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미-한 연합훈련 사전연습이 시작되는 날에 맞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에 따른 담화를 내고 미국과 한국을 함께 맹비난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 긴장이 고조돼선 안 된다며 북한의 향후 움직임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한 군사당국이 하반기 연합훈련 사전연습을 시작한 10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비난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대내 관영 ‘조선중앙TV’ 등에 따르면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미국과 한국 군이 끝끝내 정세 불안정을 더욱 촉진시키는 합동군사연습을 개시했다”며 “한국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부부장은 “나는 위임에 따라 이 글을 발표한다”고 밝혀 담화 내용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뜻임을 시사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합동군사연습은 북한을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가장 집중적인 표현"이라며 "연습의 규모가 어떠하든,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든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골자로 하는 핵전쟁 예비연습이라는데 침략적 성격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자멸적 행동”이라며 “전쟁연습이 미국과 한국을 엄중한 안보 위협에 직면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미국에 대해선 “현 미 행정부의 ‘외교적 관여’와 ‘전제 조건 없는 대화’란 침략적 본심을 가리기 위한 위선에 불과하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미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혔다”며 “국가방위력과 선제타격 능력 강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 부부장은 이와 함께 지난 2018년 미-북 정상간 대화 이후 언급하지 않았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다시 꺼냈습니다.
김 부부장은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자면 미국이 한국에 전개한 침략 무력과 전쟁 장비들부터 철거해야 한다”며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한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키는 화근이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김 부부장 담화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연합훈련에 대한 북한 측의 기존 입장을 거듭 밝힌 것으로 본다”면서 “향후 북한의 태도 등을 면밀하게 주시하면서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중요한 건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 긴장이 고조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최근 양 정상 간 친서 교환 과정에서 확인된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 발전을 향한 의지가 존중되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지난달 27일 남북 통신선 복원 이후 김 부부장이 연이어 연합훈련을 비난하는 담화를 내놓은 것은 사전에 짜놓은 시나리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자신들이 차기 행보를 위한 명분으로 이번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활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명분이라는 것은 자신들이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이제 한국이나 특히 미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자위력이라는 명분 하에서 군사력을 보여주겠다라는 명분을 쌓기 위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뜻임을 드러낸 담화를 통해서 미국을 정면으로 비난한 대목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협상 교착 장기화에 불만이 커진 북한이 대미 압박으로 태세를 전환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감을 환기시키려는 행보라는 관측입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담화가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제안한 ‘조건없는 대화’에 대한 거부 의사를 명백하게 하면서 대화 재개를 바라는 한국 정부에겐 배신감을 드러내며 대미 설득을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지금 북한의 행보는 결국 미국이 요구하는 조건없는 대화 재개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이런 기조가 단기간에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 미국을 설득하라는 일종의 임무 부여를 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이고.”
전문가들은 담화가 한동안 북한의 요구사항에서 빠져있던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다시 언급한 데 대해 북한이 2018년 미-북 정상회담 이전의 입장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이 ‘조건없는 대화’를 제안한 미국에 거꾸로 대화의 문턱을 높임으로써 그동안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되던 한반도의 긴장 고조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주한미군을 건드린 것은 앞으로 미국과의 우여곡절 끝에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주한미군 철수를 조건으로 내세우겠다는 것을 공식화했다고 볼 수 있죠. 이전에는 연합훈련 중단, 전략자산 전개 중단 정도를 얘기했는데 이것은 북한 입장에서 얘기하면 그 정도의 요구도 미국이 받지 않은 것 아니냐, 그렇다면 화근인 주한미군 철수를 건드리겠다고 얘기를 한 거죠.”
신범철 센터장은 이번 담화는 김 위원장의 위임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이전에 나왔던 김 부부장 담화와 무게가 다르다며 연합훈련 기간 중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나아가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SLBM 시험발사 같은 군사적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북한이 한국 정부에 배신감을 강조한 것은 연합훈련 중단을 대화의 기본조건으로 보는 시각 때문이라며, 통신선 복원으로 긍정적인 기류가 흘렀던 남북관계가 다시 갈등 국면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신뢰의 첫 조치로 했던 게 모든 통신연락선 복구였는데 그 신뢰가 무너졌고 배신감을 느꼈다고 하면 결국 그 첫 조치를 다시 원상복구하는 방식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그리고 조평통 폐지 조치, 국제 금강산 관광지구 공식적 철거 조치 이런 것들이 구체적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보여집니다.”
한편 미-한 두 나라 군은 10일 한반도의 전시 상황을 가정한 본훈련의 사전연습 격인 위기관리 참모훈련(CMST)에 들어갔습니다.
본훈련인 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은 오는 16일부터 26일까지로 예정돼 있습니다.
이번 훈련은 한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4차 대유행 등을 고려해 전반기 훈련 때보다 참여 인원을 대폭 줄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