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해양오염을 이유로 한국 국적 선박을 나포한 데 대해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에 급파하는 등 긴박한 대응에 나섰습니다. 또 억류 선박이 조기에 풀려날 수 있도록 이란에 교섭대표단을 파견키로 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군 당국은 한국 국적 유조선인 ‘한국 케미호’가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된 데 대해 청해부대 4천400t급 최영함을 호르무즈해협 인근에 긴급 출동시켰습니다.
부승찬 한국 국방부 대변인의 5일 브리핑 발언 내용입니다.
[녹취: 부승찬 대변인] “청해부대는 우리 시간으로 오늘 새벽 호르무즈해협 인근에 도착했습니다.
청해부대는 아덴만 일대 해역 등에서 해적 등에 의해 나포된 한국 선박 구출작전 등을 수행해왔습니다.
청해부대는 호르무즈해협 도착 직후 나포 상황을 주시하는 한편 이 해협을 왕래하는 다른 한국 국적 선박의 항해 안전 등을 위한 역할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와 함께 억류된 선박과 선원들이 조기에 풀려날 수 있도록 현지 교섭을 위한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가장 이른 시일 내에 담당 지역 국장을 실무반장으로 하는 실무대표단을 이란 현지에 급파해 양자 교섭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최영삼 대변인] “또한 외교당국 접촉을 통한 사실관계 확인 및 조속한 사태 해결과 우리 국민 보호 요청 등 동 선박의 억류 해제와 우리 국민 전원의 무사 귀환을 위한 다각도의 대응 노력을 경주해 오고 있습니다.”
한국 외교부는 이날 외교부 청사로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를 불러 유감을 표명하고 조속한 억류 해제를 강력 요구했습니다.
샤베스타리 대사는 이번 억류가 단순한 기술적 사안이라는 이란 정부 입장을 거듭 밝혔고, 이란 외교당국도 최대한 조기 해결을 위해 함께 협력하고 노력해 나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최 대변인은 설명했습니다.
앞서 이란 반관영 `파르스 통신’은 4일 “이란 혁명수비대가 걸프 해역에서 한국 선박을 나포해 항구로 이동시켰다”며 “이 유조선에는 한국 국기가 달려 있었고 기름 오염과 환경 위험을 이유로 나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해당 선박엔 한국인 선원 5명 등 모두 20명이 승선해 있었습니다.
이란 측은 한국 선박의 환경 규제 위반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선박 억류의 배경엔 이란의 한국에 대한 석유 수출대금을 둘러싼 누적된 불만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약 70억 달러 규모로 알려진 석유 수출 대금은 이란중앙은행 명의로 한국 내 은행에 개설된 원화 계좌에 예치돼 있습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우회하면서도 양국의 물품 거래를 위해 미국 정부의 용인 하에 거래가 이뤄지던 이 계좌는 2018년 미국이 핵 합의를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해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거래가 중단됐습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위반을 우려한 한국 내 은행은 이 계좌를 통한 양국 기업의 상품거래 결제를 거부하면서 이 자금이 사실상 동결됐습니다.
미국의 강력한 제재로 외화난이 심각해진 이란 정부는 이 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해 왔고 특히 지난해 초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의약품과 방역 물품을 수입하기 위해 외화 확보가 더욱 시급해졌습니다.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이란 정부는 한국 내 은행에 동결돼 있는 자금을 신종 코로나 백신 대금으로 세계보건기구(WHO) 주도의 백신 공동 구매와 배분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측에 입금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미국과 협의를 통해 백신 대금에 대해 제재 예외를 받았지만, 이란 측은 원화로 예치된 자금을 코백스에 송금하려면 먼저 미국 은행에서 달러화로 환전해야 하는데 이때 자금이 다시 동결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외교부는 선박 나포 사건이 터지기 전에 이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계획됐던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의 이란 방문이 오는 10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이뤄진다고 밝혔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입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코로나19로 인해서 상당히 상황이 어렵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란도 과거와 같이 외교적 수단만으로 이 문제를 풀려고 할 경우 한국 정부가 계속 뒤로 미룰 것이다 라는 인식을 했을 수 있어요. 그 때는 보다 한국 정부의 선택을 압박하기 위해서 이런 유조선을
억류한 그런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거죠.”
이란의 행동이 한국 보다는 미국의 조 바이든 차기 행정부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장지향 중동연구센터장은 이란 혁명수비대는 대미 강경파 세력으로, 그동안 호르무즈해협에서의 군사행동을 주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장 센터장은 이란 핵 합의 복원을 거론해 온 바이든 새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장지향 센터장] “어제도 우라늄 농축을 20%까지 올렸다고 자기들이 먼저 발표를 했고 특히 혁명수비대 주도로 강경 모드로 나가는 여러 일련의 행보 중 하나가 아닐까 즉, 이란과 미국이 핵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경우 우리가 주도권을 갖겠다는 상징성을 보이는 행보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신범철 센터장도 이란 강경파가 한국 선박을 나포해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정한 상황을 부각시킴으로써 미국 측에 조속한 핵 합의 복귀를 압박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