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금융 당국은 가상 자산이 포함된 거래에 관한 정보 수집∙보존∙공유를 요구하는 규정 개정안을 발표하며, 북한 등의 가상 자산 악용을 그 배경으로 제시했습니다. 또 해외 거래 중 감시 대상이 되는 최소 금액 기준을 250달러로 대폭 낮췄는데, 이를 통해 북한의 제재 회피를 저지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지다겸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 단속네트워크(FinCEN)’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 23일, 가상 자산을 거래 감시 대상에 포함시키는 규정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자금세탁 등 불법 금융 행위에 대항하기 위한 ‘은행비밀법(BSA)’에 따라 국내외에서 실행된 거래의 정보 수합∙보존∙공유 대상에 ‘전환가능한 가상 화폐(CVC)’ 등 가상 자산이 포함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구체적으로 연방규정집에 ‘돈’에 대한 정의를 가상 자산으로까지 확장할 것을 제안했고, 이에 따라 금융 기관들이 송∙수신인 등 자금 이체∙송금에 관한 정보를 보존하는 것을 요구한 ‘기록 보존 규칙 (Recordkeeping Rule)’ 대상에 가상 자산이 포함되도록 한 겁니다.
미 금융당국은 또 은행과 기타 금융기관이 특정 자금 이체∙송금에 관한 정보를 거래 과정에 참여한 다른 기관들과 공유하도록 요구한 ‘자금이동규칙(Travel Rule)’이 가상 자산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 연준과 FinCEN은 개정안 제안의 배경으로 최근 몇년간 가상 화폐의 대중적 이용이 크게 증가한 가운데, 가상 화폐가 불법 금융 활동에 악용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미 금융당국은 ‘악의적 행위자’들이 가상 화폐를 무기 확산 자금 조달, 제재 회피, 초국가적 자금 세탁 등 불법 행위에 이용해 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북한을 주요 사례로 제시하면서, “라자루스 그룹과 같은 북한의 사이버 행위자들이 전환가능한 가상 화폐를 정권을 위한 많은 양의 수익 창출과 (자금) 세탁 수단으로 훔치고 갈취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벌여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제재 전문가인 미국의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26일 VOA에, 북한 당국 등이 편취한 가상 화폐가 물품 구매 등을 위해 쓰이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달러와 같은 명목 화폐로 변환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번 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미 법 집행 기관이 가상 화폐의 달러 변환을 추적하는 데 필요한 거래 기록을 금융 기관들이 유지하고 보고해야 할 의무를 갖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제이슨 바틀렛 신미국안보센터(CNAS) 연구원은 가상 자산 사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행 법이 많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안은 ‘매우 중요한’ 변화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 금융당국이 가상 자산을 이용한 불법 행위에 책임을 묻기 위해 기존의 보호∙법적 장치 적용 대상에 가상 자산을 포함시킨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바틀렛 연구원] “Expanding the definition of ‘money’ to include these types of transactions seems to be a way to add CVC (Convertible Virtual Currency) under the existing legal umbrella of protection and laws in order to hold people accountable as well if they're doing illicit activity.”
한편 미 연준과 FinCEN은 이번 개정안에서 은행비밀법에 따라 미국 관할권 밖에서 시작하거나 종료되는 거래 중 거래 정보 수집∙보존∙공유 대상의최소 금액을 조정하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1995년 이후 미화 3천 달러 이상의 금액만 기록 보존 규칙과 자금 이동 규칙의 대상이었지만, 앞으로 250달러 이상의 거래에 모두 기록 보존과 정보 공유 의무를 시행하도록 제안한 겁니다.
미 금융당국은 일부 금융 기관들이 3천 달러 이하의 ‘의심스러운’ 거래를 알아 차리지 못하거나 기록을 보관하고 있지 않는 것이 불법 금융 네트워크를 ‘신속하게 조사하고’ 연결 고리를 파악하는 것에 제약을 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관련, 이번 개정안은 북한 당국이 불법 행위를 숨기기 위해 대규모의 절취된 가상화폐를 작은 단위로 쪼개 새로운 계좌로 분산 입금하는 ‘필 체인(peel chain)’방식을 저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스탠튼 변호사는 북한 라자루스 그룹이 2018년 절취한 1억 달러 상당의 가상화폐 돈세탁에 관여한 중국인 2명을 미 사법당국이 기소한 사건에 주목했습니다.
이들이 금융 당국의 거래 정보 보고∙보존 의무에 해당하는 금액을 피하기 위해 작은 금액으로 나눠서 ‘분산 거래 (Structuring)’를 했다는 겁니다.
[녹취: 스탠튼 변호사] “They are trying to make it harder for the North Koreans to launder a cryptocurrency transaction through the dollar system by breaking it up into little bitty pieces, which is something that we know that they have done in the past. Whether it will work, only time will tell.”
스탠튼 변호사는 이에 따라, 미 금융당국은 북한 행위자들이 가상 화폐에서 얻은 자금을 소액으로 분산해 미국 금융∙달러 체계를 거쳐 세탁하는 것을 더 어렵게 하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스탠튼 변호사] “What the Treasury is saying with this rule is that we think that we have enough analysts and we have enough computer algorithms that we can actually receive all of these reports from the banking industry about all of these transactions, then we can identify patterns of suspicious activity, and then focus our investigation on the people who are doing that.”
스탠튼 변호사는 또 재무부가 이번 개정안을 통해 금융 기관에서 관련 거래에 관한 모든 보고를 실제로 수용할 수 있는 충분한 분석가와 컴퓨터 알고리즘을 보유하고 있음을 밝힌다고 파악했습니다.
이어 재무부가 수집된 정보를 기반으로 수상한 금융 거래의 패턴을 적발할 수 있고, 이후 이에 관여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집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점도 알려주는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미 연준과 FinCEN의 개정안은 27일 연방 관보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VOA뉴스 지다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