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도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신종 코로나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지하지만, 현실적인 특수성 때문에 국경봉쇄가 최선의 방안일 것이라고, 나기 샤픽 전 유엔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 평양사무소 담당관이 밝혔습니다. 샤픽 전 담당관은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북한에 구호단체의 발길이 끊기면서 생사를 오가는 주민의 수가 늘었을 것으로 우려했습니다. 2001년부터 9년 동안 평양에서 근무한 샤픽 전 담당관을 안소영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신종 코로나 방역을 위해 북한이 국경을 폐쇄한 지 7개월이 넘었습니다. 역대 최장 기간으로, 초기 대응에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이 같은 방역 조치,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샤픽 전 담당관) “전염병 확산이 시작되자 마자, 보건 상황을 감안해 국경을 폐쇄하고 예방에 전념한 북한 당국의 초기 대응은 효과적이었습니다. 또 일찍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대대적인 방역교육도 실시했죠. 현재 북한 상황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작은 규모의 신종 코로나 확산이 있을 수도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1차 전염 그러니까 지역사회로 확산하기 전 상황은 북한 스스로 대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심각한 확산을 일찌감치 차단할 수 있는 적적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평가합니다. 다만,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북한의 제재 국면에서 ‘경제적 생명줄’인 중국과의 국경봉쇄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은 가중되고, 때문에 단둥과 신의주 사이에서의 밀교역이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염병이 전파될 수 있습니다.”
기자) 그래서 무조건적인 통제보다는 북한이 이제는 격리 기간이나 외국인 허용 범위 등에 있어서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실질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샤픽 전 담당관) “아시다시피 북한의 격리 기간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당히 깁니다. 북한 스스로 그들의 보건의료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것을, 또 깨지기 쉽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과거 평양에서 10년 정도 근무한 경험 때문에 이런 위기가 찾아오면, 북한 보건성 측에서 직접 제게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코로나가 확산하자마자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니,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북한 당국에, 국경을 너무 이른 시점에 닫았다,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는 일종의 비난(criticize)의 이메일을 보내왔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답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각국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때문에 전염병에 대응하는 방식도 다르다는 겁니다. 경제력이 강한 나라, 제재를 받지 않는 나라, 확실한 보건시스템이 갖춰진 나라와 북한은 다릅니다. 저도 과학을 믿는 사람입니다. 북한도 과학을 기반으로 한 방책이 필요하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처한 상황에서는 저도 같은 결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
기자) 하지만 언제까지나 ‘예방책’만 강조할 수는 없을 텐데요. 보다 현실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걸 북한이 깨닫도록 할 수는 없을까요?
샤픽 전 담당관)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이미 북한에 코로나가 확산했는데 당국이 숨기고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2003년에는 ‘사스’를, 2004년에는 용천역 열차 폭발사고를, 또 2006년에는 홍역 등 여러 ‘사건’이 터졌을 때 북한 당국이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직접 지켜봤습니다. 북한 당국은 국제기구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북한 당국도 전염에 노출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알고 있습니다. 북한은 코로나 확산 때도 코로나 검사기기와 개인보호용품 등의 지원을 국제적십자연맹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 또 중국과 러시아 등 각국에 요청했습니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이번 전염병 상황이 심각하다고 보면 큰 규모의 공식 지원을 요청할 것입니다. 그러면 WHO는 바로 북한에 기술적 지원 등 다른 차원의 개입을 시작합니다.”
기자) 북한의 다소 과도한 방역 조치가 경제 악화, 취약계층의 어려움 가중 등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국제 기준에 맞는 방역을 북한에 설득할 수는 없는 겁니까?
샤픽 전 담당관) “북한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때가 2001년인데, 국제기구의 관여와 소통으로 2003년부터 북한 당국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다른 나라와의 ‘과학적 차이’가 크다는 것을 북한이 인지한 겁니다. 물자 지원뿐 아니라 지식 전수가 생존의 길이라고 보고, 북한인들을 국제기구,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에 보내 직접 체험하도록 했습니다. 신종 코로나 방역에 있어서도 북한 당국에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할 수 있고, 지금의 조치와 다른 나라들의 방역법 사이의 틈을 좁힐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시 말씀 드리지만, 북한은 북한 만의 특수한 상황이 있습니다.”
기자) 국제기구, 특히 유엔아동기구(UNICEF)의 평양 내 직원 수는 이전보다 4분의 1로 줄어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지원이 필요한 곳에 도움의 손길이 멈춘 상황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샤픽 전 담당관) “저는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스가 유행했을 때 북한에서 근무했습니다. 당시에도 국제기구 직원은 평양 밖으로의 이동이 제한됐습니다. 지원물자를 전달할 때 모니터링을 실시해야 하는데, 관련 활동을 하지 못하다 보니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당연히 늦춰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제재 여파에 따른 국제기구들의 어려움이 이미 깔려 있지는 않던 때입니다. WHO가 보건과 관련한 행정적 업무를 전담한다면, 유니세프는 북한 내 커뮤니티와 밀접하게 활동하는 기구입니다. 하지만 제재 등으로 인해 자금 모금에 어려움이 있는데다, 이런 일까지 겹쳐 사실 걱정됩니다. 북-중 국경은 막혔고, 구호단체들 마저 북한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은 정확한 규모는 파악할 수 없더라도, 생사를 오가는 주민들이 생길 겁니다.”
기자)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큰 홍수 피해까지 입었는데, 신종 코로나 방역 일환으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될 텐데, 북한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샤픽 전 담당관) “지난 20년 간 북한과 일하면서 느낀 점은, 다른 나라에서 한 번 제공하지 않겠다고 한 자료나 정보가, 북한에서는 설득하면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정보 수집이 어려운 것은 맞습니다만, 기부자 측에서 왜 관련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어제 거부당한 것이 오늘은 가능했다는 겁니다. 북한이 국제 지원을 거부했지만, 여전히 유엔 측이 수해 복구 지원과 관련해 북한 당국과 접촉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상황이 변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언제든 지원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기자) 얼마 전 신종 코로나 의심자로 밝혀진 월북자의 검사 결과가 ‘결론에 이르지 못함’으로 나왔습니다. 어떤 의미로 해석하십니까?
샤픽 전 담당관) “표면적으로 보면 ‘재검사’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죠. 샘플 체취 과정, 최종 결론에 이르는 어떤 부분에서 작은 오류가 생겼을 수 있기 때문인데, 또 어떤 경우에는 WHO 측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지 못했기 때문에 ‘결론에 이르지 못함’으로 표기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북한 당국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문구가 아니라면, 다시 검사가 필요하다는 그런 뜻입니다.”
세계보건기구 WHO와 유니세프 평양사무소에서 근무한 나기 샤픽 전 담당관으로부터 장기화하고 있는 북한의 국경봉쇄 조치에 대한 평가 등 신종 코로나 방역에 대한 이모저모를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안소영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