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안보전문가들은 미한일 전직 고위관리들이 최근 바이든 행정부에 제안한 아시아 핵기획그룹 창설에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정치적 제약 등 현실적인 한계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김동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 군축담당 특별보좌관은 11일 VOA에, 최근 미,한,일, 전직 고위 외교안보 관리들이 ‘아시아 핵기획그룹’(ANPG: Asian Nuclear Planning Group)창설을 제안한 것과 관련해 “방향성에는 공감한다”고 말했습니다.
▶'핵확산 방지와 미국의 동맹국 안전보장' 제언보고서 바로가기
하지만 아직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며, “특히 한국의 경우, 중국을 의식하는 정치적 제약성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고 평가했습니다.
아인혼 전 특보 “한국, 중국 보복 의식…현실적 어려움 많아”
[녹취 : 아인혼 전 특보] “The idea of a multilateral Asian Nuclear Planning Group, I think, that may be difficult politically. I think in particular, especially the Moon Jae-in government would be reluctant to have such a multilateral nuclear planning group. I think President Moon and his advisors would say this would be too provocative to China”
핵기획그룹(NPG)은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국방장관들이 참여하는 조율 기구로, 핵무기 운용에 대한 의사 결정과 핵전략을 논의할 목적으로 1966년 설립됐습니다.
또 유사시 미국과 핵무기 공유협정을 맺은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터키 5개 나라에 배치된 미국 전술핵무기 사용과 관련한 협의도 관장합니다.
아인혼 전 특보는 한국에서 순수 방어용 목적이었던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을 놓고 당시 야당이었던 현 집권당의 강한 반대 기류가 있었다며, 그와 같은 정치적 제약이 존재하는 한 다자적 차원의 핵기획그룹 창설은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한국과 일본에 핵무기 공유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미 국방대학 보고서 내용이 공개되자, 강경화 당시 한국 외교장관은 “나토식 핵공유는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한 바 있습니다.
“양자협의 개선에 초점 둬야…한국의 발언권 확대 필요”
“한반도 전술핵 배치 배제하는 핵억제력 개선책 필요”
아인혼 전 특보는 다자구도 보다는 오히려 미한 양자적 측면에서 핵 억제력의 신뢰성을 개선하는 방안이 현 시점에서는 더 현실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시아 동맹국들 사이에서 이 같은 논의가 표면화된 이유도 확장핵억제력 공약 이행에 미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인혼 전 특보는 유사시 핵 투사 결정에서 한국의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신뢰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핵기획그룹과 연계한 핵공유제도를 한국의 야당이 강하게 제기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분명 생각해 볼 여지는 있지만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들여가는 방식에는 부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 아인혼 전 특보] “It's an option that should be considered that kind of nuclear sharing but there are other options that should also be considered. I would look at options that didn't involve the stationing of US tactical nuclear weapons in Korea...I would look toward much stronger consultative arrangements that give South Korea a more prominent role in planning...”
괌에 전술핵을 배치하고 유사시를 대비해 미국 또는 한국의 조종사들이 평시에 투사 훈련을 실시하는 나토와 차별화된 핵공유 방식이나 미국이 개발중인 차세대 핵탑재 순항 미사일 등 한반도 지상에 직접 배치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억제력을 개선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 “동맹 지지가 선결…미국이 먼저 나서지 않을 것”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미국 정부가 아시아 핵기획그룹의 창설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그러나 먼저 동맹들이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 세이모어 전 조정관] “I don't think the US government would put forward this proposal unless they were confident it would be accepted. And so obviously, there would have to be some quiet diplomacy between Washington and its allies in East Asia to determine whether or not they would agree. Otherwise, the US is not going to put forward a proposal that would be rejected by its allies.”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논의 과정에서 동아시아 동맹들과의 조용한 외교도 동반해야 한다며, 미국 정부가 동맹이 반대할 수 있는 의제를 먼저 나서서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또 한국 정부가 중국의 반발을 의식할 것이라는 아인혼 전 특보의 견해에 공감한다며, 북한 외에도 훨씬 더 위협적인 핵전력을 개발하고 있는 중국 문제 역시 향후 창설될 수 있는 아시아 핵기획그룹의 의제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도 일본의 경우, 핵 피폭 경험 때문에 강한 국민적 반대 여론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브루스 베넷 “일본 핵 피폭 따른 보복결정에 한국 배제될 수도”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진화하는 위협 때문에 미한, 미일간 상호방위협정에 의거한 양자적 확장핵억제력 공약에도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일본, 그리고 유사시 유엔군 한반도 증원병력으로 참전할 수 있는 호주를 포함시키는 핵기획그룹의 창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베넷 선임연구원] “Let's say North Korea fires a nuclear weapon in Tokyo and the Japanese government come to the US and say, 'Okay, you've got a nuclear umbrella. We want you to hit Pyongyang'. In response. Do you think President Moon is going to say, ‘No big deal. Go ahead. No problem. I agree’?...”
베넷 선임연구원은 이미 북한의 미사일 사거리는 핵을 탑재해 일본 열도를 타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그런 상황이 현실화 될 경우, 일본은 미국에 핵보복을 요청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양자적 협정 체계에 따라 한국의 의사가 배제될 수도 있다며 한반도 유사시 당사국인 만큼 각국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상설 기구는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베넷 선임연구원은 향후 아시아 핵기획그룹이 창설되더라도 미국의 핵 투사 최종결정권한은 미국 대통령에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뉴스 김동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