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대 명절로 꼽는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이른바 ‘태양절’이 유례없이 조용하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코로나19)와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북한이 예년에 했던 대규모 행사들을 줄줄이 취소했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108번째 ‘태양절’을 맞아 “20세기 가장 걸출한 수령이자 절세 위인”으로 추켜세우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태양절이면 늘 했던 관련 행사 소식들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태양절 전후 열려 온 열병식과 집단 축하공연, 태양절 전날 개최됐던 평양과 전국의 도와 시, 군 보고대회에 대한 보도도 없었습니다.
태양절을 기념해 해마다 4월 개최했던 평양국제마라톤과 친선예술축전 등 여러 국제행사들은 일찌감치 취소했고, 태양절 기념 꽃 전시 축제인 김일성화 축전도 올해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다만 평양 만수대의 김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상에 외국에서 보내온 축하 꽃바구니가 답지했고 국가우표발행국이 기념우표를 발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신종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국가적 비상방역체계를 계속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연장선에서 대형 행사를 자제한다고 볼 수 있다”며 “태양절 경축 행사가 대폭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 전문가들도 신종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자체적인 군중 동원 행사는 물론 외국인 유입이 불가피한 국제 행사도 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신종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북한이 태양절 행사를 대폭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주민들에게 제공했던 태양절 기념 특별배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인한 이동 통제와 배급물자 한계 등으로 특별 배급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는 분석입니다.
조 박사는 김 위원장이 리더십 공고화에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유산을 적극 활용해왔기 때문에 조용한 태양절은 그렇지 않아도 성과 위기에 놓인 김 위원장에게 정치적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예년과는 다른 별로 풍족하지 않은 그렇게 보면 북한 주민들이 현재 북한이 처한 위기를 체감하는,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가 사실 햇수로 집권 10년차인데 빈약한 성과를 (주민들이) 겉으로 발설은 못하더라도 그것을 체감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조용한 4.15는 김 위원장 정치적 리더십에 상처가 될 수밖에 없죠.”
북한은 또 태양절을 전후해 다양한 군사행보를 보인 바 있습니다.
김 위원장 집권 후 첫 태양절을 맞은 2012년 4월13일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급인 광명성 3호 위성을 탑재한 은하 3호를 발사했습니다.
이어 2016년 4월15일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로 분류되는 무수단 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또 2017년 4월15일에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대대적인 열병식을 열고 신형 미사일 7종을 공개했습니다. 미 본토를 노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비롯해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등 여러 종류의 미사일 보유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북한은 이번엔 14일 수 발의 순항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한반도 동해상으로 쐈습니다. 전문가들은 태양절에 맞춘 무력시위 치곤 저강도이긴 하지만 군과 주민들의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보고 있습니다.
한동대학교 박원곤 교수는 미국의 대북 압박에 신종 코로나 사태까지 더해져 태양절을 계기로 한 북한의 무력시위도 신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태양절 같이 기념일엔 고강도 도발을 하는데 역시 코로나19 영향 때문에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그런 고강도 도발은 억제하고 있다고 판단이 됩니다. 레드라인 같은 경우엔 지금 분명하게 트럼프 대통령이 얘기를 했던 것이고 북한이 만약 그것을 넘는다면 북한에 대해서 1차적으로 더 강력한 경제 제재가 부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선 마지막 카드로 남겨둘 가능성이 있죠.”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도 북한이 고강도 도발에 나서기엔 대내외적 여건상 너무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하지만 자신들의 존재감 과시와 내부결속 차원에서 태양절에 즈음한 추가적인 무력시위도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