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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자국민 미국 송환' 말레이시아와 단교...외교적 고립 심화


1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북한대사관.
1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북한대사관.

북한과 말레이시아의 외교관계가 사실상 단절되면서 거의 반 세기에 걸친 양국 관계가 파경을 맞게 됐습니다. 북한의 외교적 고립이 더욱 심화될 전망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정부가 자국민 문철명을 불법 자금세탁 혐의 등으로 미국에 인도한 말레이시아에 대해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이에 말레이시아도 대응 조치를 취하면서 두 나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19일 북한의 외교관계 단절 선언에 따라 국내 북한 외교관과 가족의 철수 명령을 내렸고, 평양의 말레이시아대사관 철수도 공식 발표했습니다.

북한과 말레이시아는 1973년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 2017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우호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북한 고려항공이 한 때 정기적으로 쿠알라룸푸르에 취항했고, 북한 근로자 수 백 명이 말레이시아에 파견돼 광산업과 정보통신 IT 업계에서 일했습니다.

북한은 또 쿠알라룸푸르에 관광사무소를 운영했으며, 북한 고위 관리들의 말레이시아 방문, 말레이시아 총리의 평양 방문이 이어지면서 인적 교류도 비교적 활발했습니다.

특히 2016년 말 기준 쿠알라룸푸르의 북한대사관 외교관 수가 한국대사관보다 많은 거의 30명에 달해 말레이시아가 북한의 동남아시아 공작과 외화벌이, 불법 활동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는 지적까지 나왔었습니다.

실제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은 2017년 보고서에서 북한 정찰총국 산하 기업이 2016년 말레이시아에 세운 위장업체가 군용 통신장비들을 아프리카로 불법 운송하려다 적발됐다며 말레이시아를 북한 정권의 불법 활동 거점 중 하나로 지목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과 말레이시아 간 비자면제협정과 항공기 직항로 등으로 말레이시아가 북한의 불법 활동을 위한 최적의 요건을 제공한다고 지적했었습니다.

데니스 이그네이셔스 전 말레이시아 외무부 미주담당 차관은 과거 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 관계가 우호적이었지만 양국 교역이 미미한 상황 속에 말레이시아는 얻은 게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한만 말레이시아를 현금 획득과 유엔 제재 회피의 거점으로 삼아 이익을 챙겼다는 겁니다.

하지만 두 나라 관계는 2017년 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화학무기로 암살당한 뒤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북한 요원들의 사주를 받은 두 동남아 여성이 김정남을 VX 신경작용제로 암살한 이 사건에 대해 북한 정권이 혐의를 부인하면서 양국은 상대국 대사를 맞추방했습니다.

게다가 북한 정권이 국내 체류 중인 말레이시아인들을 외교 인질로 삼자 말레이시아는 결국 이들의 송환 조건으로 김정남의 시신과 용의자 출국을 허용하면서 이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습니다.

이후 두 나라 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멀어졌지만 외교관계는 단절하지 않은 채 대사 없이 소수의 외교관이 남아 계속 업무를 수행해 왔습니다.

말레이시아는 2018년 취임한 마하티르 모하맛 새 총리가 북한과 국교정상화 재개를 공언한 뒤 이듬해 말 두 나라 고위 관리들이 관계정상화 방안을 논의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와 말레이시아 총리가 전격 교체되면서 관계는 진전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북한과 말레이시아가 거의 반 세기 가까이 유지하던 외교관계를 사실상 단절하면서 북한의 외교적 고립은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북한 정권이 2017년에 6차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자 대북 제재를 강화했습니다.

특히 스페인과 쿠웨이트, 멕시코, 페루,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가 자국 내 북한대사를 추방했고, 독일 등은 자국 주재 북한 외교관들의 규모를 축소하는 제재를 가했습니다.

멕시코는 이후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과 관계를 복원했지만, 다른 나라들은 여전히 북한과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앞서 VOA 취재 결과 2019년 기준 이탈리아는 6명이던 북한 외교관이 4명으로, 독일은 14명에서 7명으로, 불가리아는 11명에서 9명, 유엔 사무국은 북한 국적자 1명 만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유엔 주재 각국 외교관 현황을 담은 블루북(UN Blue Book)에 따르면 유엔 기구에 근무하는 북한 외교관 수도 2019년 27명에서 올해는 1월 기준 24명으로 3명이 줄었습니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에 따른 북한 당국의 국경 봉쇄와 과도한 방역 조치로 평양의 20여 개 외국 대사관 중 많은 나라 외교관들과 가족, 국제기구 요원들이 본국으로 철수하면서 북한의 고립은 더욱 심화되는 상황입니다.

한국 외교부가 지난해 10월 공개한 북한의 ‘재외공관 설치현황’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중동을 포함해 아시아 20개국, 중남미 5개국, 유럽 13개국, 아프리카 8개국 등 총 46개국에 대사관을 두고 있습니다

북한은 또 중국 선양과 홍콩,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총영사관 3곳, 뉴욕과 제네바의 유엔대표부, 프랑스의 유네스코 등 대표부 3곳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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