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만족스러웠던 자기 삶을 포기하고 어린 두 딸을 위해 두만강을 건넌 한 탈북 여성이 있습니다.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이효주 씨인데요. 이효주 씨는 다른 형제와는 다르게 어렸을 적부터 음악에 대한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녹취: 이효주 씨] “저는 이효주이고요. 2011년에 남한에 왔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님이 하라고 해서 했고요. 저한테서 뭘 다른 걸 봤겠죠. 딸만 다섯이었는데 음악을 한 건 저밖에 없거든요. 다 다른 일을 했는데 일단 우리 아버지 뜻이 그거였어요. 여자들은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우리 언니나 동생들은 재단도 배우고 이런 걸 다 했는데 저만 어떻게 아코디언을 하게 됐고요."
그렇게 오로지 한 길, 청진 사범대 음악과에서 아코디언을 전공했고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음악 교사로 일하게 되죠.
[녹취: 이효주 씨] “사범대학 가서 중고등학교 교사가 된 거죠. 17년 정도를, 일단 2011년에 제가 북한을 떠났는데 그때까지 쭉 교직에 있었거든요. 북한에서는 사범대학을 졸업했고 예능 학부 음악과를 졸업해서 중고등학교, 여기로 말하면 중고등학생한테 음악 수업과 방과 후 동아리 같은 과외 소조 운영을 같이 진행했었죠. 한 17년 정도 북한 떠날 때까지 교사 생활을 한 거죠."
오랜 시간 교사 생활을 할 만큼, 이효주 씨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먼저 탈북한 시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탈북을 결심해야 했죠.
[녹취: 이효주 씨] “체제의 연좌제 같은 거죠. 시어머니도 그렇고 시누이도 그렇고, 남편도 먼저 오게 됐죠. 근데 교사를 했으니까, 애들이 진로 같은 게 어떻게 안 된다는 이런 게 있거든요. 학생들 보면 졸업시킬 때 정말 재능있고 실력도 있고 좋은 애들인데 부모님들의 영향이라든가 성분이 안 좋으면 대학에도 못 가고 군부 계통에 가는 것도 학생들 졸업시키면 성악도 잘하고 아코디언 잘하면 좋은 병과에 갈 수 있거든요. 근데 성분이 안 좋아서 그런데도 못 가는 학생들, 그런 학생들을 계속 저는 같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애 아빠까지 한국으로 가다 보니까 우리 애들한테 미래가 없는 거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죠. 그냥 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죠."
그렇게 이효주 씨는 북한에서의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녹취: 이효주 씨] “저는 뭐 그나마 나의 만족도랄까? 교사 생활하면서 만족도가 엄청 높은 편이었어요. 학생들도 키우는 게 제 적성에 맞고 그래서 정말 재밌게 했었는데, 애들만큼은 그게 안 되고 뭐 희망이라는 게 없어진 거죠. 애 아빠도 먼저 갔지만, 없어도 '난 한번 해보리라.' 이런 걸로 해서 어떻게 말하면 그런 감정이 있잖아요. '내가 너 없이도 잘 키울 거야.' 뭐 이런 거 있잖아요. 근데 어떻게 보면 그게 억지예요. 구조적으로 그게 안 되니까 그래서 그냥 애 아빠가 간 다음에 한 2년 그냥 있다가 제가 한 세 번 정도 시도했었어요. 근데 두 번은 실패했고 일단 세 번째 만에 됐거든요. 그게 동기였죠. 애들 때문에 왔고... 지금 우리 자식들이 크고 이제는 벌써 10년이 됐잖아요. 처음에는 너무 아쉽고 일단 내 인생은 접었잖아요."
결국, 고향을 떠나게 된 이효주 씨. 어린 두 딸의 손을 잡고 기차를 타러 떠납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죠.
[녹취: 이효주 씨] “그날 탈북하는 날도 그 기차 시간이 저녁 기차 시간이었거든요. 그래서 역전에 나갔는데 기차가 연착된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그날 출근을 안 하면 어디 갔냐부터 시작해서 들어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애들은 역전에다 두고 '너희들 움직이지 말라.' 하고 진짜 그때 그 심정이라는 게..."
아이들을 기차역에 그대로 둔 채, 이효주 씨는 다시 학교로 출근했습니다. 어린 두 딸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죠.
[녹취: 이효주 씨] “7살, 9살이면 그때 애들을 역전에다 두고, 그러니까 아무 사람도 없는 거잖아요. 지금 너 여기서 꼼짝하지 말고 엄마 학교 갔다 온다. 애들도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친척 집에 나들이 가는 것처럼 하고 나왔으니까... 학교 출근해서 기차 시간이 있잖아요. 기차 시간이 있으니까 2시간 정도 수업하고 교장선생님한테 애가 아파서 병원에 좀 가겠다고 거짓말을 한 거죠. 그리고 역전에 나와서 차 타고 무산 쪽으로 간 겁니다. 무산 쪽에 가서 하룻밤, 이틀 밤을 자고 두만강을 건넜죠."
그렇게 북한을 떠나 태국을 거쳐 2개월 만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계획했던 탈북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초기 정착 생활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아코디언 강사 탈북민 이효주 씨의 얘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