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이후 계속돼 온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이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 수해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정권 들어 시작된 ‘포전담당제’의 효과적인 시행이 만성적인 식량난 타개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조은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태풍으로 늦어진 가을걷이를 짧은 기간 내 끝낼 것을 거듭 독려하고 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 입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농업 근로자들이 불타는 충성의 마음, 애국의 열정을 총폭발시켜 가을걷이와 낟알털기를 와닥닥 끝내고 나라의 쌀독을 가득 채움으로써 쌀로서 사회주의를 지키고 우리 혁명을 보위해야 할 때입니다.”
올해와 내년의 북한 식량 사정이 근래 들어 가장 나쁠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 당국이 수확 속도를 강조하고 나선 건 수확량을 최대한 늘리려는 고육지책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GS&J 인스티튜트 북한ㆍ동북아연구원 권태진 원장입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빨리 수확을 해야지 수확 후 손실이 줄어들게 되거든요. 북한의 수확 후 손실은 평균 전체 생산량의 15% 정도인데, ‘인력을 동원해서라도 빨리 수확을 해서 손실을 줄이자’라는 얘기입니다.”
북한이 해마다 100만 t 안팎에 달하는 식량부족 사태를 되풀이 하는 데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지적됩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집단영농’이라는 농업구조를 가장 근본적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집단영농 체제 동기부여 안 돼”…“생산성 떨어져”
북한 경제 전문가인 미 조지타운대학 윌리엄 브라운 교수는 20일 VOA에, 북한 농부들이 집단영농 체제에서 동기부여를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In a market system, the key word is productivity. You try to make better use of the hours worked, of the fertilize, of the water, of all the inputs. So their system just eats up huge amounts of inputs with very little output.”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농부들이 시간은 물론 비료와 물 등 모든 농자재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려고 하지만, 북한의 농업체제는 “매우 적은 소출을 내면서, 대규모 농자재를 쏟아 붓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출신인 한국 국민대학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21일 VOA에, 집단영농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이미 실패했다고 말했습니다.
[란코프 교수] “It’s a telling example that under this nationalized, collectivized agriculture system, the Soviet Union was one of the major importers of foodstuff in the world. After the dissolution of the system in the early 1990s, Russia is one of the major exporters of food.”
1930년대 스탈린이 집단농장을 도입해 1990년대 초반 해체하기까지 옛 소련은 주요 식량 수입국이었지만, 뒤를 이은 러시아는 주요 식량 수출국이 됐다는 설명입니다.
심지어 경작지 규모는 옛 소련 시절에 비해 3분의 2로 줄었다고, 란코프 교수는 말했습니다.
란코프 교수는 중국도 1970년대 후반 집단농장을 해체한 뒤 7년만에 식량 생산을 30% 늘렸다며, 북한도 같은 방식으로 추가 투자 없이도 쉽게 곡물생산량을 20%에서 35%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같이 ‘인센티브’ 부족이 북한 농업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2년 도입한 농업개혁인 ‘포전담당 책임제’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가족농에 가까운 제도”...“현 상황에서 성공적 도입은 어려워”
‘포전담당 책임제’는 농민 3명에서 5명이 하나의 ‘포전’을 경작해 생산량의 일정 비율만 나라에 내고 나머지는 해당 단위 농민들끼리 분배하는 제도입니다.
김영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1일 VOA에 ‘포전담당 책임제’가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영훈 연구위원] “포전담당 책임제를 도입할 때 기대했던 생산성 증가 효과는 나타나지를 않는 것 같아요 확실하게. ...농민들에게 동기 유발을 해야 하는데 충분한 동기 유발을 못하기 때문에 포전담당 책임제가 당초 기대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북한ㆍ동북아연구원장도 아직까지 포전담당제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이는 외부적인 요인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앞으로 국가가 제대로 농자재를 공급해 준다고만 한다면 가족농까지 가지 않더라도 포전담당제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성과가 기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포전담당 책임제가 도입되고 나서, 전면적 도입이 2016년 정도 될텐데 그 이후에 계속해서 작황이 나빴지 않습니까? 포전담당 책임제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다른 요인으로 인해서 작황이 나빠진 것이지…”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포전담당 책임제를 “매우 현명한 정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란코프 교수] “However, starting from 2016-2017 something bad began to happen with this system. Most likely, judging by the available anecdotal evidence the problems were caused by the arbitrary confiscation of foodstuff by the military and sometimes bureaucracy.”
다만 “2016년에서 2017년부터 이 제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여러 사례들에 비춰 볼 때 군이 식량을 임의로 징발한 경우가 있었고, 가끔 관리들도 식량을 징발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습니다.
란코프 교수는 “최근 북한에서 유출된 문서들을 보면 북한 당국이 이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지금과 같이 예외적으로 외부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개혁을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탈북민 출신 농축산업 전문가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도 21일 VOA에, 포전담당제가 잘 운용되기 위해서는 여건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조충희 소장] “포전담당 책임제라는 게 집단체제 내에서 보급제의 형식이거든요. 농사 지은 땅에서 국가에 바칠 만큼 바치고, 나머지를 자기가 가져가는 형식인데, 이게 농사가 잘 되면 괜찮은 데 농사가 안 되면 문제가 대두돼요. 왜냐면 10 개를 생산해서 국가는 무조건 3개를 가져가거든요. 그런데 농사가 안 되면 5개 밖에 생산 못하잖아요.”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외교정책연구소 벤자민 실버스타인 연구원은 VOA에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농업개혁을 추진할 의지가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실버스타인 연구원] “The lack of willingness on the part of the government to truly reform agricultural management... Giving incentive to farmers but also creating a system where farms can trade openly on the markets, and in the long run, plan and execute their own purchases of machinery and fertilizers.”
실버스타인 연구원은 농부들에게 제도 개선을 통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외에도 농작물을 시장에서 공개적으로 거래하도록 하고, 장기적으로는 기계와 비료 등 농자재 구입도 자체적으로 계획하고 시행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더 줘야 농업생산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어린이 균형잡힌 영양 섭취해야”... “당국은 자급자족 목표 버려야”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이 계속되면서 주민들, 특히 어린이들의 영양 섭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북 인도주의 활동을 벌여 온 빅터 슈 전 `월드 비전’ 북한담당 국장은 21일 VOA에, 세계식량계획이 계속 북한에 식량 지원을 펼치고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슈 전 국장] “I am really glad that the World Food Program is continuing its assistance. Pending a big change in the political landscape and in the ways that the DPRK undertakes agricultural production, continuing humanitarian food aid is very very necessary.”
슈 전 국장은 북한의 큰 정치적 변화나 농업생산 개혁이 실시되기 전에, 인도주의적 식량 지원을 계속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쌀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콩과 미량영양소 등 어린이 성장에 필수적인 영양소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권태진 원장도 북한 당국이 식량을 “자급자족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미래 세대, 어린이들이 식품을 충분히 골고루 섭취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권태진 원장은 북한 당국이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고 부족한 부분은 수입을 통해 균형을 맞추는 정책을 펼 것을 조언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