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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EA 전 사무차장 "제재, 북 핵 개발 늦춰...핵시설 분석 신중해야"


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
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

제재는 북한 핵 프로그램을 종식시키지 못했지만 진전 속도를 늦추는 데 기여했다고 북 핵 사찰을 주도했던 국제 핵 전문가가 평가했습니다. 제재는 북한 자금줄을 조여 핵기술과 부품 조달에 지장을 줬다며, 제재를 해제해선 안 되지만 북한의 핵 개발을 뒤로 돌리는 유인책도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을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대북제재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 노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하이노넨) 북한의 핵 프로그램의 진전을 늦췄습니다. 핵 프로그램에 직접 영향을 줬다기보다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재는 북한의 수출에 타격을 입혀 해외 자금줄을 차단함으로써 핵 프로그램에 명백히 영향을 줬습니다. 핵 프로그램은 미사일 프로그램과 식량 분배와 더불어 북한이 자금을 투입해야 할 기본적인 분야 중 하나입니다. 사회기반시설과 주민용으로 배분해야 할 몫이 있기 때문에, (제재로 인해) 핵 프로그램에 전용되는 금액도 자연히 줄어듭니다. 자금 지원이 줄어들면 핵 개발 속도도 늦춰지고요.

기자) 북한으로선 제재로 인해 핵 개발에 필요한 물자를 제대로 들여오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하지 않습니까?

하이노넨) 제재가 북한의 수입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에 따라 북한이 들여올 수 있는 품목이 제한되면서 자체 조달할 수 없는 기술과 최신 장비, 강철과 탄소 섬유 등 원료 수입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한 국가가 핵무기를 만들고자 하면 결국은 해냅니다. (제재로 인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면서 늦춰지는 것뿐이죠. 주민들의 고통은 더 커지겠지만, 정치적 의지가 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기자) 제재가 북한의 핵 개발 속도를 늦췄지만 막지는 못한다는 뜻이죠?

하이노넨) 그렇습니다. 북한은 핵 개발을 결심했고 1950년대부터 인내심을 발휘하며 핵 억지력을 구축해 왔습니다. 지난달 당대회 개최 이후 여러 위원회를 통해 앞으로도 어려움을 무릅쓰고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고요. 북한은 소형화를 비롯한 핵기술 진전을 원하고 있고, 제재 때문에 속도가 늦어지긴 했지만 멈추진 않을 겁니다.

기자) 그 말씀은 곧 제재가 없었다면 북한이 훨씬 빨리 핵 무력을 완성했거나 진전시켰을 것이라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하이노넨) 물론 그렇습니다. 다른 유인책이 없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1994년 제네바합의 때나 2005년 6자회담 합의(9.19 공동성명) 때나 북한을 다른 선택으로 유도할 만한 제안은 내놓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제재는 올바로 연주해야 하는 악기와 같습니다. 지휘자가 제대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이죠. 제재를 이행하고 계속 진단해 가야 하지만, 동시에 북한이 방향을 바꿔 다른 길을 걷도록 유인책도 제공해야 합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제재 이행을 잘 조정하고 강화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해 심사숙고하기 바랍니다.

지난 2017년 9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현지지도했다며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 뒤에 세워둔 안내판에 북한의 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4형'의 '핵탄두(수소탄)'라고 적혀있다.
지난 2017년 9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현지지도했다며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 뒤에 세워둔 안내판에 북한의 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4형'의 '핵탄두(수소탄)'라고 적혀있다.

기자) 대북제재가 비핵화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제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타당한 주장이라고 보십니까?

하이노넨)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재는 조정이 필요한 것이지, 만약 없애 버린다면 북한은 자유를 줘서 매우 고맙다고 할 겁니다. 핵 개발 절차를 계속 밟을 것이고요. 핵 프로젝트를 늦출 다른 이유가 없다면 말이죠. 제재 완화가 유인책이 돼선 안 됩니다. 만약 북한이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고 몇몇 핵 관련 활동을 폐기한다면 제재를 일부 완화하고 평화 관련 합의를 제공하거나 경제 관계를 맺는 등의 대가를 제공할 순 있을 겁니다.

기자) 제재가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대량살상무기 대량생산은 막았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하이노넨) 그렇긴 합니다만, 왜 핵무기를 필요로 하는지 북한의 시각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천 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을 물리치기 위해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의 핵무기 보유량이 300개 수준이라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북한으로선 안보적 관점에서 소규모 억제력이면 충분합니다. 경제 형편상 가능한 수준의 억제력이기도 하고요. 미국을 의식해 군사력 증강에 지나치게 투자하다 위기를 겪은 옛 소련의 실책에서 교훈을 얻었을 겁니다. 따라서 북한은 소형화와 같은 핵무기 개선에 더 관심을 둡니다. 핵무기 숫자를 늘리려 하겠지만 우라늄 농축 시설을 10개나 만드는 일 등은 하지 않을 겁니다. 현재 1년에 핵무기 5개 정도를 만들 만큼의 핵물질을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1980년대 초부터 핵 개발에 나선 인도와 파키스탄도 100개 수준인데, 북한이 핵무기 대량생산을 서두르진 않을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모든 재원을 핵무기에 투입하는 대신 신중하게 핵무기 보유량을 조정하고 있다고 봅니다.

기자) 김정은이 과연 억제력 확보 수준에서 멈출 것이냐에 대해선 이견도 있습니다. 북한이 중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역내 패권국이 되려는 야망에서 200~300개의 핵무기 보유를 목표로 한다는 지적에는 그럼 동의하지 않으시겠네요.

하이노넨) 북한의 인구와 현 상황을 고려할 때 비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198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6~7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했지만,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 나라를 1000개의 핵무기로 파괴할 수 있다 해도, 상대 국가 역시 막대한 피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북한도 엄청난 양의 핵무기를 보유해 (중국과) 경쟁하려 하진 않을 겁니다. 중국은 자원과 인구 면에서 북한과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북한이 만약 그런 길을 간다면 냉전시대 소련의 실패를 되풀이할 겁니다. 중국에 대한 북한 경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핵탄두 보유량과 관련해 섣불리 중국에 도전하는 것은 북한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기자) 김정은이 열악한 경제 환경 속에서 억제력 수준을 넘어서는 핵무기 대량생산 결정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시는 거군요.

하이노넨) 김정은이 최근 당대회에서도 경제 이야기를 했는데, 엄청난 규모의 핵무기만으로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우려가 깔렸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협상하면서 “동결”이라는 말을 꺼내선 안 됩니다. 대신 실제로 핵물질과 핵무기 생산을 중단하도록 해야 합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현 수준에서 멈추고, 경제 관련 합의를 하면서 북한의 핵 시설 등을 폐기하는 수순을 밟아야 합니다. 이런 절차를 “동결”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하며, 핵물질과 핵무기 생산을 멈추고 개발 속도를 늦춘 뒤 안보에 대한 신뢰가 쌓였을 때 프로그램을 뒤로 돌려야 합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런 방안을 고려해야 합니다.

기자) 북한이 실제로 핵 프로그램 개발 속도를 늦추거나 폐기했는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반론에 대해선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하이노넨) 북한은 우리가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아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산 중단과 단계적 폐기 절차는 우선 우리가 가진 정보와 북한이 신고하는 내용을 비교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일종의 ‘신뢰도 평가’를 통해 북한이 비핵화에 진지한지 여부를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은 제네바합의, 전략적 인내, 최대 압박, 이란 핵 합의와도 다른 접근법입니다. 우리는 과거 합의와 매우 다른 방안을 택해야 합니다.

기자) 최근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공개한 영변 핵시설단지 위성사진들이 주목받았습니다. 방사화학실험실에 증기를 공급하는 석탄화력 증기 발전소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플루토늄 추출 준비가 아니냐, 그런 분석인데요. 동의하시는지요?

하이노넨) 연기가 분출되는 모습으로 핵연료 재처리 가능성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도 연기가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해당 위성 사진을 아주 주의 깊게 살펴봤습니다. 5MW 원자로와 강 건너 재처리 시설(방사화학실험실) 등 여러 건물과 주변 동향을 점검했습니다만, 재처리 작업으로 볼 만한 특별한 동향은 없었습니다. 핵폐기물을 다른 탱크로 옮겨 용량을 줄이고자 할 때도 그렇고 다른 많은 이유로 인해 연기가 날 수 있습니다. 또한, 북한이 (일부러) 연기를 배출해 외부에 경고 메시지를 전하려는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재처리 공장은 자동차 시동을 거는 것처럼 즉각 가동되는 게 아니라 재처리 결정 뒤 실제 작업이 이뤄지기까지 수개월이 걸립니다. 앞으로 1~2일 정도 지켜보면, 북한이 실제로 재처리 준비에 나섰는지, 그저 경고 신호를 보내려 한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이유 때문이었는지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지금까지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으로부터 제재가 북한 핵 프로그램에 미친 영향과 현지 핵 개발 동향에 대한 진단을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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