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3월 자국민 문철명 씨의 미국 인도에 반발해 말레이시아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했습니다. 말레이시아가 당시 문 씨를 인도한 배경에는 현지 정치인들이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북한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레이시아 전문가가 분석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지난 3월 북한인 문철명 씨를 미국에 인도한 배경에는 말레이 정치인들이 북한에 대한 신뢰를 잃은 사실도 있다고 후 치우 핑 말레이시아국립대 정치사회학과 교수가 밝혔습니다.
후 교수는 1일 미국 동서센터(East West Center)와 전미북한위원회(NCNK)가 공동 주최한 ‘북한-말레이시아 관계’에 대한 웨비나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녹취: 후 교수] “I believe after the Kim Jong Nam assassination, it really affected many of the contemporary policy makers and government officials in Malaysia that N Korea is no longer reliable and that they would rather comply with the international law.”
2017년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살해된 사건이 “말레이시아의 정책입안가들과 정부 당국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북한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으며 차라리 국제법을 준수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고 후 교수는 말했습니다.
“말레이 정치인들 북한 불신”... “잃을 것이 더 많은 관계”
또 미국 정부가 문 씨의 인도를 요청하면서 제시한 증거가 그의 유죄를 입증했기에 인도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녹취: 후 교수] “I think Malaysia doesn’t mind anymore after that that N Korea decided to sever the ties with Malaysia. Because too much to lose compared to what is to be gained to maintaining this rather unique diplomatic ties in the current political climate.”
후 교수는 “말레이시아는 북한의 단교 선언에 개의치 않는 편”이라며 “현재의 정치 상황에서 이 독특한 (북한-말레이시아) 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 얻을 것 보다 잃을 것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최대 압박’ 정책을 펼치며 대북 제재 이행을 요구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압박감을 느꼈지만 “제재 이행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에 앞으로도 계속 제재를 준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2019년 5월 미 연방수사국(FBI)의 인도 요청을 받아 문철명 씨를 쿠알라룸푸르 외곽 아파트에서 체포했습니다.
이어 1년 9개월 뒤인 지난 3월 말레이시아 대법원은 문 씨를 미국으로 인도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말레이시아에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했고, 말레이시아 정부도 쿠알라룸프루 주재 북한대사관 직원들에게 떠날 것을 명령했습니다.
2017년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악화된 외교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것입니다.
“말레이시아 총리 교체도 양국 관계에 영향”
후 교수는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에도 말레이시아가 한 때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할 움직임을 보였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과거 22년간 장기집권하면서 김일성, 김정일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가 15년만인 2018년 다시 총리에 오른 뒤 북한과 관계정상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는 것입니다.
[녹취: 후 교수] “So despite Mahathir’s best intentions during his second premiership to revive the relations with N Korea, including reopening of Malaysian embassy in Pyongyang in 2019. However, it was faced with another untimely incident of global pandemic outbreak so the plan was delayed and suddenly a government hijack happened of which the current new prime minister Muhyiddin doesn’t have any personal ties with the N Korean regime.”
마하티르 총리는 2019년에 평양의 말레이시아대사관을 다시 열려고 했지만 곧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터져 계획이 연기됐고, 이어 2020년 무히딘 야신 총리로 정권이 교체됐다는 것입니다.
무히딘 총리는 북한과 개인적 관계가 없어 대북정책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며, 특히 마하티르 총리의 모든 정책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후 교수는 말했습니다. 따라서 말레이시아-북한 관계가 더욱 경색됐다는 것입니다.
후 교수는 현재 말레이시아 정부에는 마하티르 총리 당시의 대북 유대관계를 경험한 관료들이 남아있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북한도 말레이시아와 단교 준비”
한편 북한도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말레이시아와 단교를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미한정책국장은 1일 VOA에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북한과 말레이시아 관계는 꽤 오랫동안 경색됐기 때문에 북한도 정식 단교로 인한 부정적 영향에 대비해 준비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나이더 국장] “The North Korean Malaysia relationship has been troubled for some time, ever since the assassination of Kim Jong Nam. So I believe that the N Koreans have had ample time to prepare for the possibility of any negative impact that would come from formally ending the relationship.”
스나이더 국장은 북한이 말레이시아를 기반으로 했던 많은 활동들도 다른 곳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며, 말레이시아와의 단교로 큰 손해를 보지 않았을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한편 동서센터의 로스 토콜라 연구원은 1일 VOA에 “북한이 말레이시아와 외교관계를 단절하기로 결정한 것은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키는 조치”라고 말했습니다.
[토콜라 연구원] “North Korea’s decision further alienates a country that has clearly made sustained efforts over the decades to have good relations with N Korea based on mutual respect and good neighborly relations. Other countries might well take this as yet another cautionary tale.”
토콜라 연구원은 “말레이시아는 상호 존중과 ‘좋은 이웃나라’ 정신으로 수 십 년간 북한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북한의 단교 조치는 다른 나라들에도 경고음을 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1973년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 우호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스포츠 교류와 무역 외에 인도주의적 지원도 제공해왔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