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안팎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대북전단살포 금지법’이 공포돼 석 달 후 시행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한국 내 27개 민간단체들은 이 법이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반인도적인 북한체제를 이롭게 한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는 29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전단 살포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일명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공포했습니다. 관보 게재를 통해 이뤄진 공포는 확정된 법률이나 조약을 국민에게 알리는 법적 절차입니다.
이 법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나 시각매개물 게시, 전단 등 살포 행위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미화로 약 3만달러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앞서 한국 정부는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개정안을 의결했고 이후 대통령 재가를 거쳤습니다. 공포된 법은 3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어 이 법은 내년 3월30일부터 효력이 발생하게 됩니다.
한국 내 북한인권단체와 탈북민 단체, 변호사 단체 등 27개 시민단체들은 이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이들 단체들은 29일 서울에 있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효력정지가처분 신청과 헌법소원을 제기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정부가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구실로 내세우고 있으나 인과관계가 없으며, 가족으로부터 최소한의 쌀, 의약품 등 지원도 못 하게 하는 반인도적인 김정은 폭압체제 수호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의 기자회견 발언 내용입니다.
[녹취: 서재평 사무국장] “접경지역에서 삐라를 뿌리는 것이 북한에 대한 도발이라고 생각한다면 국군이 군사훈련을 하는 것도 만약에 북한이 도발로 간주해서 협박을 하면 군사훈련도 하지 말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단체들은 헌법소원 청구서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와 행복추구권, 죄형법정주의, 포괄적 위임입법 금지 등을 침해·위배한다고 청구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헌법소원 청구에는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 박정오 큰샘 대표,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사단법인 물망초,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등 27개 단체와 대표가 참여했습니다.
대북 전단 살포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도 이날 오후 전자소송 시스템을 이용해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따로 냈다고 법률대리인인 이헌 변호사가 밝혔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한국의 제1야당인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은 이 법의 이른바 ‘독소조항’을 삭제한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지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을 살포하거나 대북 확성기 방송 등 남북합의서를 위반하는 행위를 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처벌 규정을 삭제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시민단체들과 야당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표현의 자유가 헌법상 권리이지만 비무장지대(DMZ) 지역 주민들의 생명이나 안전과 같은 생명권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통일부 관계자는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같은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제3국에서 전단 등을 살포하는 행위는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명시한 해석지침을 법 시행 전에 만들겠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이 법의 24조 3항은 금지행위 가운데 하나로 ‘전단 등 살포’를 규정하면서 ‘전단 등’에는 광고선전문과 인쇄물 보조기억장치, 금전을 포함시켰고 ‘살포’의 개념엔 ‘제3국을 거치는 전단 등의 이동’을 포함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제3국에서 북한으로의 물품 전달까지 규제한다는 해석을 낳으면서 이 법을 둘러싼 논란을 증폭시켰습니다.
논란은 국제사회로 번져 미국과 영국 의회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라 나왔고, 미 하원 일각에선 청문회를 추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 국무부 대변인도 앞서 지난 21일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세계 정책으로서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보호를 지지한다”며 북한으로의 자유로운 정보 유입이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밝혀 우회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법 개정 이전에 여론수렴 작업이 미흡했다면서 헌법소원을 계기로 논란이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미국에선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한 청문회 등을 통한 견제가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고요, 국내적으론 여론이 반반으로 갈리면서 남남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한국 정부는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소통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해석지침 등을 통해 이 법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는 방침입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