규 소장] “북한이 적대국으로 이미 선언했고 한국이 어떤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은 오히려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거죠. 바로 이런 한반도 균형이 무너졌을 때 대단히 한반도 상황이 불안정하고 위험해진다고 보는 거죠.”
중국 정부는 지난 1일 관광과 비즈니스 등의 목적으로 최대 15일까지 비자 없이 중국에 체류할 수 있는 ‘일방적 무비자 정책’ 대상국에 한국을 포함시켜 한중 관계 개선에 먼저 손을 내민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습니다.
또 시 주석과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지난 15일 페루 수도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로 가진 양자 정상회담에서 방중과 방한을 각각 제안했고 두 정상 모두 “초청에 감사하다”고 화답했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북중 관계가 이렇게 불편하게 된 이유는 뭘까요?
기자) 김흥규 소장은 지금은 북한과 중국이 세계 정세를 보는 시각과 전략 등이 모두 다르고 이 때문에 핵심 이익이 부딪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북한은 신냉전 구도 또는 친미 대 반미의 진영구도로 국제 정세를 보고 이를 적극 활용하려고 하지만 중국은 비록 지금이 미국과의 전략경쟁 국면이지만 신냉전 구도로 번지는 것을 원치 않고 한반도 등 지역에서의 단기적 불안정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겁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북한과 중국의 이념노선의 차이를 지적했습니다.
고 명예교수는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제계급투쟁으로 보고 있고 사회주의에 기반한 수령체제 수호에 몰두하고 있지만 중국은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한 축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자본주의와 고립해서 자력갱생하겠다는 북한과 자본주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사이에 좋은 관계가 맺어질 수 없는 거죠. 북한이 사상이론적인 조정을 하고 그 분업구조에서 같이 살자고 하지 않는 한 어려운 거죠.”
고 명예교수는 북한은 중국과의 교역 확대가 자칫 자본주의 황색 바람을 불러 올 수 있다고 보고 이를 꺼릴 수 있다며, 그 부담이 적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향후 북중 관계는 어떨 것으로 전망되는지요?
기자) 통일연구원 전병곤 박사는 중국이 북한을 압박할 수단들이 있고 북한 군 파병이 한반도 불안정 요인이라는 점에서 불만이 있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려고 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 박사는 중국이 북러와 3국 소다자 연합 방식으로 미한일에 대응하진 않겠지만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미국과의 전략경쟁 구도에서 반미 연대감은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전병곤 박사] “북한에 대해 다른 차원에서 여러 가지 수단을 갖고 있지만 사용할 의사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러시아에 대해서도 자기들이 레버리지 즉 수단이 있다고 해도 그 수단을 사용하는 순간 중러 관계가 악화되거나 이렇게 되는 상황까지 가는 걸 원치 않는다 이렇게 평가해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조한범 박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도 러시아는 군수기지로서의 가치 등을 고려해 북한과의 관계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전후 복구와 경제 살리기를 위해 한국 또한 여전히 필요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북한도 러시아와의 관계가 약화될 가능성에 대비할 것이고 이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를 소홀하게 다루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조 박사는 또 중국의 경우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제한적이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정상각도 발사나 7차 핵실험처럼 한반도 위기 수위를 크게 끌어올릴 대형 도발에 대해선 민감하게 보고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북한에 발신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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