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 상태에 대한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 최고위층 간부들의 일상적인 공개 활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외부 사회가 제기하고 있는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이 거짓 정보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려는 의도라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박봉주 북한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 김정숙평양방직공장 등 평양의 경제 현장을 시찰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박 부위원장은 북한 공식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노동신문’은 현지 지도 날짜를 적시하진 않았지만 박 부위원장이 평양 내 생산 현장과 봉사 시설을 둘러보면서 증산과 서비스 개선을 주문했다며 평소와 다름없는 활동상을 전했습니다.
‘노동신문’은 이에 앞서 지난 25일엔 김재룡 내각 총리가 황해남도 강령호 담수화 공사장을 찾아 설비와 자재 보장 대책을 점검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최고위층 간부들의 이 같은 잇단 공개행보는 김 위원장이 지난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 주재 이후 19일 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신변 이상설이 불거진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주목됩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에 대해 지금까지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관영매체들은 김 위원장의 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동정 수준의 보도만 내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의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 고위급 관료의 연이은 공개행보가 북한 내 특이동향이 없음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박 부위원장과 김 내각 총리는 북한 경제를 이끄는 사령탑으로, 이들의 꾸준한 활동은 김 위원장이 경제난 극복을 위해 지난해 말 천명한 ‘정면돌파전’ 추진 정책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앞서 김연철 한국 통일부 장관은 28일 국회에 출석해 북한에 특이동향이 없고 김 위원장에 대한 연이은 동정 보도들은 그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시사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신 센터장은 그러나 김 위원장의 잠행이 길어질수록 북한 내 특이 동향 유무와 상관없이 김 위원장이 자신의 행보를 드러내지 못하는 모종의 ‘불편한 상황’이 있으리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동정 보도가 계속 나왔다는 것은 김 위원장의 건재를 알리기 위함이라고 보고요. 마찬가지로 이번 박봉주의 등장도 그런 맥락이라고 봐요. 다만 4월15일 태양절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음으로써 이게 촉발된 거잖아요. 그런 과정에서도 김정은 위원장 자체가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중태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보도되기엔 불편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라고 봐요.”
김 위원장은 지난 2014년 9월3일 모란봉악단 신작음악회 관람 이후 40일 넘게 공개활동에 나서지 않으며 자취를 감춘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김 위원장은 9월9일 공화국 창건일과 10월10일 노동당 창건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고위 간부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도 불참하며 각종 억측에 휩싸였습니다.
결국 자취를 감춘 지 41일만인 2014년 10월14일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고 당시 김 위원장은 발목에서 낭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위독설, 사망설 등 외부 사회의 온갖 추측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지 않고 김 위원장의 건재를 은근히 내비치는 식의 대응을 하고 있는 데 대해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 엿보인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한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김 위원장이 건재하다고 해도 외부 사회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지금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낼 이유는 없다며, 오히려 서방언론에 대한 북한 주민의 불신과 적대감을 키울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천영우 이사장] “저 사람이 진짜 아무 일이 없으면 이게 서방 언론이 오보를 많이 할수록 북한에 좋은 거거든요, 많이 하고 오래할수록 북한 주민들한테는 교육효과가 있는 겁니다. 서방 언론이라는 건 맨날 거짓말만 하기 때문에 절대 믿을 게 못 된다는 그런 교육을 시키는 데는 지금같이 좋은 기회가 없거든요.”
한국 정부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도 중대한 신변상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니라면 김 위원장에게 지금의 상황이 반드시 손해보는 일만은 아니라고 평가했습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효과와 함께 미국과 한국의 정보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설명입니다.
또 북한 내부의 김 위원장 반대세력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해당 세력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과거와는 달리 휴대전화 등을 통해 외부 정보의 북한 유입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잠행이 장기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장기화되면 부담이 되기 때문에 마냥 길게는 안 갈 거고요. 거꾸로 북한으로 소식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고민에 빠지겠죠. 북한 엘리트들이 어 김정은 위원장도 잘못될 수 있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지금까지 최장 40일까지 갔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 때는 발목 수술을 했었죠. 그렇게 보면 앞으로 1~2주 정도 주목해 볼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행 기간이 장기화할 경우 김 위원장의 신변에 대한 의혹과 추측이 한층 심해질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