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표적인 심리전 수단인 확성기를 비무장지대, DMZ 내에 재설치하는 작업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한은 또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전단 1천200만장을 조만간 한국을 향해 뿌리겠다고 거듭 예고했고, 한국 정부는 다양한 도발 가능성에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이 대표적인 대남 심리전 수단인 확성기 방송 시설을 21일 오후부터 비무장지대, DMZ 일대에 재설치하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군 소식통이 22일 밝혔습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확성기 재설치 작업은 DMZ 북한 측 지역 일대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남북한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합의에 따라 그해 5월 초 각각 최전방 지역에 있는 40여개의 확성기 시설을 모두 철거한 바 있습니다.
4·27 판문점 선언은 2018년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나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철거 2년여 만에 재설치 작업이 이뤄지면서 DMZ 일대엔 다시 확성기 방송을 통한 비방과 선전이 집중될 전망입니다.
북한의 확성기 방송 시설 재설치는 북한이 최근 연이어 예고한 전단 살포와 함께 대남 심리전 강화 차원의 후속 조처로 풀이됩니다.
북한 관영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에도 “중앙의 각급 출판인쇄기관들에서 1천200만장의 각종 대남 전단을 인쇄했고, 3천여개의 풍선을 비롯해 한국 측 깊은 종심까지 살포할 수 있는 여러 살포 기재와 수단이 준비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은 앞서 지난 4일 대북 전단 살포를 맹비난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담화를 시작으로 지난 9일 정오를 기점으로 모든 남북 간 통신연락선을 차단했고 16일에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일방적인 대남 공세를 펴왔습니다.
이어 인민군 총참모부는 17일 빠른 시일 내 당 중앙군사위 승인을 얻어 한국에 대한 대적행위 차원에서 4개 군사행동에 돌입하겠다고 밝혔고 이 가운데 하나로 “인민의 대남 삐라 살포 투쟁을 군사적으로 철저히 보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20일 문재인 한국 대통령 얼굴과 비방 문구를 담은 대남 전단 실물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이 같은 거듭된 예고에 실행계획을 즉각 철회하라고 거듭 촉구했습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입니다.
[녹취: 여상기 대변인] “우리 정부는 대북 전단과 물품 살포를 원천봉쇄하고 있고 또 북한도 남북관계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대남 전단 살포 계획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22일 국방부 정례 기자설명회에서 “북한군 동향을 24시간 정밀감시하고 있다”며 “다양한 도발 가능성에 대해서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군 당국은 북한이 한국 측 깊은 종심까지 살포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준비됐다고 언급한 데 대해 선박을 이용한 해상 살포와 무인기 또는 드론까지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22일 열린 한국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발언 내용입니다.
[녹취: 정경두 장관] “삐라를 살포하는 수단이나 행위나 다양한 방안에 따라서 우리의 대응이나 수단 방법도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하나를 특정시켜서 제가 말씀드릴 수 없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북한이 무인기나 드론을 사용할 경우 군사적 도발로 판단하고 이를 파괴하는 작전을 펼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북한이 구체적인 살포 시점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주로 풍선을 이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바람의 방향이 주된 고려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 남쪽으로 바람이 불지 않습니다. 지금 예상으론 25일에서26, 27일 사이에 남서풍 내지 남쪽으로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이 되거든요. 아마 이쯤에서 비무장지대에 와서 북한 인민군의 보호 아래 학생 청년 시민들이 참여한 형태로 대규모로 보내는 행사를 할 개연성이 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박사는 북한이 이미 내용까지 공개한 전단을 굳이 뿌리려는 것은 한국 민심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 보다는 내부결속용의 성격이 짙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조성렬 박사] “북한 주민들이 한국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많았던 것 같고 특히 문 대통령이 2018년 9월 평양에서 평양 시민 15만명 앞에서 연설을 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깰려고 하는 게 더 큰 것 같아요.”
한편 한국 국방부는 22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에서 북한이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을 위해 대규모 열병식을 준비하는 동향이 포착됐다고 밝혔습니다.
국방부는 북한이 열병식에 참가하는 병력과 장비가 집결하는 평양 미림비행장 일대에서 장비보관용 건물 신설과 김일성광장 보수 등 열병식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때문에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이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SLBM 등 전략무기들이 등장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북한 동향과 관련해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는 장기간 가동정지 상태이고 풍계리 핵실험장 주변에서 특이활동은 식별되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미사일 관련 시설에서 인력과 장비, 차량 등의 활동은 지속하고 있다고 밝혀 북한이 단거리와 중거리,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고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대남 군사 도발을 예고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가능성에 대해 “당장 그런 징후는 없다지만 그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면밀히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 장관은 또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대해 직접적이고 우발적인 군사충돌 방지를 위한 9.19 군사합의와는 무관하다며, 군사합의 파기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정 장관은 이와 함께 대남 강경발언을 연이어 쏟아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에 대해선 “실질적인 2인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정 장관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나서지 않고 여동생인 김 제1부부장을 내세운 데 대해선 실질적 악역은 밑에서 담당하고, 나중에 최종적 남북관계 개선이나 미-북 관계 개선 등 정책적 변화가 올 때 자신을 앞세움으로써 위상을 더 확고히 하려는 의도로 추정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